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하는 게 별로 없는 저에게 ‘잘’이라는 말은 숙제와 같습니다. 저는 초등학교 교사입니다. 저는 잘 가르쳐야만 합니다. 무엇인가를 ‘잘’하고 ‘잘’하도록 만든다는 것의 의미를 남들보다 오랫동안 생각할 수밖에 없는 직업이지요. 잘못하는 체육도 가르쳐야 하는 저는 체육을 ‘잘’ 한다의 의미를 아이들을 보며 더 오랫동안 생각합니다. 그 시간만큼 배드민턴도 생각합니다. 누구보다 배드민턴을 잘 치고 싶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배드민턴을 잘 친다’의 의미를 우리의 경험을 토대로 이해해 보려고 합니다.
공식적으로 스포츠 활동을 처음으로 시작하는 초등학교 때 경험을 떠 올려보세요. ‘민채는 체육을 참 잘하네’에서 출발해 보려고 합니다. 운동회 때 늘 계주선수로 뛰던 친구인 민채는 뜀틀도 잘 넘고, 줄넘기도 잘하고, 피구도 잘합니다. 운동 기능이 뛰어난 그런 모습입니다. 민채는 체육을 잘한다고 할 때 운동 기능이 뛰어난 모습을 생각하게 됩니다. 그래서 그동안 학교에서는 스포츠에 필요한 다양한 기본적인 기능들을 쪼개서 가르쳐왔습니다. 아이들은걷고, 뛰고, 구르고, 던지고, 받기 등의 기본 기술을 배웁니다. 초등교사들은 기능적으로 스포츠를 잘할 수 있는 밑거름을 만드는 데 주력해왔습니다.
그런데 체육도 잘하고 다른 스포츠 활동에도 열심히 참여하며, 튼튼한 체력을 길러 다른 아이들을 괴롭히는 민채라면 어떨까요? 반칙을 해서라도 이기고, 체육 준비물도 혼자서 독차지 한다면 어떨까요? 과연 민채가 체육을 제대로 배워 잘 하고 있는 걸까요? 이러한 물음을 통해 우리는 기능이 아닌 다른 측면에서도 ‘잘’이라는 것을 고민해보게 됩니다. 이것을 우리는 본질적이며 궁극적인 측면에서의 ‘잘’이라는 의미를 파악해 본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짜 의미를 생각해보는 것입니다. 아마도 체육을 잘 배워서 보여줄 수 있는 모습 내지는 체육이 삶에 바람직하게 깃든 모습을 생각해보면 이해하기가 쉬울 것 같습니다.
그러면 체육을 진짜 잘하는 민채의 모습은 어떨까요? 체육 시간에 늘 즐거운 마음으로 참여합니다. 배려하는 마음이 예쁜 민채는 체육용품도 잘 준비하고 정리합니다. 신체활동의 중요성을 알고 태권도 도장을 열심히 다니며 엄마와 산책도 자주 갑니다. 페어플레이의 소중함을 알고 규칙을 잘 지킵니다. 실수한 친구를 늘 격려하고 응원합니다. 급식 먹을 때도 동생들에게 양보를 하고 새치기를 하지 않습니다. 어려운 수학 문제를 풀 때에도 포기하기 보다는 조금 더 참고, 다른 방법이 없나 궁리해 봅니다. 체육에 관련된 영화와 책도 보며 스포츠 소양을 쌓아갑니다. 그리고 체육을 사랑합니다. 그 사랑을 토대로 다양한 스포츠 활동 참여하며 자신의 영혼을 가꿉니다. 이쯤되면 우리는 민채를 체육 찐이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이제 민채 엄마를 주인공으로 삼아 생활체육 장면에서 ‘잘’의 의미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배드민턴을 잘 치는 민채 엄마의 모습을 그려볼까요? 민채 엄마는 오늘도 성실히 레슨을 받습니다. 풋워크를 배우고, 하이클리어, 스매시, 드라이브, 커트 등 다양한 스트로크를 배웁니다. 그리고 그것들이 경기 중에 어떻게 쓰일 수 있는지 생각하며 배드민턴을 칩니다. 게임의 룰도 배우고 자리 잡는 법도 배웁니다. 체력도 관리하고 각종 배드민턴 동영상을 섭렵하며 이기기 위한 방법들을 연구합니다. 배드민턴의 기능 향상을 위해 부단히 노력합니다. 오늘도 위대한 A조의 경기를 보며 감탄합니다. 배드민턴 고수인 A조가 되기 위해서는 평범한 노력이 아닌 각고의 노~오~력을 해야 함을 알기에. “정말 잘 치시네요.”로 마무리 인사를 드립니다.
