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멋지게 살려고 태어났지, 완벽하고자 태어난 게 아니거든!
DON'T!! Judge me.
I was born to be awesome, not perfect.
(날 평가하지 마!! 나는 멋지게 살려고 태어났지, 완벽하고자 태어난 게 아니거든.)
내가 작년 발리 한 달 살이를 할 때 지낸 호스텔 벽에 적혀 있던 문구였다.
문구에 오랜 시선이 머물렀다.
'오, 그렇지! 나는 완벽하기 위해 태어난 것이 아니지. 그저 내 나름대로 멋지게 살아가면 될 뿐이지. 암, 그렇고말고.' 하면서 위안을 받았다.
우리는 완벽에 대한 강박이 극도로 심하다.
그래서 나도, 타인도 판단한다.
무의식적으로.
지금 이 글을 쓰는 순간도, 나는 나도 모르게 나의 글을 평가하고, 이 글을 앞으로 읽어나가게 될 사람들도 '자, 얘가 얼마나 잘 썼는지 볼까?' 하는 마음으로 읽을지도 모를 일이다.
무의식의 메커니즘은 따라잡을 수 없을 만큼 빠르므로.
이번 주 금요일은 내가 원에서 우리 아이들의 평가서(Evaluation sheet)를 교수부장님께 제출해야 하는 마감일이다. 그래서 어제 이전에 작성해 둔 평가서를 참고하고자 내 메일에서 Evaluation이라고 검색을 했다.(나는 보통 '내게 메일 쓰기' 기능을 활용하여 문서를 보관한다.)
검색을 하니 '애뉴얼 인터뷰입니다.'라는 제목의 글이 있었다. 2014년 1월 3일 자 메일로, 내가 호텔에서 근무할 당시에 소속되어 있던 객실 부의 대리님께 송부한 것이었다. 그것에는 내가 근무 역량과 태도를 스스로 평가하는 서식 파일이 담겨 있었다.
애뉴얼 인터뷰라는 이름에 걸맞게 연초마다 모든 직원들은 선임의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 없다.
- 정해진 시간 안에 정해진 일의 양을 완수하면서 생산성을 높이는가.
- 깔끔하고 단정한 모습을 유지하면서 행동하는가.
- 다른 사람으로부터 호의적인 평을 받으면서 직원들과 팀워크를 이루는가.
........
.....
...
다양한 평가 항목으로 촘촘하게 이루어진 평가서를 6년이 지난 지금, Evaluation이라는 검색어를 통해 우연히 다시 읽어보게 되었다. 평가 항목이 어찌나 많은지 평가서는 총 11장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흥, 뭘 이렇게 다 잘 해내야 한담!
당시 나는 호텔에서 두 달밖에 근무하지 않은 신생아였으므로 평가지를 작성하는 것이 애매한 입장이기도 했다. 여러 항목에 점수는 가장 높은 점수인 A부터 가장 낮은 점수인 E까지 스스로 매길 수가 있었는데 나는 주로 C와 D에 체크를 했다.
제출을 마친 뒤 호텔의 어느 객실 하나를 잡아 애뉴얼 인터뷰는 진행되었다. 대리 님은 내게 점수를 '상당히 박하게' 주었다고 말씀하셨다. 그만큼 나 스스로를 낮게 평가하고, 얕보았다.
당시 '피 고과자'였던 나는 이제 '고과자'가 되어 우리 원의 아이들을 평가한다.
아니, 해야만 한다.
출결 상황은 어떠한지, 영어 발음은 어떠한지, 듣기나 말하기 실력은 좋은지 등등을 평가해야 하는 입장이다.
그리고 곧 이번 학기를 마치고 새 학기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이기에 원장님과 한 해를 돌아보는 대화도 조만간 나누어야 한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연봉에 오케이 사인을 해주실지 아닐지는 오로지 나에 대한 원장님의 '평가'에 따라 달려 있다.
직장뿐이 아니다. 생업의 현장을 벗어나도 우리는 늘 평가의 잣대를 들이대는 것을 결코 멈추지 않는다.
평가는 끊임없이 이어진다.
우리는 타인의 '좋아요' 횟수와 하트를 눌러준 숫자에 따라 나의 가치가 결정되는 듯한 분위기에 익숙하다. 그것 때문에 기뻐하기도 하고 침울해하기도 한다. 그 평가는 나라는 '고귀한 사람'의 가치를 결코 매길 수 없는 것인데도.
소중한 가족이나 연인, 친구도 함부로 판단하고 평가하여 그들의 마음에 평생 새겨질 생채기를 내기도 한다.
의도했듯, 그렇지 않았든 간에.
나는 채식주의자이다.
