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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년 전, 대만행 티켓을 잃은 나에게 다가온 그 남자

'또'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라디오를 통해 다시 만난 그 남자



오늘 저녁도 어김없이 KBS 1 FM '전기현의 세상의 모든 음악'을 틀었다. 

음악에 귀 기울이고 있는데 문득 시 이야기가 나왔다. 

바로 '이상화'의 시,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였다.



아, 빼들봄!!



학창 시절 국어 선생님께서는 그 시를 빼들봄이라고 칭하곤 하셨다. 그 표현이 귀에 쏙 박혀 시는 내게 지금까지도 인상 깊게 남아 있다. 그런데 라디오를 들으면서 이상화 시인이 대구 출신이라는 사실을 바로 기억해내지는 못했다. 내가 그것을 다시 기억해낸 때는 프로그램이 종료되고 나서였다. 



'이상화 시인... 왜 이렇게 친숙하지?'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그러자 내가 2017년의 여름, 대구에서 가진 그와의 만남이 떠올랐다. 바로 '이상화 고택'에서 말이다. 학교에서 빼들봄을 처음 배우고 10년을 훌쩍 넘긴 시점에서 그의 생활 흔적이 남아있는 장소에 가게 된 것이었다. 



# 타이완(대만)의 태풍으로 연이 닿은 그 남자



대학생 시절 내일로 기차 여행을 다섯 번 했다. 무수히 많은 국내 도시를 들렸다. 그러나 대구는 단 한 번도 들리지 않았다. 그런데 직장인이 되어, 그것도 소중한 여름휴가 때 대구를 가게 되었다. 



바로 대구 발 타이베이(대만의 수도) 행 티켓을 굉장히 저렴하게 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오로지 그 이유만으로 무궁화 호를 타고 대구로 한창 달리고 있었다. 그러던 중 나는 한 문자를 받았다. 



위용을 과시하는 태풍, 네삿(NESAT)으로 인해 내가 예약한 항공편이 24시간 지연되었다는 내용이었다. 예기치 않은 소식 때문에 나는 기차에서 내리자마자 대구 역 근처의 한 호스텔로 향했다. 


다이내믹~ 대구!


그곳에서 나는 타이완에서 온 두 친구들을 만났다. 한 명은 한국어가 매우 유창하며 자전거로 전국 일주(!!!)를 하는 친구였고, 다른 한 명은 고려대학교 어학당에서 한국어를 배우기 위해 잠시 한국에 온 친구였다. 타이완에 가더라도 태풍 때문에 불편한 마음으로 지내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대구에서 '리틀 타이완'을 만났다고 자족하며 결국 타이베이행 티켓을 취소했다.



그리고 대구를 여행했다. 나의 첫 대구 여행은 타이완 친구들과 함께였고 대구는 볼수록 매력적인 사람과도 같았다. 우리 셋은 대한민국의 근대 역사가 가득 담긴 골목들을 요리조리 걸어 다녔다. 당시 발자국을 찍은 코스 중 이상화 고택도 포함되어 있었다. 



# 오프라인 모임을 통하여 처음 만나본 그 남자



그동안은 이상화 시인과의 소개팅을 교과서나 문제집이 주선해 주었다. 

그것도 필요 이상으로 자주 말이다.



그러다가 그가 숨 쉬던 공간에서 첫 만남을 가지게 된 것이었다. 마치 인터넷 채팅을 통해 만난 외국인과 롱디(Long distance relationship)를 하다가 실제로 만난 기분이었달까!


만나 뵐 수 있길 오랫동안 기다려 왔어요...


온라인 만남에 한계가 있듯, 텍스트로 만나는 그의 언어는 딱딱할 때가 많았다. 하지만 오프라인 만남을 통해 만나본 그의 언어는 달랐다. 



살아 움직여 나에게 말을 걸었다. 대구의 햇빛은 특유의 강렬한 캐릭터를 마구 뽐내고 있었고, 하늘도 질세라 맑음을 과시하고 있었다. 그러한 날씨와 시인이 살던 통한의 시대는 명백한 대비를 이루었다. 그래서 나를 더욱 울게 만들었다. 



중고등학생 때 시인의 마음을 헤아려보려는 시도를 하지 않은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대한민국 대다수의 입시생이 그러하듯, 나 역시 갖가지 색의 펜과 형광펜으로 그를 샅샅이 파헤치는 데 주로 집중했다. 



