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2. 로테이션은 낄끼빠빠?
“왜 거기 가 있어?”, “아, 자리를 못잡네.”, “빠지면 안 되지.”, “어딜 들어가니?”. 코트 안이 소란스럽습니다. 동호인 게임과 국가대표 게임의 가장 큰 차이점은 이것입니다. 국가대표 게임은 소란하지 않습니다. 낄 때 끼고 빠질 때 빠지는 로테이션 센스가 넘치기 때문입니다. 로테이션? 로테이션이란 파트너와 서로 부딪치지 않고 두 몸이 하나처럼 자연스럽게 코트의 빈 곳을 메워가며 원활히 복식 경기를 운영해 나가는 것을 의미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동호인 선수들은 참으로 시끄럽습니다. 빈 수레가 요란합니다. 로테이션이 잘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날아오는 콕을 보고 있어야 할 곳에 있어줘야 하는데 엉뚱한 곳에 자리를 잡고 있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낄낄빠빠가 안 되는 것입니다.
운동장처럼 크지도 않은 코트라는 공간에서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다는 게 잘 이해가 안 되시는 분들도 계실 겁니다. 그러나 배드민턴은 내가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구사할 수 있는 스트록이 정해져 있는 스포츠입니다. 전위플레이, 중위플레이, 후위플레이라는 말이 생겨난 이유도 그 때문입니다. 그래서 자리가 매우 중요합니다. 자리를 잡지 못하면 공격적인 플레이는 꿈도 못 꿀 일입니다. 아슬아슬 콕을 넘기는 데에만 급급하면 경기는 불안해집니다.
자리 잡기 위해서는 공간을 나누어서 생각할 수 있어야 합니다. 가장 보편으로 배드민턴 코트는 3구역으로 나뉩니다. 전, 중, 후가 그것입니다. 네트를 기준으로 네트 바로 앞쪽을 전위, 네트에서 가장 먼 뒤쪽을 우리는 후위, 그 중간을 중위라고 부릅니다. 네트 바로 앞에서 공을 세게 쳐 멀리 보내버리면 콕은 아웃이 됩니다. 콕은 코트 안에 떨어져야 합니다. 그래서 전위에서는 콕을 멀리 높게 보내는 하이클리어를 치지 않습니다. 배드민턴에서는 서 있는 위치에 따라서 아웃 되지 않고 효율적으로 공격의 기회를 만드는 스트로크가 있습니다.
전위에서는 네트를 간신히 타고 넘어가는 헤어핀과 짧게 바닥으로 꽂는 푸시를 가장 많이 합니다. 중위에서의 대표적인 스트로크는 드라이브와 커트입니다. 콕을 빠르게 직선으로 보내는 드라이브로 상대가 공격하지 못하도록 하는 스트로크입니다. 또는 상대의 공격적인 스트로크를 살짝 걷어내는 커트를 주로 합니다. 후위에서 하이클리어, 드롭, 스매시를 가장 많이 합니다. 하이클리어, 드롭, 스매시는 같은 자세로 콕을 칠 준비를 해서 마지막 임팩트 순간에 변화를 주어 공이 떨어지는 위치를 달라지게 하여 구분되는 스트로크입니다. 풀스윙으로 공을 멀리 높게 치는 하이클리어로 시간적 여유를 가질 수 있는 플레이를 할 수 있습니다. 하이클리어를 칠듯하다가 임팩트 이후 천천히 라켓을 긁듯이 내리면 콕은 바로 네트 앞에 똑 떨어집니다. 이것이 드롭입니다. 빠르고 세게 임팩트를 하며 빈 곳을 향해 체중을 실어 공격하는 것이 스매시입니다.
제대로 자리를 잡는다는 것은 그 위치에서 자신이 할 수 있는 플레이를 생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자리를 제대로 잡고 그 위치에서 자신의 역할을 생각하며 플레이를 하는 것이 로테이션의 기본입니다. 로테이션이 되지 않으면 랠리를 이어갈 수 없습니다. 복식 경기의 전제는 로테이션입니다.
로테이션은 게임 상황 중 코트의 빈 곳을 효율적으로 메우며 게임을 이끌어가는 중요한 활동입니다. 한마디로 구멍이 생기지 않도록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시시각각 포메이션이 변합니다. 가장 기본적인 포메이션은 톱과 백(Top & Back)입니다. 로테이션을 통해 공격 가능한 상황이 만들어지면 전위와 후위의 톱과 백형의 대형을 만듭니다. 전위에서는 동작이 빠르고 푸시에 능한 사람이, 후위에는 체력이 좋고 스매시가 강한 사람이 담당하면 좋은 경기가 진행됩니다. 결국 로테이션의 핵심은 파트너의 장점을 살릴 수 있는 경기를 이끌어 서로 만들어 가는데 있습니다.
