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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천지애 Aug 09. 2020

지금 다시 시작할 수 있습니다.

.    


조민채: 엄마 또 어디가?

민채맘: 응 민턴치러  

조민채: 지금까지 민턴 치고 온 거 아니였어?

민채맘: 응 맞아.  

조민채: 밥은 먹고 다니는 거지? 근데 배드민턴이 그렇게 좋아?   

  

초등학교 6학년 딸내미의 말에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생각지 못한 서든 어택에 심쿵했습니다. 밥도 안 차려주고 일요일 오후에 또 배드민턴 치러 나가는 엄마가 야속했을 법도 한데 말이지요, 밥 잘 챙겨 먹고 치라는 말을 건네준 딸의 얼굴을 보며 ‘우리 딸 다컸구나’하는 기특한 생각이 들었습니다. 기혼의 배드민턴 동호인들이 배드민턴을 시작하고 제일 먼저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밥하는 것이라고 합니다. 배드민턴의 치명적인 매력에 밥 챙겨주는 엄마의 사명을 잠시 내려놓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배드민턴의 치명적인 매력은 무엇일까요? 하나는 현재에 오롯하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준다는 것입니다. 딴 생각을 하면서 라켓을 휘두를 수는 없습니다. 실제로 배드민턴을 치는 동안에는 콕만 보입니다. 그래서 적어도 배드민턴을 치는 시간만큼은 그 어떤 근심도 걱정도 실수도 잊게 됩니다. 마음이 온전히 현재에 있습니다. ‘지금’에 집중하면 두려움과 불안 속에서 해방될 수 있습니다. 아무리 생각하지 않으려고 해도 떠오르는, 거머리처럼 심장속에 붙어 나의 마음을 힘들게 하는 근심과 걱정이 배드민턴을 치는 순간만큼은 사라지는 마법을 경험하게 됩니다. 모든 것을 잊고 콕에 온 정신을 집중할 수 있게 만들어 주니까요. 저 역시 답답한 제 현실들 때문에 숨을 쉴 수 없을 정도로 힘들 때가 있었습니다. 살면서 누구에게나 그런 순간들이 찾아오게 됩니다. 그때 마음을 오롯이 지금에만 둘 수 있는 값진 경험을 하게 되면, 그 힘으로 또 우리는 숨 쉬며 살아가게 됩니다.


배드민턴의 치명적인 매력은 게임을 하는 중에 더 빛을 발하게 됩니다. 콕을 치지 못하거나, 콕이 아웃이 되면 경기를 이어가기 위해 서브를 넣습니다. 그러면 또 다시 새로운 랠리가 펼쳐집니다. 상대가 서브를 넣을 때마다 우리는 전혀 다른 랠리를 펼칠 수 있습니다. 더 정확하게 표현하자면 경기에 집중하고 좋은 플레이를 펼치기 위해서는 상대편이 서브를 넣을 때 마다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정신을 다 잡아야 합니다. 이미 저질러 버린 실수를, 놓쳐버린 콕을 떠올리며 자신을 자책하는 것은 참으로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 여기에 마음을 두고 놓쳐버린 셔틀콕은 깨끗이 잊고 서브와 함께 다시 랠리를 이어가야 합니다. 서브를 넣을 때마다, 서브를 받을 때마다 새로운 경기를 시작할 수 있다는 믿음으로 라켓을 쥐어야 온전하게 게임을 즐길 수 있습니다. 지난 실수들이야 어떠하든 간에, 지금 서브를 받는 나는 새로운 랠리가 펼쳐질 수 있는 가능성을 믿고 또 다시 도전하는 마음으로 경기에 임하게 됩니다.


