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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애 Sep 29. 2020

호우시절 스매싱!

비처럼 콕처럼

“너와 함께 한 시간 모두 눈부셨다. 날이 좋아서 날이 좋지 않아서 날이 적당해서 모든 날이 좋았다.” 도깨비라는 드라마의 대사입니다. 어쩜 이리도 제가 배드민턴을 처음 시작할 때의 마음을 잘 표현했는지 도깨비 작가님은 천재입니다. 정말 모든 날이 좋았습니다. 배드민턴을 치기 위해 일도 빨리 빨리 합니다. 대회 일정에 맞춰서 레슨도 꼬박꼬박 갑니다. 외로워도 슬퍼도 눈이 오나 비가 오나 주구장창 배드민턴 칠 생각만 했습니다.

세상 아래 영원한 것은 없다더군요. 사람 마음도 그런 듯합니다. 어느 정도 알게 되면 슬슬 꾀가 납니다. 처음의 간절한 마음은 사라지고 슬슬 간을 보게 됩니다. 누군가를 사귀어 본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잘 알 것입니다. 처음에는 얼굴 보는 것만으로 좋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단점도 보이고 한 눈도 팔게 됩니다. 그래서 강조하는 것이 초심인가 봅니다. 마음을 어디 붙들어 매놓을 수 없으니 초심을 지킨다는 것 자체가 애시당초 불가능한 일일 지도 모르겠네요. 운동도 그렇습니다. 처음에는 온통 배드민턴 생각뿐입니다. 그런데 슬슬 꾀가 납니다. 더운 날도 싫습니다. 땀 범벅이 되어 땀이 비처럼 계속 흐르니까요. 추운 날도 싫습니다. 손이 얼어서 라켓을 쥐기도 힘드니까요. 날이 좋으면 운동가기 아까운데? 이런 생각도 듭니다.

특히 비오는 날은 더 꾀가 납니다. 그저 비를 구경하고 싶습니다. 파전에 막걸리 같은 호사는 아니더라도 비를 맞고 싶지는 않습니다. 비오는 날은 진심으로 체육관을 가기가 싫습니다. 라켓가방, 수건, 물통 등등을 들고 우산을 쓰고 체육관까지 걸어가다 보면 발이 젖습니다. 젖은 발에 물기를 닦고 뽀송하고 두툼한 양말을 신어야 합니다. 운동화 끈도 꽈악 조여 매고 운동을 해야 합니다. 바닥은 습기 때문에 평소보다 더 미끄럽고 간혹 우산이나 옷에서 떨어진 물기가 남아 있을 수 있습니다. 그래서 비오는 날은 다치지 않게 조심해야 합니다. 스트레칭도 열심히 하고 중간 중간 바닥도 닦아 주어야 합니다.   


아무튼 비 오는 날은 운동을 가야하나 말아야 하나 괜히 고민이 되는 날입니다. 그래도 약속이 없으면 꾸역꾸역 가긴 갑니다. 비 오는 날은 체육관에 사람들이 별로 없습니다. 다들 저와 비슷한 상념에 빠지기 때문이겠지요. 비 오는 날의 장점도 있습니다. 사람이 없어서 평소보다 레슨을 여유 있게 받을 수 있습니다. 다수의 레슨자들이 결석해서 시간이 많이 남으면 코치님과 게임도 할 수 있습니다. 요령 피우지 않고 성실하게 살다보면 가끔 행운이 찾아오듯.