나의 가치관을 존중해주는 사람도 있지만, 적지 않은 사람들은 나를 '판단'하고 '흠집'내고자 한다.
고기 안 먹는 게 좋은 게 아니야!
연애하기 힘들겠어요. 결혼도 힘들 것 같은데요?
저라도 그럴 것 같아요. 내 며느리가 고기를 안 먹는다 하면⋯.
고기를 먹어야 근력도 생기고⋯.
"저 콩 요리로 단백질 보충 잘하고 있고 있어요.
연구 결과에도 나왔는데 콩으로도 충분히 단백질 섭취를 할 수 있다고 해요."라고 말해도 아니라고, 고기를 먹는 것과는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누군가에게는 단순히 취향이나 기호를 넘어선 '엄중한 가치'인데도, 오로지 자신의 기준대로 판단하며 그것을 무자비하게 짓밟는다. 왜 그렇게 고기를 먹으라고들 참견을 하는지 모르겠다. 내가 다른 이들에게 고기 먹지 말라고 강요를 하는 것도 아닌데 말이다.
외모나 몸매도 마찬가지이다. 자신이 생긴 그대로를 굉장히 소중히 여기고, 사랑스러운 눈으로 바라보아주는 사람이 얼마나 될까.
특히, 여성이라면?
그것도 유난스럽게 외모가 권력이자 자본이 되는 대한민국 사회에서라면?
지금 이 순간도 우리는 끊임없이 평가하고, 평가받아지고 있다.
무서우리만큼.
내가 만나본 남자도 그랬다. 상체가 마른 편이라 군살이 없는 나의 가느다란 허리를 두고 그는 '이상적'이라고 평가했으나, 가슴 역시 지방이 별로 없는 내게 그는 '아름다움은 아직 만들어지지 않았다'라고 평가했다.
나를 '순수'하다며 좋아했지만, 동시에 '나이브(naive)'하다고 평가를 하기도 했다.
(그런 사람을 만난 나도 물론 한심하다. 그래도 너무 멋모를 때 이야기였다는 방어벽을 쳐본다⋯.)
내가 호텔을 퇴사하고 1년간 아시아 장기 배낭여행을 할 때였다. 나는 태국의 치앙마이 옆에 붙어있는 빠이라는 작은 타운에 간 적이 있었다. 그곳에서 나는 요가 리트릿에 참여를 했는데 모든 요가 매트에는 우리가 고귀하게 여겨야 할 가치들이 매직펜으로 적혀 있었다.
Mindfulness(마음 챙김), Contentment(지족) 등 여러 가지가 있었는데 그중에는 Non-judgment(판단하지 않음)도 있었다.
나는 '판단'이라는 단어를 마주할 때마다 태국의 요가 리트릿을 떠올린다. 요가 리트릿에 참여하고, 또 참여한 이후 Non-judgment(판단하지 않음)라는 말이 내게 얼마나 깊은 의미로 다가왔는지. 마음속으로 읊고 또 읊었다.
나 자신도, 타인도 판단하고 평가하지 않을 용기.
나에게도 그것이 반드시 있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앞으로 살아가면서 그 용기를 갖기 위한 연습을 멈추지 않고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
미얀마 마하시 명상센터에서도 위빠사나 수행을 할 때도 비슷한 가치를 강조했다. 모든 명상은 Sati(사띠: 알아차림)가 기본이 된다. 내가 하는 모든 행위, 생각을 알아차려야 한다는 것이다. 쓰레기 냄새가 나건, 꽃향기가 나건 나는 그것을 '향기가 좋다. 냄새가 역겹다.'라고 판단해서는 안 된다. 그저 '냄새를 맡음, 냄새를 맡음.'이라고 알아차려야 한다.
비 오는 날 라디오에서 요요마의 첼로 선율이 흘러나와 내 가슴을 적시건, 옆집에서 이사를 와서 인테리어 공사에 한창이라 쿵쾅쿵쾅 소리를 내건 상관이 없다. 나는 그것을 오로지 '소리가 들림, 소리가 들림.'이라고만 알아차려야만 한다.
늘 '이것은 좋아. 저것은 싫어.' 하면서 호불호를 분명하게 선 긋는 것이 숨 쉬듯 자연스럽던 나에게 이 깨달음은 빅뱅과 같았다.
오늘 판단에 관한 글을 써보고자 결정을 내린 후, Non-judgment(판단하지 않음)에 관하여 자료조사를 해보았다.
