패션의 완성은 신발이라는 말을 들어보셨나요? 저는 20년 전쯤 들었던 말입니다. 30년 전쯤에는 패션의 완성은 양말이라는 말도 있었지요. 이런 말들이 그때도 지금도 설득력 있어 보이는 이유는 그 말을 한 사람 때문입니다. 그 친구들은 패션에 나름 일가견이 있었지요. 가만히 생각해보면 맞는 말이기도 합니다. 집을 나서기 전 그날 입은 옷에 따라 정해지는 게 발 아래쪽 패션입니다. 스커트-스타킹-구두 혹은 청바지-양말-운동화로 이어지는 매칭 시스템이 작동합니다. 멋쟁이라면 그날 패션의 마무리도 감각적으로 합니다. 흐름을 방해하지 않으면서 포인트가 되는 그날 패션의 넛지를 양말 혹은 신발에 숨겨두게 되지요. 그 뒤 ‘패션의 완성은 얼굴이다.’ ‘패션의 완성은 월급이다’라는 말들은 그저 씁쓸하기만 했습니다. 이미 얼굴도 월급도 그닥인, 패션에 신경 쓰고 살기에는 하루 하루 버텨내기 바쁜 워킹맘이 되었으니까요.
패션에 대한 미련은 버렸지만 신발에 대한 미련은 아직도 떨고 있습니다. 그래서 가끔 심심풀이 심리테스트 질문에 대꾸하고 있다보면 난감할 때가 있습니다. “당신은 처음 보는 사람의 어디를 보나요?” 4지 선다 보기에는 눈을 본다는 말은 있어도 신발을 본다는 없기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저는 낯선 사람을 볼 때 신발부터 봅니다. 신발을 보면 그 사람이 지금 어떤 삶을 살고 있는지가 그려지니까요. 신발까지 신경 쓰며 살 수 있는 사람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을 알 수 있습니다. 무엇을 신경 쓰며 살아가는 지도 알 수 있지요. 무난한 매칭 시스템이 작동했다면 구두를 신었을 법도 한데, 넛지 섞인 운동화를 보게 되면 시선은 얼굴로 향하게 됩니다. 신발과 얼굴과 가방을 차례로 확인하면서 그 사람이 살아내는 삶을 가늠합니다. 제가 신발 만드는 사람이냐구요? 아쉽게도 이번 생은 아닌 듯합니다. 그냥 저는 운동화를 신은 사람을 좋아할 뿐입니다. 움직이기에 편안한 차림의 사람이 좋습니다. 언제 어디서든 편안하게 걸을 준비가 되어있는 사람이 좋습니다.
아이를 임신하고도 제일 먼저 사고 싶었던 것은 아이의 신발이었습니다. 정확히 운동화였습니다. 딸아이는 말도 빨랐고 몸이 가벼워서인지 돌 전에 걸었습니다. 조그만 발로 흔들흔들 불안불안 걷는 모습이 참 귀여웠습니다. 아장아장 어린이집을 다니던 녀석이 초등학교에 입학 하던 날이 왔습니다. 할머니가 사준 흰색 운동화를 신고 엄마가 사준 빨간 가방을 메고 좋아하던 모습이 상투적이긴 하지만 정말 엊그제 같습니다. 바쁘다는 이유로 운동화도 잘 빨아주지 못한 엄마였기에 너무나 미안한 그 시절을 아이는 잘 버텼습니다. 그 뒤로 몇 번의 운동화를 새로 사 줄 만큼 아이는 많이 자랐습니다. 새 운동화를 살 때면 아이가 커가는 게 실감이 납니다. 운동화를 살 때마다 기분이 좋은 이유는 아이가 걷는 모습이 그려지기 때문입니다. 딸 아이가 운동화를 신고 걸으며 건강하고 행복하길 기도합니다. 걸을 만큼 여유 있길 바라고 아이가 걷는 그 길이 꽃길이길 바랍니다.
꽃신 싣고 꽃길 걸으면 더 예쁠텐데 왜 굳이 운동화냐구요? 반드시 운동화여야만 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운동화를 신으면 잘 걸을 수 있습니다. 오랫동안 안전하게 걸을 수 있습니다. 발이 편해야 모든 것이 편안합니다. 첫 소개팅은 대부분 새로 산 뾰족구두 때문에 망합니다. 발끝에서부터 올라오는 화끈거리는 불편함이 사람을 불안하게 만들기 때문입니다. 인간은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을 때 평온하고 행복합니다. 운동화는 편안한 움직임을 위한 가장 기본적인 준비물입니다. 매일 매일 움직이면 건강한 삶이 찾아옵니다. 운동화를 한자로 쓰면 運動靴입니다. 운명을 한자로 쓰면 運命입니다. 움직일 때 운명도 변합니다. 건강한 삶을 위하여 매일 매일 안전하게 틈날 때마다 걷는 삶을 바랍니다.
운동화이어야만 하는 두 번째 이유는 운동화를 신으면 좋은 자세를 유지할 수 있습니다. 뒷굽이 높은 형태의 신발들은 척주 건강에 좋지 않습니다. 앞으로 쏠리는 현상을 방지하기 위해 몸의 중심을 뒤로 두게 되고 이로 인해 배와 가슴은 앞으로 나오고 엉덩이와 허리를 뒤로 젖히게 됩니다. 라인을 살리기 위해 신은 하이힐이 척추에 지속적으로 부담을 증가시켜 허리 통증 및 허리디스크 등을 유발할 수 있습니다. 굽이 없는 단화도 밑창이 얇기 때문에 지면으로부터 받는 충격을 그대로 흡수합니다. 맨 아래쪽에 있는 발바닥에 체중이 모두 실린 상태에서 바닥에서 올라오는 충격에 무방비 상태로 노출되는 것입니다. 반면 운동화는 적당한 두께로 쿠션감이 있어 발목 무릎으로 전해지는 충격도 분산하며 어깨를 활짝 펴고 똑바로 설 수 있는 바른 자세를 유지할 수 있게 합니다.
