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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애 Dec 15. 2022

잘 치는 여자가 잘 산다

여우 같은 곰? 곰 같은 여우?

당신은 어떤 철인인가요? 철인(人)인가요? 철인(哲人)인가요? 라는 제 질문을 기억하시나요? 사실 이 질문은 매우 어리석은 질문입니다. 현실적으로 민턴철인(人)도 민턴철인(哲人)도 존재하기 어렵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어떻게 무자르듯 반으로 딱 나누서 구분지을 수 있겠습니까? 현실을 냉철하게 살펴보기 위한 개념적이고 관념적인 구분에 불과합니다. 관우도 지혜가 있고, 제갈량도 체력이 있으니까요. 강백호도 서태웅을 부러워하며 자신의 단점을 늘 반성하고 있으니 언젠가는 서태웅과 비슷한 플레이를 하는 날이 오지 않을까라는 맥락에서 이해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머리를 쓴 김에 좀 더 써보겠습니다. 민턴철인(人)과 민턴철인(哲人)을 양극단에 놓고 하나의 스펙트럼을 그려보세요. 스펙트럼이라는 말이 어려우신가요? 그러면 가시광선의 스펙트럼인 빨주노초파남보의 무지개색을 떠올려보세요. 양 끝에 빨간색 너머의 빛을 우리는 적외선이라고 부르고 보라색 너머의 빛을 자외선이라고 부릅니다. 적외선이나 자외선은 우리의 눈으로 볼 수 없는 빛입니다. 적외선을 민턴철인(人)으로 자외선을 민턴철인(哲人)으로 생각해보세요.

관우나 장비가 빨간색을 많이 띠고 있다면, 제갈량은 보라색을 많이 띠고 있을 것입니다. 배드민턴의 세계관으로 이 스펙트럼을 이해해보자면 철인(人)민턴을 추구하는 선수는 붉은색을 철인(哲人)민턴을 추구하는 선수는 보랏빛을 띠고 있겠지요.

제가 처음에 물었던 “철인人인가요? 철인哲人인가요?”는 그래서 우문입니다. 제대로 질문을 하려면 “여러분은 어떤 빛을 띠고 있는 선수인가요? 곰에 가까운가요? 여우에 가까운 편이신가요?”쯤으로 했어어야 합니다. 이 우문에 현답으로 대답해준 분들이 있었습니다.

“쌍철인”, “곰 같은 여우”라는 표현을 보고 무릎이 탁! 쳐졌습니다. 둘 다 포기하고 싶지 않은 자질이지요. 포기해서는 절대 고수의 경지에 이를 수도 없구요. 곰의 힘도 여우의 꾀도 있어야 승리할 수 있습니다. 삼국지 최대의 분수령이었던 적벽대전에서 유비가 막강한 조조를 이길 수 있었던 것은 관우만의 용맹함도 제갈량만의 책략도 아닙니다. 모든 것이 조화를 이루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힘만 넘치면 플레이가 투박합니다. 하이클리어만 난무하는 게임을 그려보시면 이해가 되실 것니다. 크로스드롭만 난무하면 화려하기만 하지 내실이 없습니다. 이런 일관된 프레이를 하는 선수들의 스타일과 전략을 파악하고 나면 게임은 안 봐도 비디오지요. 하지만 이 둘이 조화를 이루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지금부터 조화라는 맥락에서 이야기를 풀어가 보려 합니다.  


《논어》 <옹야>에는 ‘질승문즉야質勝文則野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 문질빈빈文質彬彬 연후군자然後君子 라는 유명한 성어가 나옵니다. “바탕이 겉모습을 넘어서면 촌스럽고 겉모습이 바탕을 넘어서면 형식적이게 된다. 겉모습과 바탕이 잘 어울린 후에야 군자답다.”는 풀이로 알고 계시는 그 말입니다. 질승문즉야(質勝文則野)는 본질이 되는 바탕이 용맹하고, 강직하고, 진실되기만 한다면 촌스럽고 투박하여 세련미가 아쉬워지는 상태를 이릅니다.  철인人의 상태이지요. 반대로 문승질즉사(文勝質則史)는 겉만 번지르르하거나 실행 없는 책략만이 난무하다면 그것 또한 말뿐이고 깊이가 없는 허세에 불과한 상태를 비유적으로 표현한 것입니다. 철인哲人민턴의 상태라고 볼 수 있습니다. 철인(人)도 철인(哲人)도 아니라는 말이지요. 천하의 제갈량도 결국엔 지거든요.


그럼 어떻게 하라는 것이지? 문질빈빈文質彬彬 연후군자然後君子 여기에 방점을 찍으시면 됩니다. 저에게 현답을 준 분들의 현으로 ‘쌍철인, 곰 같은 여우, 여우 같은 곰’이 되겠네요. 빈빈彬彬은 조화를 이뤄 잘 어우표러진 상태를 뜻합니다. 안과 밖, 내용과 형식, 내면과 용모가 조화를 이룬 상태가 철인人과 철인哲人보다는 이상적인 군자의 상태입니다. 힘을 세련미 넘치게 코트에서 풀어내는 민턴군자君子가 우리에겐 필요합니다. 옛 성현들이 왜 그렇게 군자를 우러러봤는지 이제는 어렴풋하게 나마 알것같습니다. 민턴군자君子도 이상향입니다. 가끔 이와 비슷한 향기가 나는 선수들을 보면 너무나 부럽습니다.


오늘 우리가 가는 민턴장에는 빨주노초파남보의 다양한 매력을 지닌 민턴인이 있습니다. 무지개빛으로 서로 다른 장점이 조화를 이룬 무지개빛 선수들이 우리들의 게임을 재미있게 그리고 의미있게 만들어줍니다. 내가 보라색이면 붉은 색을 지닌 파트너를 구하세요. 상태편이 파랗다면 우리 편을 붉은 색으로 만드는 조화를 추구하세요. 중용에 시중(時中)이라는 개념이 나옵니다. 때와 상황에 맞게 적절하게 생각하고 행동한다는 의미입니다. 시중을 지키는 민턴군자君子가 된다면 늘 이길 수 있을거에요. 민턴장에서도 삶에서도. 오늘도 승리하시길 기원하며 동네 하수는 마틴루터 킹의 시로 이글을 마무리하겠습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부드러움 속에 자신의

진실을 담고 있는 사람이다.

풀이 비바람 속에서도

꺾이지 않는 것은 부드럽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무는 부러지고

전봇대는 쓰러지고 만다.

겉으로 보이는 것이 강한 것이 아니다.

진실로 강한 것은

부드러움 속에 진실을 담고 있다.     

진정으로 강한 사람은

치열하면서도 온화해야 한다.

또한 이상주의자이면서

현실주의자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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