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까지 배드민턴을 치면서 들었던 가장 충격적인 에피소드로 세 번째 꼭지를 시작해보려 합니다. 저를 열심히 가르쳐 주는 P코치님께서 “지애쌤~ 쌤은 기적이에요.” ‘왜 기적이라는 거야? 모지? 모 이 나이에 이 정도면 잘 친다는 이야기를 하려고 저러시나’ 내심 기대를 하며 “왜요?”라고 물었습니다. “그 동안 레슨을 그렇게 받았는데 이렇게 못 치는 건 기적이네요.” 그날 심각하게 좌절하며, 그대로 있으면 안 될 것 같아서 저도 맞받아쳤습니다. “제가 기적이면 기적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는데요. 여기도 기적, 저기도 기적. 기적 소리 슬피우네요.” 저는 기적적인 여자입니다.(하하하) 갑자기 왠 기적 타령? 이런 생각이 든다면 이 글을 제대로 읽고 계신 겁니다.
기적의 혼복 비결에 대해서 이제부터 이야기해보려 합니다. 게임들도 머리를 스칩니다. 전국대회는 다 속이고 나옵니다. 여기도 사짜, 저기도 기꾼. 시 A조님은 기본으로 D조로 나옵니다. 저는 순수하게 D조가 전국대회도 D조로 나갔습니다. 무모했지요. 2019년 인천공항배 전국배드민턴 대회에서 준우승도 했습니다. 저 조차 예상하지 못한 결과였습니다. 그 뒤로도 많은 고수분들과 게임을 치르며, ‘도대체 내가 왜 이기는 걸까?’라는 의문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파트너 덕분일까요? 그 부분도 인정합니다. (그 동안 저와 함께 대회도 나가고 게임도 한 많은 파트너님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
그런데, 제 질문이 틀렸다는 것을 얼마전 깨달았습니다. 고수의 향기가 짙게 베인, 이름도 상수인 A조님과의 대화에서 그 이유를 알게 되어버렸습니다.
“누나, 누나네 팀한테 우리가 진 이유가 뭔지 아세요?” ‘모지? 이 고수는 질문이 다르네? 대부분 이겨놓고 진 이유를 물어보는데? 지고 나서 무슨 할 말이 있다고? 오늘 컨디션이 안 좋았다는 뻔한 변명을 하려고 그러시나’ 이렇게 생각했지요.
“글쎄요? 왜 졌을까요?”라고 시큰둥? 예의상? 물었습니다(허허허).
“혼복은 정해진 답이 딱히 없어요. 그 팀만의 스타일을 만들어가는 것이 제일 중요해요. 누나네 팀은 제가 그 동안 겪어보지 못한 게임 스타일을 가지고 있어요. 누나네가 그래서 어려웠어.”
역시 A조는 생각의 깊이도 보는 시야도 다르더라구요. 제 질문은 “도대체 우리 팀은 왜 이기는 걸까?”였어야 했습니다. 그 뒤로 몇 게임이 연속되자 고수인 상수는 우리 팀의 스타일 파악해버리고 저에게 패배를 안겨줬습니다.
우리가 다 아는 그 스타일이라는 말이 너무도 신선한 충격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리고 스타일이라는 그 안에 많은 의미가 담겨 있음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배드민턴 스타일 안에 담길 수 있는 것을 생각해보면 고개가 끄덕여질 거에요. 그 팀만의 로테이션 방식, 공격 루틴, 수비 루틴, 서브 스타일, 경기 매너, 경기 역사, 배려심, 협동심, 유머, 연습 방식 등 총체적인 개념이 바로 스타일 안에 담겨 질 수 있습니다. 우리 팀의 고유한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 우리 팀만의 스타일을 있느냐 없느냐가 결국 마지막 비결이라고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우리 팀의 스타일이 고유하고 튼실하면 아무리 잘 치는 상대를 만나도 기죽지 않을 기적의 게임을 만들게 되는 것이지요.
그 동안 팀의 스타일을 세련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여러분은 파트너와 함께 얼만큼 노력하셨나요? 스타일 만든다고 생각하면, 한 게임 한 게임 생각하게 되고 정성을 쏟게 됩니다. 생각하고 치고, 치고 나서도 반성하게 됩니다.
사실 스타일은 우리가 알고 있는 것보다 더 큰 의미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각자의 스타일을 만들어 내는 것이 모든 바람직하고 의미있는 활동의 목적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누군가 저에게 인내심, 정확성, 간결함, 우아함, 스타일 등의 감각을 어디서 처음 알게 되었는가를 묻는다면, 저의 대답은 그것을 문학이나 철학적 논쟁이나 기하학의 증명에서 알게 된 것이 아니라, 전혀 엉뚱한 데서 알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제가 그것을 처음으로 알게 된 것은 체조(체육)선생을 통해서였습니다. 그가 살았던 시대는 체육교육이라는 말조차 생기기 훨씬 이전이었지만, 그때 그에게는 체조활동이 하나의 지적 예술이었습니다. 제가 그에게서 그것을 배운 것은, 그가 입으로 한 말로 인한 것이 아니라, 그 사람 자체가 인내심과 정확성, 간결함과 우아함과 스타일을 온 몸과 마음에 갖춘 사람이었기 때문이었습니다(Oakeshott, 1967, p. 62).
우리 팀의 스타일을 만든다는 것은 단지 기술적인 부분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오우크쇼트에 따르면, 스타일 속에 창의성과 인성의 수준이 복합된 상태로 담겨 있습니다. 지덕체가 융합적이고 복합적인의 상태로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우리팀에게 가장 알맞은 사고 방식과 행동 양식을 갖추는 것입니다.
세련되고 아름다운 스타일을 함께 만들어 낸다는 고결한 가치에 도전하는 선수는 결국은 이기는 기적을 만들 수 밖에 없지 않을까요? 이 질문을 하며 저도 마음이 따끔따끔 거리네요. 하지만 느을 가슴에 품어야 할 말인 듯 합니다. 운동을 포함한 당신의 삶의 스타일은 안녕하신가요?(아 따끔따끔 허허허)
지금까지 혼복 잘치는 비결이라는 주제로 동네 하수의 눈높에세 쓴 글을 읽어주신 독자분들게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저의 또 다른 배드민턴 이야기를 기대해주세요! 제발~
참고문헌
Oakeshott, M. (1967). Learning and teaching. In M. Fuller(Ed.), The voice of liberal learning. Michael Oakeshott on education(pp. 43-62). New Haven: Yale University Pres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