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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애 Dec 14. 2022

잘 치는 여자가 잘 산다.

곰 vs 여우


저는 불구경이나 싸움구경보다, 배드민턴장에 있은 사람들을 구경하는 게 참 재미있습니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주구장창 체육관에 가는 이유이지요. 초보 시절에는 코트 밖에서 대기하면서 민턴인을 구경하고, 지금은 배드민턴을 치며 사람 구경을 많이 하고 있습니다. 뭐든지 하면 늘잖아요. 구경도 하다 보니 늘더라구요. 세밀한 관찰의 경지에 올랐다고 볼 수 있지요.  그래서 그 동안의 구경들을 정리하는 배드민턴인 관찰기를 풀어보려고 합니다. 아마 여러분도 언젠가 만났던 그분이 떠올라서 추억 좀 돋으실 듯 합니다.


“모를 먹고 왔길래, 힘이 이렇게 세? 다 아웃이네”

몇 번 안 친 것 같은데 아웃 때문에 경기가 끝나신 적 있으신가요? 사실 저는 아웃을 만들어 버리는 그 힘이 부럽긴합니다. 파워풀한 힘으로 밀어대는 플레이 스타일 가진 누군가가  머릿속에 그려지실 거에요. 이런 분들의 콕은 정직하게 오는 편입니다. 이쪽으로 치겠구나가 예측 가능하지요. 주로 구력이 짧거나 성격이 대쪽같은 분들의 플레이 스타일입니다. 삼국지에 나오는 관우나 장비 같은 용맹한 플레이를 펼칩니다. 모습도 다부집니다. 좋고 싫음이 분명합니다. 겉과 속이 일치하여 속내가 표정으로 모두 드러납니다. 게임에서 지면 싸움소가 김 뿜는 게 보이듯 숨이 가쁩니다.


이렇게 강하고 용맹한 플레이를 철인(人)민턴이라고 칭하겠습니다. 민턴철인(人)은 강철같이 단단하고 용감하고 용맹한 스타일의 선수입니다. 체격과 체력으로 밀어대는 플레이를 펼칩니다. 가장 기초적이고 기본적인 선수의 자질입니다. 체격과 체력이 좋으면 경기에서 지기는 어려운 좋은 조건을 가지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런데 치고 나서 생각하는 편입니다. 그래서 실수도 후회도 많이 하는 편이지요. 농구를 좋아하는 분이라면 슬램덩크의 강백호의 캐릭터을 떠올려보세요.

철인人민턴과는 사뭇 다른 플레이로 철인들을 곤란하게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제가 사는 동네에는 초야에 묻혀 지내는 고수가 많습니다. 마치 그 옛날 그야말로 초야에 묻혀 지냈던 시대를 초월한 천재 책사 제갈량처럼. 구력과 지력으로 농익은 머리 희끗희끗한 선수들에게에게 파워풀한 체력과 체격으로 야심차게 밀어붙이는 나이 어린 선수가 지는 경우는 부지기수입니다. 이런 선수들에게 하룻강아지 범 무서운 줄 모르고 덤볐다가는 큰코다칩니다. 


체격이나 체력보다는 머리를 써서 치는 구력자들에게는 철인人민턴과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습니다. 유비가 용맹한 장수인 관우와 장비와 함께 제갈량을 삼고초려했던 이유는 제갈량에게는 다른 무엇인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용맹한 장수 관우와 장비에게는 없는. 전쟁에서 이기기 위애서는 반드시 와룡 선생 제갈량의 탁월한 책략이 필요했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유비는 3번이나 제갈량을 찾아갔고, 마지막에는 눈물까지 흘리며 잠자는 용(와룡)을 움직이게 만들었습니다. 


철인人민턴과는 다른 경험에서 비롯된 지혜로움으로 무장한 플레이를 철인哲人민턴이라고 칭하겠습니다. 용맹한 철인人이 관우와 장비라면 못한 총명하고 슬기로운 지혜를 가지고 있 철인哲人은 제갈량입니다. 체격과 체력은 볼품 없지만, 상대편을 곤란하게 하거나 팀의 선수 기용을 잘해서 이기는 경우도 있지요. 나의 부족한 부분을 채워줄 수 있는 파트너를 찾아 파트너의 강점을 이용한 플레이를 합니다. 또한 자신에 대해서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의 강점과 약점을 파악하여 이기기 위한 루틴을 만듭니다. 경기의 양상이 어떻게 펼쳐지고 어떻게 해야 이길 수 있는지 늘 생각하고 칩니다. 공간과 상황을 재빠르게 인식하고 해석하여 유리한 전략을 생각하며 칩니다. 요령과 구력으로 숙달된 재주(스킬?)를 잘 부립니다.(내로남불? 내가 하면 고급기술? 남이 하면 잔기술? 애매하네요. 하하하)


이 글을 읽고 있는 당신은 어떤 철인인가요? 철인人인가요? 철인哲人인가요? 제 질문이 곰인지 여우인지 묻는 것처럼 들린다면 이 글의 시작을 잘 이해하신 겁니다. 시작이 반이니, 나머지 반은 다음 편을 기대해주세요.



鐵 쇠 철

哲 총명하다 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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