그런데 가끔 민채 엄마는 “저 사람 A조 맞아?”라고 되묻게 되는 실력자들도 만나게 됩니다. 비슷한 실력의 사람들로 팀을 꾸려 운동 되는 게임만 들어갑니다. 열심히 비위 맞춰주면 적선하듯 한 게임 쳐 줍니다. 들어간 게임에서 잔소리 대마왕이 되거나, 인-아웃 판정에 불복합니다. 상대방이나 파트너의 실력을 고려하지 않고 오로지 최선을 다해 모든 게임을 이기기 위해 칩니다. 그 반대의 경우도 있습니다. 그냥 대충대충 칩니다. 어쩌다 지게 되면, 싫은 티 팍팍 내며 오늘 컨디션이 안 좋다고 말합니다. 나는 내 운동만 한다는 생각으로 끝나고 청소나 정리도 하지 않습니다. 자신의 급수를 D라고 속이고 대회에 나가 상금도 탑니다. 이런 분들을 만나면 배드민턴을 치는데 회의가 듭니다. ‘나는 나중에 저러지 말아야지’ 하고 생각하게 됩니다.
가끔 민채 엄마는 ‘나도 저렇게 되고 싶다’는 생각이 드는 분들도 만나게 됩니다. 초보자를 위해서 먼저 다가가 난타를 치며, 한 두 가지 정도 신경 써야 할 것을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한 점을 내 주더라도 늘 모두가 다치지 않게 세심한 플레이를 합니다. 자신보다 실력이 모자란 분들과도 즐거운 마음으로 격려를 하며 경기를 합니다. 승패에 관계없이 자신의 파트너와 상대편에게 수고의 말을 건넵니다. 운동을 할 수 있게 배려해준 가족들에게 고마운 마음을 갖습니다. 대회에 나가면 처음 보는 상대편 선수들에게 먼저 인사합니다. 웃으며 악수를 건네고 즐거운 게임이 되기를 서로 응원하고 심판에 대한 인사도 잊지 않습니다.
한 마디로 그분들은 배드민턴을 통해 끊임없이 자신을 다듬어가는 분들입니다. 삶의 어려움 속에서도 배드민턴에서 배운 지혜를 생각하는 사람입니다. 포기하고 싶을 때, 한 발 더 먼저 움직이고 늘 준비합니다. 일이 생각대로 풀리지 않거나 힘이 들면 숨 고르기를 합니다. 마치 다음 샷을 위해 한번은 길고 멀리 하이클리어를 쳐 시간을 버는 플레이를 하는 것처럼 여유를 가집니다. 만약을 대비하며 자신의 일과 삶을 늘 성찰합니다. 라켓줄이 끊어질 때를 대비하고 라켓줄 간격을 보며 스윙을 점검하듯 살아갑니다. 운동할 수 있음에 감사하고, 가족들과도 의미 있는 시간을 보냅니다. 인생을 배드민턴 치듯 살아냅니다. 닮고 싶은 그 분들을 우리는 진정한 배드민턴 찐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닮고 싶은 모습으로 살아가는 사람을 우리는 스포츠맨이라고 합니다. 실력과 인성을 겸비한, 안과 밖이 조화를 이룬 그런 이상적인 스포츠맨에게서 우리는 스포츠맨십(sportsmanship)을 배웁니다. 배드민턴 찐은 스포츠맨십을 가지고 있는 사람입니다. 실력은 있지만, 닮고 싶지 않은 선수들이 가지고 있는 것은 게임즈맨십(gamesmanship)입니다. 오직 기능향상에 초점을 두고 이기는 것이 유일한 목적인 경우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람들에게 게임즈맨십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동양적인 관점에서 스포츠맨십을 표현하자면 ‘문질빈빈(文質彬彬’)의 상태로 표현할 수 있을 것입니다. 논어에 나오는 말로 무늬와 바탕, 형식과 내용이 조화를 이루었다는 뜻입니다. 능력과 심성이 조화를 이루고 기술과 덕성이 균형을 이룬 상태입니다. 주어진 상황에서 좌절하지 않고 시의적절한 최선의 경기를 펼칩니다. 운동할 때 배운 지혜들을 삶에서도 풀어냅니다.
배드민턴을 잘 친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내가 코트에서, 체육관에서, 일상생활서 배드민턴 치듯 인생을 살아내는 것입니다. 배드민턴을 통해 배운 것을 잊지 않습니다. 배드민턴을 통해 자신의 삶을 돌아보며 깨달음을 얻습니다. 그렇게 얻는 크고 작은 지혜들을 삶에서 긍정적인 방식으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것입니다. 배드민턴을 통해 삶을 잘 살아내는 것 그것이 바로 배드민턴을 잘 친다는 진짜 의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