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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애 Jul 30. 2020

첫 서브는 서비스 주듯

첫 서브는 서비스 주듯

오늘 다른 클럽에 원정을 갔다. 잘 치는 A조 형님이 나에게 이제 막 시작한 초심인 나에게 처음부터 롱서브를 넣는 것이 아닌가? 그 뒤로도 그 형님의 서브가 너무 어려워서 서비스로 포인트를 너무 많이 내줘버렸다. 땀도 나지 않는 이 경기가 나는 왜 그토록 기분이 나빴을까? 그 게임 이후 나는 그분과 다시 치고 싶지 않았다. 나의 표정을 보고 클럽에 초대해 주신 지인분께서 “방금 경기 별루였지? 원래 저분 저래 승부욕이 너무 강해. 그래서 클럽 사람들도 저분이랑 잘 안치려고 해.”



누구나 처음일 때가 있지요. 저 역시 그랬습니다. 한참 배드민턴에 재미를 느껴 이 클럽 저 클럽 구경도 다니게임도 하고 했었습니다. 대부분은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는 초보인 저를 서브부터 당황스럽게 하지는 않는데, ‘그 형님’은 저에게 많은 상처(?)를 주었습니다. 그리고 저 혼자 속으로 ‘칫, 실력이 에이조이면 모하나 배려심은 초심도 아닌데’라는 말을  뇌이며 게임을 마쳤습니다. 그런데 저 말고도 게임 중 서브 때문에 기분 나빴다고 말하는 사람들이 많은 걸 보면 이것은 저 혼자만의 감정은 아닌 듯합니다. 심지어 첫 서브가 아닌 게임 중에 서브 스타일을 바꿔도 속으로 ‘아, 너가 이기고 싶은 거구나’ 내지는 ‘지금 나랑 한번 해보자는 거지’하면서 승부욕을 불태울 때, 부싯돌과 같은 역할을 하는 것이 서브라고 합니다.   



모든 경기의 시작은 서브로 시작됩니다. 서브는 가장 기본적이면서 중요한 스트로크입니다. 스트로크? 스트로크란 라켓을 쥐고 다양한 방식으로 셔틀 콕을 치는 것을 말합니다. 그리고 경기의 첫 시작에 공을 상대편 네트로 보내는 것을 서브라고 합니다. 그래서 서브를 보면, 그것도 첫 서브를 어떻게 넣는지를 보면 선수의 경기 철학을 알 수 있습니다. 경기 철학씩이나? 라고 생각할 수도 있겠지만, 경기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게임에서 생각하는 것이 무엇인지 보여주는 것이 첫 서브입니다. 승부욕이 강한 경우의 플레이어거나 이 게임은 반드시 이긴다는 마음으로 치는 경우 첫 서브부터 받기 어렵게 주게 됩니다. 이 경우 시합에서는 이길지 몰라도 재미없는 게임이 될 확률은 높아지게 되지요. 모든 라켓 운동이 그렇듯 네트 위로 공이나 셔틀콕이 아웃되지 않고 쉴 새 없어 날아다닐 때 경기에 참여하는 모두가 몰입상태를 경험하며 즐거운 게임을 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배드민턴은 다양한 스트로크를 연결하며 재미를 얻는 게임입니다.


