방글라데시에서 불란서, 독일, 인도문화원의 문화 향유

한국의 외국문화원과 다른 방글라데시의 외국문화원의 젊은이들의 숨결

by 박향선

며칠 전에 서울역에서 모이는 한국해외봉사단 귀국모임인 코바 4기 모임에 참석하기 위해 서울을 다녀왔다. 서울역사 4층에 위치한 독립밀방에서 메뉴판을 보다가 라따뚜이을 주문 했다.

난 대학시절에 서울을 별로 가보지 못했다. 대학 졸업 후 1990년에 서울로 상경해서 기업체 시험에도 응시해 보고 시험에서 떨어지고 그 시간을 보내면서 국립중앙박물관과 경복궁 앞, 법륜사 옆에 있던 불란서 문화원, 인사동, 일본광보문화원에서 시간을 많이 보냈다.

일본어를 공부하던 나는 일본 광보문화원에서 신문을 보면서 해석을 하면서 일본어공부를 했다. 그러다 놀랜 것은 서울은 대학 일 학년, 이학년 학생들이 일본광보문화원에 와서 일본어 공부를 하는 것이다.

나는 일본광보문화원에 비치된 사전을 들고 일본 일간지 기사를 복사해서 한자어 찾기 사전과 일본어 사전으로 해석을 하고 오후에는 한국돈으로 이백원을 내고 일본광보문화원에서 영화를 봤다. 일본어로 나오고 캡션으로 영어가 나왔었다. 영화를 하기 전에는 일본어로 일본노래인 엔카가 나오기도 했다.

경복궁 앞의 불란서 문화원에서는 난생처음으로 쓰디쓴 에스프레소을 마셔보았다. 불란서 문화원은 작은 전시관이 있었고 카페가 그 옆에 조그마하게 있었다. 벽면에 프로젝트를 쏴서 뉴스와 광고등을 보여 주었다. 그 옆에는 게시판이 있어서 각종 모임이나 집임대등에 대한 광고가 조그마한 종이에 붙어 있었다. 이층에는 각종 서적이 있었고 잡지 들도 있고 세미나도 열렸다. 오후에 영화상영관이 있어서 계단식 의자에 앉아서 마뇽을 본 것도 잊히지 않는다. 실험적인 영화들이 많이 상영됐었던 것 같다. 그러다 샹송 배우는 모임에 가입하려고 했는데 지역지에 취직이 되어 그 모임에 나가지를 못했다. 이 불란서 문화원 자리에 폴란드 대사관이 지금은 자리하고 있다.

독일 문화원은 남산에 위치해 있었는데 너무나 조용했다. 그러나 방글라데시는 독일 문화원이 모임이 활발했고 옥상 카페는 너무나 멋있었다. 그리고 젊은 시절 다카에 있던 독일 문화원에서 무심결에 넘겨보았던 그 아주 귀중한 보석 같은 책. 시간이 지나고 보니 각종 사업계획서 및 도큐먼트였다. 지금도 그 책들을 독일문화원에서 오픈하는지 후배들에게 묻고 싶다.

방글라데시에서 어떤 날은 미국대사관에서 근무하던 분으로부터 연락이 왔다. 그분 남편이 방글라데시 농업성에 근무하고 있던 한국사람이었다. 미국평화봉사단과 결혼했다고 했다.
방글라데시에 미국클린턴 대통령이 방문을 하는데 기념으로 미국인 피아니스트가 독일문화원에서 피아노 독주회를 연다고 초대장을 보내주셨다. 나는 후배 단원을 초대해서 함께 피아노 독주회를 갔다.

음악회를 다니는 것을 좋아했던 나는 피아노 독주회에 가서 피아니스트가 자기가 칠 곡을 설명해 주는 것을 보고 놀랬다. 한국에서는 프로그램 안내서에 문자로 인쇄를 해서 팔거나 나눠주기도 하지만 연주자가 직접 곡을 설명하지는 않았다.

지금은 피아노 연주장에 피아니스트가 프로젝트를 쏘기도 하고 곡 연주에 앞서서 곡을 고른 이야기며 설명을 하는 것이 보편화되었지만 1994, 5년경에 방글라데시 독일 문화원에서 경험은 나에게 신선한 충격이었다.

방글라데시 다카에서 불란서 문화원을 가끔씩 봉사단원들과 갔는데 한국의 불란서문화원과 달리 너무 분위기가 밝기는 했는데 왠지 시끄럽게 들렸다. 당시 한국의 불란서 문화원은 정말 조용하고 이용하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다. 아마 내가 잘 못 알아듣는 방글라언어로 젊은이들이 담소을 나누며 토론도 하고 하면서 젊음을 만끽하지 않았나 싶다.

한국의 미국 문화원은 너무 조용하다. 인적이 별로 없다. 그런데 방글라데시의 미국문화원은 복잡하다고 단원에게서 들었다.

방글라데시에서는 다카의 브리티시 카운실 근처에서 인도 문화원을 가보는 행운을 가졌다. 한국에는 아직 인도문화원이 생기질 않은 것으로 안다. 사람들이 별로 없었다. 넓다란 공간에 전시된 책들도 별로 없었고 카페도 없었다. 지금은 어떻게 변해 있을까?

1990년 초에 내가 한국에서 이들 외국문화원을 찾은 것은 유학이라는 꿈도 꾸었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수중에 돈이 많이 없어도 고급문화를 즐길 수 있어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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