사람마다 장점이 다르기 때문에 로테이션은 파트너에 따라 달라집니다. 또한 파트너와 나와의 실력 차에 의해서도 달라집니다. 그래서 로테이션은 약속이고 정답은 없습니다. 로테이션은 매 상황에 따라 풀어가는 지혜가 필요한 경기 운영 자세입니다. 내가 새내기 초보자와 게임을 할 때에는 그 언제가 봤던 A조 형님의 역할을 해내야 합니다. 내가 A조 형님과 칠 때는 후위에 있는 형님이 잘 치는 스매시 찬스를 만들기 위해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전위에서의 나는 콕이 절때 뜨지 않는 헤어핀과 푸시를 구사해야 합니다. 결국 로테이션은 흘러가는 상황 속에서 자신이 있어주어야 할 위치에서 제 역할을 해내는 것입니다. 어떤 일을 맡기기에 알맞은 재능을 가진 사람을 알맞은 자리에 쓴다는 것입니다. 저에게 배드민턴 로테이션을 번역하라고 한다면 적재적소라는 단어를 선택할 것입니다.
로테이션은 코트 안에서 파트너와 나와의 관계 맺음에 대한 약속이고 철학입니다. 경기 중에서만 로테이션이 필요할까요? 혼자서는 살 수 없는 우리는 필연적으로 로테이션을 하고 살아갑니다. 의식적 혹은 무의식적으로 로테이션의 중요성을 인지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로테이션을 생각하며 삶을 살아낸다는 것은 크게 두 가지 의미를 지니는 것 같습니다. 하나는 상황을 파악하며, 내가 지금 있어야 할 곳이 어디인지 늘 생각하며 그 자리에서의 역할을 해 내는 것입니다. 아이러니하게도 술집 종업원이 알콜의존증 환자들에게 가장 많이 듣는 말은 “저는 가족을 사랑해요.”라는 말이라고 합니다. 자신이 한 가족의 부모이고 자녀라면 지금 집에 가서 가족을 위한 일들을 해내야 맞는데, 입으로만 사랑을 말하는 경우입니다. 자녀를 사랑하는 부모의 역할을 공감한다면, 가족을 위한 따뜻한 식사 준비를 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을까요? 직장에 가면, 회사의 발전을 염두에 두고 창의적으로 생각하며 즐거운 분위기를 만들기 위해 노력해야 하구요.
로테이션을 생각하며 살아간다의 두 번째 의미는 상황이 매우 유동적일 수 있다는 것을 이해하고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남녀가 짝을 이루는 혼복 경기에서 대부분 남자가 후위를 맡고 여자가 전위 플레이를 합니다. 보편적으로 힘이 강한 남자가 후위에서 스매싱을 때리고 전위에서 플레이를 하는 것은 파워가 약한 여자 선수의 몫입니다. 그런데 상황에 따라 포지션은 얼마든지 바뀔 수 있습니다. 체력과 체격이 좋은 여자 선수일 경우 강한 후위 공격으로 상대방이 예측하지 못한 창의적인 경기 운영을 해 나갑니다. 게임에 대한 센스가 넘치고 빠른 발을 가진 남자 선수는 환상적인 크로스 헤어핀으로 전위를 담당합니다. 두 명의 파트너가 서로의 장점을 살리는 똑똑한 전략으로 한 점 한 점 따냅니다. 인생의 파트너들도, 좋은 친구도, 훌륭한 동료들 사이에서도 창의적으로 늘 관계에 대한 해석을 합니다. 밥은 잘하는 사람이 해도 괜찮습니다. 돈 잘버는 친구가 여행경비를 조금 더 내도 괜찮습니다. 가끔 회의 준비는 일찍 일어나서 일찍 오는 상사가 해도 큰일 나지 않습니다.
변하지 않는 것은 이 세상에 어디에도 없습니다. 지금 이 순간 서로의 장점을 살려주는 지혜로운 라이프 스킬로 차곡차곡 의미 있는 삶을 채워갑니다. 로테이션의 진정한 의미를 저는 중용에서 발견합니다. 중용의 핵심 원리는 시중時中으로 압축됩니다. 시중은 시의적절하게 행동한다는 뜻입니다. 시시각각 변화는 상황 속에서 최선을 생각하며 살아간다는 뜻입니다. 세월이 흐르면, 체력도 변하고, 체격도 변하고, 실력도 변하고, 나를 둘러싼 모든 것들이 변합니다. 그 안에서 늘 창의적으로 관계를 해석하고 배려하는 마음으로 살아가는 것, 그것이 삶을 위한 최적의 로테이션일 것입니다. 오늘 여러분은 아버지로서, 아들로서, 직장인으로서, 배드민턴 선수로서 각자의 삶의 코트에서 다양한 파트너와의 최선을 꿈꾸시고 시중을 실천하시기를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