다음은 판단하지 않았을 때 얻을 수 있는 장점 여덟 가지이다. HOW TO PRACTICE NON-JUDGMENT IN YOGA AND MEDITATION(요가와 명상에서 판단하지 않기를 연습하는 방법)에 나온 것을 나 스스로 번역해 보았다.
https://www.yogabasics.com/connect/yoga-blog/practice-non-judgement-yoga/
Benefits of practicing non-judgment
• Promotes awareness and mindfulness
• Cultivates more gratitude
• Reduces stress and worry
• Helps make wiser decisions
• Boosts productivity
• Fosters a peaceful mind
• Increases authentic self-knowledge
• Deepens expressions of love toward yourself and others
1. 알아차림과 마음 챙김을 더욱 잘하게 된다.
2. 감사한 마음이 더욱 생기게 된다.
3. 스트레스 및 걱정이 줄어든다.
4. 더욱 현명한 의사결정을 할 수 있도록 돕는다.
5. 생산성이 향상된다.
6. 평화로운 마음을 가지게 된다.
7. 본연의 나에 대한 이해가 커진다.
8. 자신과 타인에 대한 사랑이 더욱 깊어진다.
판단과 평가에서 자유로우면 얻게 되는 장점이 이렇게나 많다!
물론 이 글을 적으며 내가 앞으로 "난 이제 평가와 판단에서 완전히 자유로워졌어!"라고 외칠 수는 없을 것이다.
그래도 나와 타인뿐 아니라, 나무, 동물과 같은 이 세상에 있는 모든 생명체들을 '덜' 평가할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아이들 평가서를 작성하는 것은 내가 밥 먹고 살려면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다.
그것은 어쩔 수 없다 치더라도, 평가서를 작성하지 않아도 되는 때에는 '평가와 판단'보다는 '존중과 감사'하는 마음을 가지고 생활할 수 있기를 진심으로 바란다.
내가 12명을 두고 수업을 하는 7세 특강 시간에 '똑똑하다고 평가(Above average for this level-이 수준에서 평균 이상)'했던 아이들로부터는 졸업을 앞둔 지금까지 단 한 번도 편지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어제 내게 처음으로 편지를 준 아이는 따로 있었다. 바로 내가 평가서에 듣기나 말하기 실력도 '뛰어나다고 평가하지 않았던(Improvement needed, but ready to advise-개선이 필요하지만 조언할 준비가 됨)'아이였다.
내가 수업을 하기 전 미리 들어오길래 무슨 일이지 싶었던 궁금증을 준 그 아이는 내게 은은한 미소를 지으며 편지를 주고 갔다. 그 안에는 이렇게 적혀 있었다.
그동안 돌바주셔서 고맙습니다.
동생 잘 돌바주새요.
아프지 마마새요.
저이는 떠나가요.
편지 안에는 위와 같은 글이 담겨 있었다. 눈물이 쏟아졌다. '아이에게 마음을 더욱 표현해줄걸⋯.' 하면서 말이다. 지금 이 글을 쓰면서도 눈물이 맺힌다.
역시나 나의 '평가와 판단'이 어리석었다는 것을 증명하는 편지였다. 그 아이는 그리 탁월한 영어 능력을 갖추고 있지 않다. 그래서 아쉽게도 나의 평가서에는 변화가 없을 것이다.
평가서에 '교사에게 편지를 줄 만큼 마음을 많이 내어줄 수 있는가.'와 같은 평가 항목은 없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나는 내가 작성한 평가서와 아이의 편지를 번갈아 보며 느끼는 것이 많았다.
1년간의 아시아 장기 배낭여행이 끝날 무렵인 2015년 말에 참여했던 태국의 요가 리트릿은 Bhud(붓)이라는 요가 선생님이 지도를 하셨다. 선생님은 요가든, 철학에 관한 대화 세션이든, 모든 세션이 끝날 때마다 똑같은 인사말로 마무리를 하셨다. 두 손을 가슴에 모아 합장하는 자세와 함께 말이다.
부디 세계 각지에서 온 수행자들의 목소리로 태국 빠이에서 울려 퍼진 이 인사말이 내 생의 여정에 줄곧 함께 하는 동행자가 되어줄 수 있기를 바라며 이 글을 마친다.
옴 샨티, 샨티, 샨티.
나 자신을 존중감을 가지고 대하십시오.
타인을 존중감을 가지고 대하십시오.
모든 생명체들을 존중감을 가지고 대하십시오.
나마스떼.
* Shanti(샨티): '평화'를 뜻하는 힌디어.
* Namaste(나마스떼): '내 안에 있는 신이 당신 안에 있는 신에게 경배합니다.'라는 뜻의 산스크리트어.
인도, 네팔 등에서 인사말로 사용된다.
* 영어실력과 내면 성장을 모두 얻어갈 수 있는 알짜배기 모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