바른 제세를 유지하는 것은 건강함뿐만 아니라 성공을 불러옵니다. 바른 자세가 성공씩이나 불러 온다고? 의문을 가질 수도 있겠지만 조금만 생각해 보면 충분히 예측가능한 타당한 이야기입니다. 몸짓 언어가 변하면 심리적 변화도 생깁니다. 웃을 일이 없어도 따라 웃으면 기뻐지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또한 개인의 심리적 변화는 그가 속한 사회에서도 파장을 일으키게 됩니다. 허리를 쭉 펴고 당당한 자세를 하고 있으면 그에 걸맞게 대우합니다. 반면 가슴을 웅크리고 고개를 숙인 채 다니는 일들은 주변 사람들에게 왜소하고 자신감 없는 것으로 보일 뿐만 아니라 자신도 의기소침하고 무력한 느낌에 빠져들게 합니다. 자신감이 넘치고 차분하게 허리를 곧게 펴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며 여유롭게 행동하는 것은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과 좋은 관계를 맺고, 사람들에게 긍정적인 인상을 남길 기회가 늘어납니다. 결과적으로 좋은 일이 일어날 확률이 높아지고, 실제로 좋은 일이 생기면 자신감도 커지는 선순환이 성공도 불러오게 됩니다.
이 글을 쓰다보니 몇 년전 부산에서 있었던 일이 생각 납니다. 전국의 다양한 분야의 스포츠인들이 심판 교육을 받는 연수에 참석하게 되었습니다. 이름을 대면 알만한 프로 배구 감독님께서 이런 말씀을 해 주셨습니다. “저는 최종 엔트리 명단을 뽑을 때 선수들 발을 봅니다. 대회 앞두고 슬리퍼 끌고 다니는 놈들은 두 번 생각 안 하고 최종 명단에서 빼버립니다. 발이 삐긋하거나 부딪히기라도 하면 큰일 날 걸 아는 선수들은 절대 운동화도 꺾어 신지 않거든요. 그런 정신 상태로는 경기에 나가면 안 됩니다. 한마디로 기본이 안 된 거지요.” 이 말을 듣고 평소에 운동화를 바르게 신는다는 것은 프로 선수들에게도 사소해 보이지만 매우 중요한 일임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집을 나설 때 제일 마지막에 신는 신발에까지 신경 쓰며 운동화 끈을 제대로 조여 매고 나서는 선수와 대충 슬리퍼를 끌고 다니는 선수가 배구경기를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감독님 눈에는 훤히 보이는 것이 있겠지요. 운동화를 신고 어깨를 펴고 똑바로 서서 걷는다는 것은 삶에 대한 태도를 반영하는 것입니다.
많이 움직일수록 우리는 건강한 삶을 살아낼 수 있다는 것을 경험적으로 알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최대한 편안하게 움직일 수 있는 습관을 형성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점심 식사 후 언제든 편안하게 걷기 위해서 운동화를 신고 나가는 것보다 현명한 선택은 없어 보입니다. 딸아이가 운동화를 사랑하고 움직이는 것을 사랑하는 삶을 살게 되길 바랍니다. 그래서 더 많은 움직임과 신체활동에 도전하며 자신의 인생을 적극적으로 살아가게 되기를 기도합니다. 운동화 사주던 날 딸아이를 생각하며 행복할 수 있었던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상상하기는 두렵지만 엄마인 우리 모두는 알고 있습니다. 언제까지나 운동화를 신고 “엄마 다녀오겠습니다.”를 외치는 딸의 뒷모습을 볼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눈 감을 때, 단 한가지 소원이 있다면 딸아이가 건강하게 살아가는 것이라고 대답하고 싶습니다. 아무리 돈이 많아도 건강하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으니까요. 건강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 것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부터 우리는 미래를 위한 투자를 해야 합니다. 아이의 건강한 삶을 위한 최선의 투자는 운동화를 사주는 것이 아닐까 생각해 봅니다. 그리고 움직임의 기쁨을 느낄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입니다. 몸을 움직이는 재미를 느낀 사람은 스스로 주도적으로 움직이며 평생 건강하게 살아갈 수 있습니다. 누구네 엄마는 아이 청약통장을 만들어 줬다더라, 누구네 엄마는 펀드로 저금을 해 준다더라 하며 아이가 평생 가난하지 않게 살기 위해 이리저리 궁리합니다. 자녀의 미래를 위해 지금부터 투자를 게을리하지 않는 엄마들의 정성이 부러울 따름입니다. 청약도, 펀드도, 주식도 해 주지 못한 저는 운동화를 사줍니다. 그것이 절대 망하지 않는 딸아이를 위한 엄마의 효자 종목임을 알기 때문입니다. 가만히 생각해보면 저는 딸아이에게 물려줄 유산이라고는 ‘움직이는 것을 그리고 신체활동을 사랑하는 삶의 자세’밖에는 없는 듯합니다. 부끄럽거나 두렵지는 않습니다. 그 삶의 가치를 충분히 알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주식대신 운동화를 삽니다. 그리고 함께 걷습니다. 오래 오래 함께 걷다보면 언젠가는 헤어질 날도 오겠지요. “딸 그동안 함께 운동할 수 있어서 행복했어. 앞으로는 너의 아이와 함께 운동하며 건강하게 지내.”라고 말할 수 있었으면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