빵점 엄마

by 필이

늦었다!

오늘은 아이 과외가 있는 날이다. 아이가 아침 7시에 깨워달라고 했는데 지금 시간은 8시를 넘고 있다. 엄마가 그만 글쓰는 것에 너무 빠져있었던 거다. 어쩐다고 시간이 이렇게나 흐른 것도 몰랐단 말인가. 안그래도 글을 쓰면서 아이에게 예전보다 소홀해져서 미안한 마음이 가득이다. 그것에 한 숟가락 더 얹어졌으니 미안한 마음이 어쩔 줄을 모른다. 그것도 거인들이 쓰는 왕 숟가락으로 얹어졌으니! 미안함이 철철 넘친다.


"미안하다. 알람을 왜 안했나 모르겠다. 시간은 아직 있으니깐 얼른 챙기라."


괜히 울리지 않는 알람을 원망한다. 알람을 안 맞춘 자신에게 핑계를 돌린다. 아이는 한 마디 말이 없다. 얼굴에는 구름이 가득이다. 무언가 생각에 빠졌을 때의 얼굴이다. 그리 좋지 않은 생각. 자신을 자책할 때 하는 그런. 그래서인지 마음이 더 쓰인다. 왜 깨우지 않았는지 자신을 원망한다. 아이에게 미안하다는 말만 되풀이 한다. 과외 선생님이 오실 시간이 다 되어 간다. 마지막으로 미안하다는 말을 남기고 엄마는 집을 나선다.


과외가 끝났다는 문자가 온다.

집으로 돌아온다.


"이제 기분 좀 괜찮아졌나? 미안하다. 다음부터는 알람을 꼭 맞출게."


아이는 대답없이 거실 식탁에 앉는다. 엄마가 앉아 있는 맞은 편이다.


"엄마, 미안하다는 말 그만 하면 좋겠다. 엄마가 늦게 깨워서 그런 게 아니라……."


아이는 말을 잠시 멈춘다.


"내가 너무 바보 같아서 그렇다. 마음이 너무 헤이해져가지고. 고3이 돼서 이렇게 공부도 안하고……."


"아니, 니 수련회 다녀온지가 얼마나 됐다고? 하루도 안 쉬었으면서. 좀 쉬면서 하는 거지."


"엄마, 나 위해주는 말 안해주면 좋겠다. 그냥 들어만 줄래?"


"……. 어, 알았다."


이럴 때는 정말 들어만 줘야 한다. 절대 위한다는 이름으로 어떤 말도 해서는 안 된다.


"엄마, 나 고3이다. 간부 수련회 다녀오고 목요일에 과외할 때 그날도 오후에 시간 있었다. 그런데 아무것도 안했다. 틈틈이 공부할 시간 얼마든지 있었다. 그런데 내가 안 한 거다. 운동도 안하고 공부도 안하고. 그래서 나 자신한테 현타온거다."


아니, 방학하고 바로 제주도로 간부 수련회 다녀오고, 다음 날 바로 친구 만나 영화 보고, 하루 과외하고 집에 있었지만, 그 다음날 바로 교회 수련회 2박 3일 또 다녀온 아이다. 다녀온 다음날 또다른 친구와 인근 소도시로 놀러가서 영화도 보고 머리도 하고. 그게 바로 어제이다. 그러니 단 하루도 쉰 날이 없다.


젊음이 좋다고는 하지만 정말로 체력이 대단하다고 느낄 정도다. 그리고 틈틈이 책상에 앉아있는 걸 봤는데 그것에 만족하지 못하는 것이다. 자신에게 더 중한 잣대를 대는 것이 분명하다.


아이는 엄마에게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한다. 그러고 나서는 조금은 편안해지는 얼굴이다.


엄마도 이제야 마음을 놓는다.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엄마의 역할을 다 한 것만 같아 자부심까지 뿜뿜한다.


아이의 목소리가 이제야 제 톤으로 돌아온다. 속에 있는 구름을 걷어냈다는 증거다. 가라앉는 무거운 구름을 이제야 하늘 높이 날려버리고 있다는 것이다. 엄마 마음도 한결 가벼워진다. 심지어 아이에게 구름을 끼얹은 단초를 제공했다는 사실도 망각한 채 들어줌으로 제 역할을 다 했다며 신나하기까지 한다. 찬물을 뒤집어 쓰는 일이 곧 생길 줄도 모르고.


"엄마, 그래서말인데. 이제 우리 외식하지 말자. 그래봤자 3개월. 우리 3개월만 집에서 밥 먹자. 왔다 갔다 시간까지 아껴야겠다."


