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양주시 궁집을 찾아서
가을을 맞으러 길을 나선다. 목적지는 남양주시 궁집공원. 용인(東栢洞)에서 57km, 자동차로 1시간 남짓 거리. 북용인IC로 세종포천간고속도로에 진입한다. 조금 달리다보면 거대한 은빛 구조물이 마치 UFO처럼 떠 있다. 국내 최초의 도로 위에 지어진 처인휴게소이다. 세종포천간고속도로의 용인 구리 구간은 거의 터널로 이어진다. 터널 중에 남한산성터널은 6차선 터널로는 국내 최장(8.341m)이다. 터널구간은 지루함을 느끼지 않게 중간 중간에 설치한 조명이 이채롭다. 터널을 빠져나가면 이내 웅장함과 화려함을 뽐내는 고덕토평대교(1,725m)를 지난다. 주경간(주탑과 주탑사이)길이가 콘크리트사장교로는 세계 최장이란다. 남구리IC로 진출하여 황화코스모스 만발한 한강을 끼고 달리니 이내 남양주시다. 궁집은 시가지를 지나 평내동에 위치한다. 지하주차장에 주차하고 엘리베이터를 타고 오르면 1층의 공원 정문 앞이다.
입구의 안내판 내용을 보니 궁집은 조선21대 영조가 구민화와 혼인하는 막내딸 화갈옹주를 위하여 나라의 대목장과 목재를 보내어 지어준 살림집이란다. 화갈옹주는 12살에 시집가서 18살에 세상을 떠났다니 짧은 결혼 생활의 아픈 사연이 애잔하다. 영조보다도 이른 시기(1773년)에 죽었으니 영조(1694~ 1776)의 슬픔은 어떠했을까. 궁집은 도시개발로 전통한옥이 사라져가는 것을 안타까워하던 예술가부부가 1970년대부터 궁집 주변의 토지를 매입하고 서울,경기 등에서 철거된 한옥을 옮겨지어 오늘의 형태에 이르게 되었는데 2019년에 남양주시에 기부하여 6년간의 정비사업 끝에 올해 6월에 개관하였다.
정문을 들어서면 아담한 연못이 있고 때늦은 연꽃이 화사하게 손님을 맞는다. 국가문화유산이기도하지만 자연친화적인 분위기로 연못, 솔숲, 산책로 등이 잘 가꾸어져 도심 속 휴식 공간의 역할을 하고 있다. 중앙산책로를 따라 들어서면 거대한 팽나무 노목이 세월을 버티고 있다. 바로 왼편에 무교동집과 궁집이 있다. 무교동집은 1902년 서울 무교동에 지은 고가를 해체하여 1974년 옮겨 지은 것이다, 궁집은 소박하면서도 옛 양반가의 숨결을 느낄 수 있는 기품있는 고택이다. 안채는 전통적인 ㅁ자 구조이고 ㄱ자형 사랑채와 하나로 연결된 지붕 구조로 당시 뛰어난 건축기술을 알 수 있다 한다. 안채 마당에서 사각의 처마를 액자테두리 삼아 파란 가을 하늘을 촬영하니 이보다 좋은 구도가 없다.
용인의 99칸 집의 일부(40칸)를 1979년에 옮겨지었다는 용인집은 ‘ㄱ‘형의 안채와 ’ㄴ’형의 사랑채가 경기지역의 방식인 ‘ㅁ’자형으로 배치되어 있다. 곳곳에 그 시절 사용하던 생활용품이 전시되어 있고 뒤뜰의 장독대가 운치를 더해준다. 군산에 있던 신정왕후 조씨(23대 순조의 며느리)의 친정집 일부를 옮겨지은 군산집(1961년)은 공연장으로 쓰인다. 다실(茶室)은 관악구 낙성대의 서당을 옮겨지어 연못위에 초석을 사용한 누마루를 배치한 건물이다. 사각의 연못에 둥근 섬을 조성하여 전통연못의 아름다움으로 친근하다. 궁집의 일을 거들던 아랫사람들이 거처하던 초가집도 있다.
궁집은 단순히 오래된 집이 아니다. 세월을 관통해 이어져온 삶의 기록이자 우리에게 남겨진 마음의 고향이다. 큰 규모는 아니지만 운치가 있는 곳, 가슴 한켠에 오래도록 남을 울림을 간직하였다. 궁집은 전통혼례와 태교 등 다양한 체험 프로그램도 있단다. 다만 내가 찾은 날, 산책로 공사로 여기 저기 길을 막아두어 많이 아쉬웠다. 기대한 산책의 고픔은 동남쪽으로 50분 더 차를 몰아 양평의 ‘두물머리’에서 남한강변의 산책길을 걷는 것으로 채웠다. 항구도시의 태생 탓일까. 산도들도 좋지만 바다든 강이든 호수든 물가가 더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