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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큐레이터 달래 Jan 18. 2020

아아, 죽음의 문턱에서 또 한번의 생을 허락 받았다.

제2의 생을 선물해준 70일간의 첫 네팔 여행 (3)

# 그럼에도 파슈파티 사원의 바그마티 강은 끊임없이 흐른다.

- 파슈파티 사원에서 다시 곱씹어본 생과 사의 의미


귀국하기 전날 밤, 아픈 다리를 이끌고 굳이 파슈파티 사원(네팔 힌두교 최대의 성지로,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어 있다. 네팔 인들이 죽음을 맞으면 이곳에서 화장된다.)을 찾아갔다. 원래부터 가보고 싶었는데 생사를 넘나든 경험을 하고 나니 이번 첫 네팔 여행을 반드시 파슈파티 사원에서 마무리 짓고 싶었다. 


내가 앉아있는 쪽에서는 곧 화장을 앞둔 시신이 옮겨졌고, 가족을 비롯한 지인들은 오열을 하며 그 뒤를 따랐다.  같은 시간, 강의 반대 편에서는 깜깜한 밤을 밝게 비추는 불과 함께 아라띠(Arati: 힌두교의 종교적인 의식으로, 신에게 불을 바친다.)는 진행되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매우 자유로운 몸짓으로 흥겹게 춤을 추었다. 마치 ‘생은 축제야! 지금 즐겨야지, 언제 또 즐겨?’라는 메시지를 온몸으로 말하는 것처럼.


이미 한 줌의 재가 되었거나 곧 그와 같이 생을 완전히 마치게 될 시신들, 꺼이꺼이 소리를 내거나 애써 울음소리를 참으며 울던 사람들, 그리고 이들과는 전혀 무관하게 역동적인 춤을 추는 사람들이 공존하는 세계는 마치 현실 세계가 아닌 듯, 너무나 이질적으로 느껴졌다.


강 하나를 두고 생과 사가 명징하게 나뉘는 풍경을 보며 내 마음속에서는 오만가지 감정들이 오갔다. 확실한 단 한 가지는 누군가는 죽음을 맞이하고 그 때문에 슬퍼하는 사람이 있지만, 강은 끊임없이 흐른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강이 잔잔하게 흐르듯, 우리네 생 역시 그렇게 흘러갈 것이라는 것.


고요한 침묵을 지키며 흘러가는 강물을 나 역시 조용히 바라보았다. 그리고 ‘생은 매우 숭고한 것’이라는 믿음에 대해 더욱 엄숙한 태도를 지녀야겠다고 파슈파티 사원에서 나는 다짐했다.


띠까와 촛불과 함께 한 마하 시바 라트리(Maha Shivaratri)의 밤




# Jam Jam (잠잠)! 가자!

- 새해 첫날, 새로운 생을 선물하여 나를 다시 태어나게 한 네팔


죽음과 가까운 경험을 하고 난 뒤 살아난 사람들의 생을 평소에도 궁금해하곤 했다. 그러한 경험을 하고 난 뒤에는 분명 살아가는 마음가짐이 이전과는 같으래야 같을 수가 없을 것 같았기 때문이다. 그 이후의 생은 어떨지 상상해보기도 했다.


그래서 차마 누군가에게 말을 꺼내 보지는 않았지만, 살아남는다는 전제 하에 그러한 경험을 한 번쯤은 해보고 싶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다가 첫 네팔 여행에서 죽음을 종이 한 장 차이로 스쳐 지나가다가 나무의 넝쿨 덕에 목숨을 구할 수 있었던 매우 특별한 체험을 하게 된 것이었다.


내게 네팔은 결코 공포의 장소가 아니다. 사고 후 흉터는 나의 왼쪽 무릎에 진하게 남았지만, 내적 트라우마는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네팔에서 만난 한 친구는 이야기했다.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이 ‘Luxury(사치)’라는 것을 이제 알게 되지 않았느냐고.


사실이었다.

이제까지 걸어 다니는 것은 내게 숨 쉬듯 자연스러운 행위였으니까.


나는 사고 전 랑탕(Lang Tang:  네팔의 국립공원 중 하나로, 많은 등산객들에게 사랑 받는 코스이다.) 트레킹을 예약해 두었다. 트레킹을 2주 앞둔 시점에서 사고를 경험했는데, 사실 예약을 해두고도 걱정을 꽤 많이 했었다. ‘아, 그동안 체력 훈련을 잘해둘걸. 내가 잘할 수 있을까.’하면서⋯. 스스로 체력을 비하하면서 내 몸을 끊임없이 ‘판단’하고 ‘평가’하고자 했다.


그러나 지금은 출근길에 버스를 타고자 별 어려움 없이 뛰어다닐 수도 있고, 우리 동네 생태공원을 산책할 수 있는 내 다리가 그저 기특하고 고맙다. 무엇이든지 잃어보아야 소중함을 알듯이, 기동성을 잃어보니 걸어 다닐 수 있다는 사실이 얼마나 엄청난 것인지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그래서 내 몸에 대한 부정적인 판단과 평가를 더 이상 멈추고, 내 몸을 더욱 소중히 인식해야겠다는 생각을 많이 하게 되었다. 자칫 잃어버릴 뻔한 생의 기회를 다시 얻은 것이니, 내게 제2의 생을 안겨 준 네팔에 매우 고마운 감정을 느낀다. 


앞으로도 살면서 꾸준히 네팔에 발길을 하고 싶다. 이제 네팔은 내게 더없이 존귀한 의미를 지닌 나라가 되었으므로. 그래서 한국에서 생활하는 요즘도 매일같이 네팔을 떠올리며 경건한 마음가짐으로 생을 찬미하고, 살아가는 의미와 살아갈 의지를 되새기고자 한다.


2019년 4월 13일, 네팔 달력으로 새해(4월 14일)를 앞둔 전 날, 새로운 마음가짐으로 새 삶을 시작하면 좋겠다고 생각했고, 네팔 친구들에게도 그 이야기를 했었다. 그리고 그 말대로 새해를 앞둔 몇 시간 전, 나는 내가 바라던 대로 ‘새롭고도 생동감 넘치는 생’을 선물 받았다.


‘Jam Jam (잠잠).’ 이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네팔 단어이다.

‘가자.’는 뜻의 네팔어⋯.


사고를 경험하고 나서 몸과 마음 모두 아픔을 겪기도 했지만, 아픔을 이겨낸 이후의 시간은 값지고 눈부시다. 

그리하여 나는 오늘도 Jam Jam (잠잠)이라는 말을 되새긴다. 네팔에서 받은 소중한 선물을 헛되이 만들고 싶지 않기에. 오늘도 뚜벅뚜벅 나아가며 앞으로도 키가 자랄 나를 그려보고 싶기에.


가자!

Jam Jam (잠잠)! 


박타푸르/ 네팔의 신년 축제, 비스껫 자뜨라(Bisket Jatra). 함성과 함께 사륜마차는 전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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