클럽이나 동호회에서 배드민턴 게임을 할 때, 첫 서브는 경기에 참여하는 모두가 인사하는 것과 같습니다. 마치 좋은 대화나 의미 있는 회의를 하려면 아이스브레이킹을 잘해야 하는 것처럼 첫 서브는 그런 의미입니다. “안녕하세요? 오늘 당신과 하는 이 게임이 즐겁기를 바랍니다. 잘 부탁드립니다.” 그런 의미가 숨어있는 것입니다. 가는 말이 고와야 오는 말이 고운 것처럼 첫 서브가 무난해야 서브리턴도 예상가능 하게 되며 안정적인 랠리를 이어 갈 수 있게 됩니다. 첫 서브부터 게임의 주도권을 가져오기 위해 서브를 어렵게 주면 상대방의 잠자고 있던 경쟁심을 유발하게 되어 즐거운 랠리를 이어가기 어렵습니다. 마치 눈 마주치고 웃을 준비를 하고 있는 동료에게 아침부터 쏘아붙이듯 말을 거는 것과 같은 상황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공이나 셔틀 콕을 라켓으로 때리며 주고받는 것을 스트로크를 이어간다고 말하는데, 대화를 시작하고 이어간다는 맥락에서 심리학에서도 스트로크란 말이 쓰입니다. 예를 들면 심리학에서 말하는 스트로크란 아침 저녁으로 ‘안녕하세요?’하는 인사나 ‘OO야’하고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주는 것, 혹은 상대방의 말에 귀 기울이며 ‘이해해. 나라면 더했을 거야’라고 공감해주는 것, 그리고 누군가의 손을 잡아주거나 안아주는 것처럼 관계 속에서 우리가 주고받는 것들을 가리킵니다. 물론 스트로크에는 부정적인 것들도 많이 있습니다. 나를 향해 욕하고 소리 지르고 나의 존재를 무시하는 말을 한다든지 나를 경멸하는 눈빛으로 바라보거나 때리는 것 혹은 나를 불쾌하게 하는 신체적 접촉도 있을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스트로크는 한마디로 상대방이 나를 혹은 내가 상대방을 기분 나쁘게 만드는 어떤 자극들입니다. 인간은 누구나 태어나서부터 죽을 때까지 신체적 접촉이나 언어적 표현들, 즉 다양한 스트로크를 통해 자신의 존재를 인정받고 또 사랑받고 있음을 느끼고 싶은 욕구를 강하게 가진다고 합니다. 일상의 삶 속에서 우리가 다양한 교류를 통해 스트로크를 이어가고 즐거움을 느끼는 것은 매우 중요한 삶의 한 조각이 됩니다.


배드민턴에서도 스트로크를 이어가며 플레이어들은 다양한 차원의 기쁨과 스스로에 대한 인정의 경험을 느끼게 됩니다. 배드민턴 경기 중 게임의 첫 시작인 서브라는 스트로크를 어떻게 시작하느냐가 매우 중요해지는 대목입니다. 오로지 이기기 위해서 누구나 첫 서브부터 빠른 롱서브로 상대방을 당황스럽게 만들면 서브를 받는 플레이어는 ‘이것 봐라. 지금 나한테 도전하는 건가’ 혹은 ‘저 사람은 참 매너가 없네’ 이렇게 생각할 수도 있게 됩니다. 마치 미소로 아침 인사를 준비하는 상대방에게 쏘아 붙이듯 자기 할 말만 하고 가버리는 경우와 비슷합니다.


배드민턴은 혼자 치는 것이 아닙니다. 대부분의 클럽에서 복식을 치는 점을 감안하면 코트 안 4명 모두의 기분이 중요합니다. 그런데 우리 팀과 게임을 하는 반대편 코트에 있는 선수들의 기분을 경기 처음부터 상하게 하고서 어떻게 즐거운 게임을 할 수 있을까요? 즐거운 게임을 원하는 플레이어들에게 하고 싶은  첫 마디는 “첫 서브는 서비스 주듯”입니다. 첫 서브는 서비스 주듯 상대방이 공을 잘 넘기를 바라며 넣을 때 게임을 즐기기 위한 준비가 시작되는 것입니다. 첫 서브가 어려우면 셔틀 콕을 아예 못 쳐서 망연자실 떨어진 콕을 주어야 합니다. 상대편 입장에서는 어이없이 1점 내주고 기분 잡치는 경기를 시작해야 하는 것입니다. 설사 허둥지둥 쳐서 어설프게 넘기면 스매시로 공격당해 바닥에 콱 쳐 박힙니다. 바닥에 나뒹구는 셔틀콕이 마치 나 자신과 같이 느껴지기도 합니다. 더 나아가 상대편이 고수일 경우에는 어디로 칠지 예상을 할 수 없어서 오히려 역공을 당하기도 합니다. 결국 첫 서브가 어려우면, 기분도 상하고 스트로크 연결도 매우 부자연스럽게 되는 것입니다.  


