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남보다 중요한 것
타이슨, 헬렌켈러, 황산의 공통점을 아시나요? 직업도 살았던 시대로 달랐던 이 세분 사이에 공통점이 있을까?하고 의문을 품는 것이 당연합니다. 하지만 이 세분은 분명한 인생의 공통 분모가 있습니다. 이 세분 모두 일생일대의 운명적 만남을 가졌다는 것입니다. 운명적 만남이라는 구절을 떠올리면 ‘연인’을 떠올리겠지만 다행인지 불행인지 그들의 운명적 만남의 주인공은 연인이 아닙니다. 그들의 인생에 운명처럼 다가와 손 내밀어 준 만남은 스승님과의 만남이었습니다.
좋은 선생님을 만난다는 것은 누구에게나 큰 행운입니다. 자신의 인격을 다듬어 가는 일은 커다란 드라마를 통해서도,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서도 가능하다고 합니다. 인격을 다듬어 가면 인간은 성숙하고 지혜로워집니다. 죽음, 상실, 고난 등의 비극적이고도 커다란 드라마 같은 일은 인간을 철들게 합니다. 독서, 교육, 대화 등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를 통해 얻는 꾸준한 성찰도 성숙한 삶으로의 성장을 이끕니다. 이 일상의 작은 에피소드를 위대한 스승과 함께하는 것은 크나큰 축복입니다. 구체적으로 그들이 누린 축복을 한 번 살펴보겠습니다.
마이크 타이슨은 복싱 챔피언입니다. 데뷔 후 37연승, 19연속 KO 승을 거둔 역대 가장 강력하고 유연한 헤비급 선수로 평가받았습니다. 공격과 수비를 동물적인 감각으로 해내는 한 시대를 풍미한 위대한 챔피언입니다. 핵주먹 마이크 타이슨은 인생의 명암대비가 극명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가 누렸던 밝고도 위대한 승리의 이면에는 그만큼 어두운 부분도 있었습니다. 가난과 폭력으로 찌든 그는 어린 시절부터 소년원을 제 집 드나들 듯합니다. 그런 문제아의 타고난 복싱 재능을 알아본 위대한 스승 커스 다마토와의 운명적 만남이 소년원에서 이루어집니다. 72세의 커스 다마토는 타이슨을 자신의 집으로 데려가 마음의 상처를 보듬어 주며 복싱을 가르쳤습니다. 자신 역시 4살 때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불우한 시절 속에서 숱한 방황을 하며 살아냈기에 자신과 비슷한 상황에 처한 아이들을 외면하지 못햇습니다. 타이슨 이전의 제자인 불량 청소년이었던 플로이드 패터슨과 가난한 호세 토레스 또한 커스 다마토의 따뜻한 가르침으로 올림픽 챔피언이 되었습니다. 타이슨 역시 할아버지 스승님인 커스 다마토의 칭찬과 격려, 혹독한 훈련 속에서 자신의 삶을 송두리째 바꾸었습니다. 20살이 된 타이슨이 챔피언이 되기 일년 전 커스 다마토는 폐렴으로 세상을 떠납니다. 아버지와 같은 진심을 담은 가르침이 출구가 보이지 않는 어두운 타이슨의 삶에 밝은 빛이 되었습니다.
헬렌캘러에게 빛은 앤 설리번 스승님이었습니다. 설리번의 지속적인 지도 속에서 열심히 공부한 덕택에 1904년 래드클리프 대학을 우등생으로 졸업했습니다. 대학 졸업 후 장애인에게 관심을 가지고, 전 세계 장애인 복지 사업에 큰 공헌을 하였습니다. 둘의 인연은 이렇게 시작됩니다. "보지 못하고,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는 아이를 돌볼 사람 구함!"이라는 신문구인광고를 보고 설리번 선생님은 자신의 과거를 떠올리며 헬렌캘러에게 사랑을 주기로 결심하게 됩니다. 엄마는 죽고 아빠는 알콜 중독자였던 앤 설리반은 보호소에 함께 온 동생마저 죽자 충격으로 실명까지 하게 됩니다. 자살시도와 난동으로 회복불능 판정을 받고 정신병동 지하독방에 수용되기에 이릅니다. 모두가 포기했을 때 간호사인 로라의 헌식적인 돌봄으로 앤은 삶은 변하게 됩니다. 한 신문사의 도움으로 개안수술에 성공한 설리번이 구인광고를 그냥 지나칠 수 없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보지도 듣지도 못하는 제멋대로인 헬렌켈러를 포기하지 않고 마음을 다해 가르치며 48년간 함께 하게 됩니다. 진심을 다한 선생님의 마음을 깨닫고 헬렌켈러의 삶도 변합니다. 헬렌캘러는 사흘만 볼 수 있다면 그 첫째날 제일 처음으로 나같은 사람을 가르치는 그 어려운 일을 사랑으로 해 내신 설리번 선생님을 보고싶다고 말합니다. 서로가 서로를 생각하는 절절한 마음을 확인할 수 있는 대목입니다.