그날도 비가 억수같이 세차게 내리던 날입니다. 사람이 없어서 토 나올 때까지 레슨을 받았던 기억이 납니다. 체력적으로 가장 힘든 스트로크 레슨은 당연 스매싱입니다. 스트로크는 라켓을 쥐고 셔틀을 치는 다양한 방법을 말합니다. 아마도 그날 코치님은 작정하신 듯 했습니다. 평소에는 시간에 쫒기다보니 레슨 끄트머리에 디저트처럼 스매싱을 했습니다. 10번 정도 온 힘을 다해 코치님이 올려주는 콕을 치면 레슨이 끝났습니다. 그런데 그날은 호우주의보 속에 호우스매싱이었습니다. 정말 억수같이 내리는 비처럼 쉴 새 없이 콕이 날아왔습니다. 끝없이 올라오는 셔틀콕이 미웠습니다. 그래도 죽을 둥 살 둥 버틴 이유는 스매싱은 배드민턴의 꽃이기 때문입니다. 스매싱은 상대편 코트로 강하고 빠르게 콕을 내리 꽂는 공격의 최절정 스트로크입니다. 배드민턴은 기-승-전-스매싱입니다. 끝없이 이어지는 랠리의 목적은 공격 찬스를 만드는 것입니다. 그 공격 찬스 말미에 멋지게 스매싱을 날리면서 득점에 성공할 때 그렇게 속이 시원할 수가 없습니다. 상대편에게 살짝 미안한 마음만 빼면 카타르시스! 그 자체입니다. 웬수 뺨 때리듯 풀스윙 스냅을 줘서 멋 부리며 치다가는 타이밍을 놓쳐 망신당하기 일쑤이지만요.    


배드민턴을 치는 사람들은 스매싱에 대한 연정을 품고 있습니다. 누구나 멋지게 스매싱 한방을 꿈꿉니다. 그런데 막상 실전 게임에서는 뜻대로 되지 않습니다. 그 좋은 스매싱 찬스들을 망쳐버립니다. 네트에 걸리거나, 헛스윙 아니면 아웃되기 일쑤입니다. 그리고 정말 안타까운 비명에 가까운 한숨 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집니다.


왜 많은 사람들이 스매싱에 실패하는 걸까요? 이유는 많겠지만, 가장 보편적으로 2가지를 꼽습니다. 발과 타이밍입니다. 셔틀콕을 치는 순간 발이 움직여서 콕을 치기 좋은 자리에 있어야 하고, 적당한 타이밍에 쳐야 합니다. 배드민턴을 팔로 치는 게 아니라 발로 치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먼저 움직여서 콕을 칠 수 있는 곳으로 빠르게 이동하지 않으면 팔로 라켓을 휘두르는 것은 공허한 메아리일 뿐입니다. 빠르게 움직이기 위해서 평소에 풋워크도 연습하고 복근 운동도 하고 어깨 근력도 키우고 손목의 힘도 길러야 합니다. 게임눈치가 좋아서 콕이 떨어질 지점을 예상했다 하더라도 다리가 움직이지 않으면 아무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스매싱은 발이 제때 빠르게 움직이지 못해서 칠 수 있는 적절한 위치를 선점하지 않으면 절대 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스매싱은 밀리면 안 된다.”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두 번째는 타이밍입니다. 스매싱은 자세, 점프 높이와 강약 조절에 따라서 스탠딩 스매시, 원점프 스매시, 서전트 스매시, 반스매싱으로 분류할 수 있습니다. 다양한 스매싱을 잘 구사하기 위해서 타이밍을 잘 잡아야 합니다. 콕이 내 머리 위를 지나가기 전에, 이마 45도 앞쪽에 있을 때 낚아 채 듯 쳐야 합니다. 쓸 때 없이 찬스를 만난 기쁨에 점프하다가는 타점도 타이밍도 놓치게 되어 콕은 네트에 딱 걸려버립니다. 아니며 미쳐 네트도 못 넘기고 우리편 코트에 내동댕이 쳐 집니다. 치기 전에 미리 라켓을 들고 바로 칠 수 있도록 준비하고 공을 끝까지 보고 눌려주듯 쳐야 합니다. ‘아 콕이 오네. 라켓 들어야지’하면 이미 늦습니다. 미리 준비하고 공이 포물선을 그리며 뒤로 넘어가지 전에 쳐야 합니다. 앞쪽에서 쳐야 하기 때문에 한박자 빠르게 느껴질 때 쳐야 합니다. 힘이 실어주기 위해서는 빗겨 맞지 않도록 정타로 쳐야합니다.

 

가까스로 콕을 칠 수 있는 자리에 간신히 도착한 경우 '밀렸다'라는 표현을 씁니다. 스매싱은 '밀려서' 칠 수 없습니다. 밀릴 경우 스매싱이 문제가 아니라 상대방에게 나의 다음 스토로크가 읽히게 됩니다. 밀린 그곳에서 구사 할 수 있는 스트로크는 정해져 있기 때문입니다. 상대편은 내가 친 콕의 길목을 차단할 수 있습니다. 내가 어디로 어떻게 공을 보낼지 이미 알고 있는 상대와의 게임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스매싱 찬스를 놓치면 상대방에게 공격 찬스를 주게 되는 것입니다. 힘들게 만든 찬스를 상대편에게 바치는 것입니다. 그래서 누가 봐도 이건 딱 잘 만든 스매싱 찬스에 실수를 하면 전세는 역전되기 일쑤입니다.