시작이 반이고 천리 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이 서브에서도 통하는 듯합니다. 아이스브레이킹을 잘 해야 의미 있는 대화가 오고 갈 수 있는 것처럼 무슨 일이든 처음이 중요하지요. 좋은 경기는 첫 마음에서 결정됩니다. 첫 서브는 그런 첫 마음이 직접적으로 표현되는 스트로크입니다. 실수 없이 상대편 코드로 콕이 넘어가서 즐거운 랠리가 이어지도록 기도하는 마음으로 서브를 넣는다면 분명 당신의 경기는 달라질 것입니다. 그리고 당신과 함께 배드민턴을 치고 싶은 사람이 늘어날 것입니다. 첫 마음을 배려로 시작하는 것은 경기 전체의 흐름을 바꾸는 중요한 포인트가 됩니다. 마치 단골손님이 되기 전 서비스를 내어주면 진짜 단골이 되는 것처럼 상대방에 대한 호의를 가지고 경기를 시작하게 되면 서로에게 더 많은 것이 돌아오게 됩니다. 첫 마디가 즐거우면 대화를 하는 내내 즐겁습니다. 배드민턴도 그렇습니다. 첫 서브를 넣고 자연스럽게 경기가 이어지면 참여하는 모두가 즐겁습니다. 즐거웠던 기억은 당신을 또 찾게 합니다. 어디를 가든 늘 환영받는 플레이어가 될 것입니다.


첫 서브를 서비스 주듯 상대방에 대한 배려에서 오는 또 다른 보답도 있습니다. 게임에 대한 자신감도 보여주고 평정심을 유지할 수 있게 만들어 줍니다. 첫 서브를 서비스 주듯 한다는 것은 “나는 이 경기에서 당신을 배려할 만큼 자신감이 있고 이 경기를 즐겁게 이어가고 싶다”는 선언을 몸으로 보여주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삶의 어느 순간 혹은 어떤 장면이든 간에 희생과 배려는 착하기만 하다고 해서 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희생과 배려는 선하고 강한 사람이 하는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배드민턴에서도 배려하며 경기를 시작할 수 있는 것은 선한 의지를 가진 강한 실력자가 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모두가 알고 있듯이 경기가 지속되려면 서브도 계속 넣어야 합니다. 첫 서브만으로 경기는 끝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꾸준히 서브 연습도 충실히 해야 합니다. 실력을 발휘해야 할 중요한 시합에서는 이기기 위한 서브도 넣어야 하니까요. 그 순간 우리가 넣어야 할 서브는 상대가 예측하지 못하도록 길이와 높이, 속도 등을 다양하게 해서 자기가 보내고 싶은 곳에 셔틀콕이 떨어지도록 하는 서브일 것입니다. 부실한 여러 가지 서브를 넣는 것보다는 한 두 종류의 정확하고 자신감 있는 서브에 힘을 집중하는 것이 좋다고 합니다. 서브를 뜨지 않고 정확하게 넣는 법과 상대방의 리시브 타이밍을 빼앗는 요령을 터득해 경기에서 주도권을 잡도록 꾸준히 준비하고 노력해야 합니다.


그러나 내가 오늘 임하는 동호회나 클럽에서의 게임은 이기기 위한 킬링 게임이 아닌 다양한 스트로크가 이어지는 랠리 속에 삶의 고단함이 사라지는 힐링 게임이기에. 첫 서브로 점수 딸 생각은 잠시 내려 놓으세요. 1점을 얻기 위한 의미 없는 모험을 하지 말고, 첫 서브는 서비스 주듯 상냥하게를 마음 속으로 외치며 서브를 넣어보세요. 그래서 서브를 서비스라고도 하나 봅니다. 인심 좋은 가게에 단골 손님이 많은 것처럼, 늘 당신과 게임하고 싶은 사람들이 줄을 서는 배드민턴 게임 맛집이 되길 소망합니다.


표지그림 조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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