랠리를 이끌어 가다, 득점을 하게 되면 우리 팀이 서브를 넣게 됩니다. 서브를 넣으면서 무슨 생각을 하시나요? 이겼다는 뿌듯함? 상대의 실수에 고소함? 다행스러움? 아니면 아무 생각 없이 서브를 넣으시나요? 아무 생각 없이 서브를 넣다가 서브미스를 많이 합니다. 힘든 랠리를 후, 서브권을 가져왔는데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이유가 여기 있습니다. 이때 우리는 무엇을 잊고, 무엇을 생각해야 할까요? 점수는 잊으세요. 지금 낸 1점이 중요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숫자를 잊고 숫자 너머 의미를 기억하세요. 나와 파트너가 지금 무엇 때문에 점수를 얻을 수 있었는지 생각해보세요. 그런 찬스를 지금 다시 만들 수 있도록 실수 없이 서브를 넣으세요. 끝날 때까지 끝난 것은 아니라는 말은 이기고 있을 때 더 의미 있는 말입니다. 상대편의 실수가 아닌 우리 팀의 훌륭한 전략이 숨어있는 플레이를 설계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누군가의 단순한 실수가 아닌, 서로의 빛나는 장점이 돋보이는 랠리를 이어가세요. 최선을 다한 후 떨어진 콕에 대해서는 별 미련이 없습니다. 멋진 랠리에 양 팀 모두 스스로를 대견스럽게 생각하고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서브는 랠리가 중단되었을 때 새로운 랠리를 펼치기 위한 게임의 장치입니다. 지나간 실수가 아닌 앞으로 펼쳐질 새로운 랠리를 기대하며 현재로 마음을 가져오기 위한 제스처입니다. 지금부터 나는 어떤 플레이를 할 것인가에 집중하기 위한 출발점이 됩니다. 그래서 서브를 넣는 것과 서브를 받는 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마음을 지금 여기에 두고 차분한 경기를 이끌어 가는 사람들을 종종 보게 됩니다. 배드민턴 대회에서 22:5으로 지고 있던 게임을 22:25로 끝내는 사람들은 그 비결을 알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역전승과 역전패를 결정하는 것은 ‘지금’에 집중하는 힘입니다.  


인도네시아는 배드민턴 강국입니다. 국기이기 때문에 다양하고도 특별한 멘탈 훈련법이 있습니다. 그 중 하나를 소개합니다. 실력 차이가 나는 두 선수를 게임을 시키되 실력이 우수한 선수는 0점을 주고 실력이 부족한 선수는 20점을 줍니다. 실력이 우수한 선수는 실수 없이 차분하게 경기에 임해 21점을 따내야 승리할 수 있고 실력이 부족한 선수는 우수한 선수를 상대로 1점만 내면 게임에 이기게 되도록 합니다. 이러한 경기 조건은 오롯이 ‘지금’의 플레이에만 집중할 수 있도록 해줍니다. 두 선수 모두 최선을 다해 현재에 집중할 수 있는 게임을 펼칩니다. 이러한 반복적인 훈련을 통해서 선수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경기에 집중하며 차분하게 경기를 이끌어갈 수 있는 담대함을 배우게 됩니다. 그래서 인도네시아 선수들 중에는 역전의 명수가 많습니다. 승패의 차원을 초월한 집중의 힘을 길러주는 멘탈 훈련법을 보여주는 사례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점이 참으로 멋졌습니다. 매번 서브를 받을 때마다, 서브를 넣을 때마다 새로운 랠리를 시작할 수 있다는 사실에 큰 힘을 얻었습니다. 놓쳐버린 콕에 대해 의식적으로 미련을 갖지 않고 경기에 집중하면서 배드민턴을 잘 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경기가 잘 풀리지 않을 때 ‘잊자, 괜찮아. 그리고 집중하자’ 이 말을 외칩니다. 그리고 다시 게임에 집중합니다. 배드민턴에서는 놓쳐버린 콕과 자신의 실수에 미련을 버릴 수 있도록 만드는 서브라는 장치가 있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넘어지고 실수할 수 있습니다. 때로 그런 실패는 당신의 잘못이 아닐 수도 있습니다. 파트너의 실수일 수도 심판의 오심일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잊고 차분하게 라켓을 들어야 합니다. 억울한 마음에, 창피한 마음에 서브를 받아내지 못하는 것은 당신 잘못입니다.   

  

저는 배드민턴 치듯 살게 된다면 참으로 멋진 인생을 살 수 있게 될 것 같다는 생각을 해봅니다. 어제 한 나의 실수 때문에 이미 벌어진 일들에 마음을 쓰느라, 우리는 소중한 시간을 자신을 책망하는 데 씁니다. 후회는 하지 않거나 짧을수록 좋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울고만 있지 말고 우리는 무엇인가 해야 합니다. 지나간 실수 때문에 마음이 힘드신 분들께 저는 이렇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서브를 넣어보세요. 그리고 다시 자신만의 플레이를 펼치세요.’ 용서는 좋은 것이고, 잊는 것은 더 좋은 일이라고 합니다. 자신의 지나간 실수를 너그럽게 용서하세요. 잊고 다시 시작하는 마음으로 삶의 쉼표와 같은 서브를 넣어보세요. 쿨내 진동하는 당신의 삶을 응원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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