집중호우 속에서 배운 집중스매싱 덕분에 기회는 늘 준비한 사람만이 잡을 수 있다는 것을 다시 한번 깨닫게 되었습니다. 늘 콕은 나의 예상보다 빠르게 날아오니까요. 하루 아침에 발이 빨라지는 것이 아니기에 기초체력을 다져 놓아야 합니다. 콕을 칠 타이밍을 알고 친다는 것은 스스로 준비가 끝났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미처 준비하지 못한 채 가까스로 콕을 넘기기에만 바쁘면 게임 내내 이리저리 끌려다니게 됩니다. 게임의 주도권을 빼앗기지 않으려면 미리 준비하고 적절한 타이밍을 알아야 합니다. 인생의 주인으로 살기 위해서도 한 타임 빠르게 준비해야 합니다. 기회는 스매싱을 때릴 때처럼 앞에서 잡아야합니다. 머리 위로 날아가는 콕을 구경하고 있는 사람은 절대 기회를 잡을 수 없습니다.      


스매싱은 쉬지 않고 움직이며 적절한 타이밍을 볼 줄 아는 사람에게는 절묘한 공격 찬스가 됩니다. 스매싱은 나의 파트너와 함께 만들어 낸 찬스이고 타이밍입니다. 스매싱은 기회가 왔을 때 알맞은 타이밍에 쳐야합니다. 미리 준비해서 쳐야하고, 상황이 좋지 않으면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합니다. 치기 좋지 않은 높이와 속도로 날아오는 콕이라면, 다음 기회를 엿보아야 합니다. 무리하게 랠리를 끝내고 득점만을 목표로 연달아 스매싱을 구사하면 체력만 소진될 뿐입니다. 스매싱 찬스에서 더욱 침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아 이번이 기회다. 이제 다 됐다.’ 방심하는 순간 실수가 찾아오게 마련입니다.


인생도 타이밍입니다. 적절한 시기를 놓치지 않고 준비한 사람만이 성공할 수 있습니다. 사랑도 타이밍입니다. 버스 떠난 뒤에 손 흔들어 봐야 소용없습니다. 농사도 타이밍입니다. 봄에 씨 뿌리지 않으면 거둘 것이 없습니다. 잡을 수 있는 사람은 준비한 사람입니다. 준비하는 사람은 기회와 시간의 소중함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 모든 것에는 때가 있음을 아는 사람입니다.


비가 많이 오던 날 스매싱을 배우며 타이밍을 깨달았습니다. 호우시절에 호우시절을 배웠습니다. 무슨 말이냐구요? 호우시절(豪雨時節; 비가 많이 오던 날)에 호우시절(好雨時節;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 타이밍)을 배웠습니다. 호우시절(好雨時節; Good Rain Konws When to come)은 좋은 비는 시절을 알고 내린다는 뜻으로 중국 최고의 시인 두보의 춘야희우의 첫 소절입니다. 씨 뿌리지 않은 농부에게 봄비가 의미 없는 것처럼, 부지런히 움직여 비만 내리면 되게끔 준비해 두어야 합니다. 비가 필요한 그 시기에 알맞은 비를 내려 줄 수 있는 능력도 필요합니다. 여러분의 플레이가 호우(好雨; 좋은 비)가 되기를 늘 꿈꾸시길 바랍니다.


호우시절 스매싱! 비가 많이 오던 날 스매싱을 배우며, 스매싱은 절적한 타이밍을 알고 내리는 비와 같은 것임을 깨닫습니다. 셔틀콕 비가 되어 내리던 날, 호우시절의 의미를 알게 되었습니다. 스매싱도, 인생도, 사랑도 호우시절의 의미를 아는 사람만이 그 참 맛과 멋을 살려 삶이라는 실제에서 성공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저 역시 ‘나는 시절을 아는 호우인가?’ 반성해 봅니다.     


표지그림 조민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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