'이상화=저항 시인', '들-> 국토(대유법)'과 같은 식이었다. 

하지만 그의 홈 그라운드인 대구에서, 고택 안 비석에 새겨진 그의 시를 읽으며 나는 그와 함께 울었다. 



오늘 이 글을 쓰고자 시를 낭송해보니 또 울컥하게 되는 대목이 있었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얼마나 간절했을까. 자유롭게 흙을 밟아보고 땀을 흘리고 싶었던 마음이 컸을까. 나도 밭농사를 경험하며 흙이 얼마나 부드러운 존재인지, 그를 만지는 것이 얼마나 큰 위안이 되는지 잘 알고 있다. 그런데 그러한 흙을 빼앗겼다면 얼마나 상실감과 울분이 컸을까 싶었다.



어제는 삼일절이었다. 빼앗긴 들을 되찾고자 목소리를 높이는 데 주저하지 않았던 분들을 마음에 새기는 날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훅하고 기습 공격을 당하듯, 봄을 또다시 빼앗기고 말았다. 

그것도 전혀 예상치 못했던 이에게.


# '또' 빼앗긴 들에도 은 오는가.


이상화 시인이 그리도 울부짖던 봄은 찾아왔다. 

그리고 우리는 그렇게 소중한 봄을 매화와 벚꽃과 함께 잘 누려왔다.



아주 어렵게 가진 아이를 대하듯, 귀하게 대해온 봄이었는데...



과연 봄을 다시 찾을 수 있을 것인가.

그럴 것이라고 믿는다.



대구에서 직접 만난 이상화 시인을 기리는 마음을 가졌듯이, '경기도민'인 나는 '대구 시민'분들을 위해 기도드리겠다. 나약해지기 쉬운 이때 우리 국민분들을 위해 기도드리겠다.



믿고 싶지 않지만, 기회는 이때다 싶어 마스크로 돈벌이하는 사람들도 있다. 그러나 그러한 사람들만 있지는 않다. 뉴스를 통해 나는 많은 분들을 만났다. 



고생하시는 의료진분들과 그분들이 편히 쉬실 수 있도록 숙소 제공을 무료로 해주시는 숙박업 종사자 분들, 마스크 단가를 단 1원도 올리지 않은 마스크 제작 회사 사장님, 의료진분들을 위해 먹거리를 박스에 바리바리 싸서 보내드리는 분들...



그러한 분들이 더욱 많기에 봄은 결국 다시 올 수 있을 것이라 믿는다.

아니, 온다.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  이상화                                      

                    

지금은 남의 땅 -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


나는 온몸에 햇살을 받고

푸른 하늘 푸른 들이 맞붙은 곳으로

가르마 같은 논길을 따라 꿈속을 가듯 걸어만 간다.


입술을 다문 하늘아 들아

내 맘에는 내 혼자 온 것 같지를 않구나.

네가 끌었느냐 누가 부르더냐 답답워라 말을 해다오.


바람은 내 귀에 속삭이며

한자 욱도 섰지 마라 옷자락을 흔들고

종다리는 울타리 너머 아가씨같이 구름 뒤에서 반갑다 웃네.


고맙게 잘 자란 보리 밭아

간밤 자정이 넘어 내리던 고운 비로

너는 삼단 같은 머리털을 감았구나, 내 머리조차 가뿐하다.


혼자라도 가쁘게 나가자.

마른논을 안고 도는 착한 도랑이 젖먹이 달래는 노래를 하고

제 혼자 어깨춤만 추고 가네.


나비 제비야 깝치지 마라, 맨드라미 들마꽃에도 인사를 해야지.

아주까리기름 바른 이가 지심 매던 그 들이라 다 보고 싶다.

내 손에 호미를 쥐어다오.


살진 젖가슴과 같은 부드러운 이 흙을

발목이 시리도록 밟아도 보고 좋은 땀조차 흘리고 싶다.


강가에 나온 아이와 같이

짬도 모르고 끝도 없이 닫는 내 혼아

무엇을 찾느냐 어디로 가느냐, 웃어웁다, 답을 하려무나.  


나는 온몸에 풋내를 띠고

푸른 웃음 푸른 설움이 어우러진 사이로

다리를 절며 하루를 걷는다. 아마도 봄 신령이 지폈나 보다.


그러나 지금은 들을 빼앗겨 봄조차 빼앗기겠네.


                                                    - <개벽>(19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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