황산은 우리에게 다소 생소할 수 있습니다. 황산보다 우리는 그의 스승인 정약용을 더 잘 알고 있습니다. 다산 정약용 선생님은 워낙 잘 알고 있는 바와 같이 조선시대 최고의 살학자이자 과학자이자 문학가입니다. 22살에 관직에 입문하여 정조와 함께 많은 업적을 남기고, 정조가 죽고 신유박해 와중에 전라남도 강진에 유배됩니다. 나이 40에 강진에 유배되어 18년동안 <목민심서>, <흠흠심서>, <경세유표>와 같은 불후의 걸작을 저술하게 됩니다. 나이 40에 모든 것을 내려놓고, 아내와 자식도 볼 수 없는 적막한 유배지에서 15살 더벅머리 소년 황산을 만나게 됩니다. 다산 초당의 수많은 제자들이 결국은 스승과 등을 돌리지만, 그 더벅머리 소년은 스승의 마지막까지 함께 한 진정한 제자였습니다. ‘부지런하고 부지런하고 부지런하라’는 스승 정약용의 ‘삼근계(三勤戒)’를 평생 마음에 담고 공부에 매진했습니다. 시골 촌부로 입에 풀칠하는 연명하는 삶이 아닌 부지런히 읽고 쓰고 고민하며 자신의 삶을 빛나게 가꾸는 사람으로서 자아실현을 하며 살아가게 됩니다. 자신이 부족함을 고백한 제자에게 "공부는 꼭 너 같은 아이가 해야 한다. 둔하다고 했지? 둔탁한 끝으로는 구멍을 뚫기 쉽지 않지만, 계속 들이파면 구멍이 뚫리게 되지. 앞뒤가 꼭 막혔다고? 여름 장마철 봇물을 보렴, 막힌 물은 답답하게 앞으로 나아가지 못한 채 제자리를 빙빙 돈다, 그러다가 농부가 삽을 들어 막힌 봇물을 터뜨리면 그 성대한 흐름을 아무도 막을 수가 없단다. 답답하다고 했지? 그럴수록 꾸준히 연마하면 나중에는 울퉁불퉁하던 것이 반질반질해져서 마침내 반짝반짝 빛나게 된다."면서 둔하고 융통성이 없고 답답한 아이를 훌륭한 시인으로 키워 냈습니다.
타이슨, 핼랜캘러, 황산의 공통점을 찾으셨나요? 운명처럼 삶의 방향과 모습이 송두리째 바뀌는 터닝 포인트는 스승과의 만남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위대한 만남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만남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만남 이후의 노력입니다.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지키고 따르려는 성실한 노력이 없었다면 절대 이들은 자신의 삶을 바꾸지 못했을 것입니다. 타이슨도 헬렌 켈러도 황산도 스승을 닮고자 하는 끊임없는 노력이 없었다면 역사가 인정하는 빛나는 삶을 살아 내기 어려웠을 것입니다.
진정한 공부는 스스로 하는 공부입니다. 학습의 동기를 스스로 깨우치고 주도적으로 공부하는 것입니다. 자기주도학습self-directed learning이지요. 자기주도적 학습은 강력한 학습동기를 가지고 있을 때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학습이 일어날 때 중요한 것이 모델링입니다. 워너비를 가슴에 품는 것입니다. ‘저 사람처럼 되고 싶다. 저 분을 닮고 싶다’ 강력한 소망이 있을 때 스스로 변하기 위해서 각고의 노력을 하게 됩니다. 존재의 이유가 되는 워너비의 존재는 그래서 중요합니다. 그래서 노력하게 됩니다. 이유를 알기 때문입니다. 고기를 잡아주는 것보다 잡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합니다. 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고기를 잡아야 하는 분명한 이유를 아는 것입니다.
우리는 일상의 크고 작은 만남을 마주하며 살아갑니다. 수많은 만남들이 아무 의미 없이 흘러가 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만남의 진정한 의미는 만남 이후에 그 만남을 소중히 아끼고 가꾸는 노력에 있습니다. 초심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도 말합니다. 책과의 만남, 사람들과의 만남은 중요합니다. 만남 속에 숨겨진 보석들을 손에 쥔 모래알처럼 흩어져버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은 만남이 마음속에 한 줄기 빛으로 자리 잡기도 합니다. 그 차이는 그 만남을 소중히 여기고 끊임없이 노력하는 사람들만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만남은 소중합니다. 더 엄밀히 말해 만남도 소중합니다. 그러나 만남보다 위대한 것은 노력입니다.
여러분은 지금 일상의 크고 작은 만남을 의미있게 만들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나요?
그림 조민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