갑자기 흩어지던 하얀 구름이, 똘똘 뭉쳐지더니 저네들 끼리 치고 박고 싸운다. 급기야 시커먼 먹구름이 되어 돌아온다. 벼락이 치더니 천둥이 울린다. 쾅쾅 내리치는 벼락과 천둥에 마음이 시커멓게 멍든다. 가슴이 거센 물살로 휘몰아친다.


표정 관리가 안된다. 저절로 굳어지는 얼굴! 엄마 얼굴을 보면 아이가 또다시 자책할 게 분명하다. 최대한 아닌 것처럼. 마음이 고요한 것처럼.


"어, 그래."


이 다음은 엄마 몫이다. 아이의 잘못이 아니다. 아이는 아무런 잘못이 없다. 거세게 이는 파도는 엄마몫이다. 엄마 잘못이다. 엄마의 자책이 시작된다.


요리를 못한다. 음식 만드는 것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러니 더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가족들에게 정성껏 요리해주는 엄마들을 보면 괜히 주눅이 든다.


아이 보양식 해주려고 충남 금산 현지에서 인삼도 구해놓는다. 파란수영장 언니들이 살 때 필이것도 부탁한 건이다. 말 그대로 닭을 사다 고아주려고 산다. 줄줄줄 흐르는 땀에 생각을 닦아낸다. 아이가 삶은 닭을 안 좋아한다는 핑계를 대며 인삼은 우유넣고 갈아먹기로 요리명을 바꾼다.


아이도 엄마도 하루 한 끼 잘 먹는다. 아침은 과일로 간단하게 먹고 저녁은 아이는 닭가슴살 샐러드를 먹는다. 엄마는 그때 그때 있는 것을 조금 먹는다.


잘 먹는 건 점심 한 끼! 토요일은 과외를 하고 돌아오는 길에 주로 먹고 들어온다. 그러니 일요일 점심 한 끼를 위해 음식을 만든다는 것은 여러가지로 경제적이지 못하다. 제일 중요한 게 어떤 음식이든 해놓으면 어김없이 남는다는 것이다. 그것이 찌개든 찜이든 무엇을 하든. 있는 반찬에 그냥 먹지 않는 이상 무엇을 하든 남는다. 냉장고에 보관 보관하다 결국은 버리게 된다.


또 시간이 너무 아깝다. 솜씨가 없으니 음식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린다. 뚝딱 뚝딱 하는 분들 보면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한 번에 한두 가지를 동시에 하는 분들은 진기명기는 보는 것만 같다. 만드는 데 뿐만 아니라 뒷정리까지 시간이 많이 걸린다. 그러니 점심 한 끼 먹는 데 최소 2시간. 진짜진짜 간단한 것을 한다고 할 때 이 정도 시간이 걸리는 것이다. 보통은 이보다 더 많이 걸린다는 건 다시 말하지 않아도 알 것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너무 덥다. 음식 한 가지만 해도 땀이 너무 흘러 기진맥진이다. 가스불이라도 켜고 할라치면 아예 입고 있는 옷이 다 젖는다.


그러니 나가서 한 끼 먹는 것이 훨씬 더 경제적이다. 모든 면에서 말이다. 심지어 아이 영양면에서도 그것이 더 낫다.


하지만 이 모든 건 엄마 기준이다. 아이 기준에서는 어떤가. 아이 말대로 나가야 하니 씻고 옷갈아 입고 챙겨야 한다. 간단하게라도 어쨌든 외출이니 챙겨야 한다. 오며 가며 시간이 걸린다. 집에서 먹으면 공부하다가 와서 밥을 먹고 들어가면 끝! 정말로 효율적이다.


엄마인 필이도 그랬다. 엄마가 딸이었을 때, 늦게 피아노에 빠져 피아노 연습에 한창이다. 엄마가 밥 숟가락까지 다 놔두고 "숙아, 밥 먹어라." 하면 쪼로록 가서 밥을 먹는다. 엄마인 필이도 그랬다. 그 땐 1분 1초가 아깝다. '늦게 배운 도둑질에 날 세는 줄 모른다'는 속담이 딱 맞을 때였다.


울 아이는 고3이다. 스스로 잘 한다고 엄마가 너무 못 챙긴다. 아이의 "외식 하지 말자"는 말이 엄마 역할 제대로 하지 못한다는 말로 들려 가슴이 쓰리다. 이것은 내몫이다. 엄마몫이다. 아프더라도 인정해야 한다.


보양식까지 해서 먹이지 못하더라도 집에서 따듯한 밥 한 그릇 제대로 해주지 않은 엄마 잘못이다. 완전 빵점 엄마다!


하지만 사람마다 잘하는 것이 다르지 않은가. 밥 잘 하고 살림을 잘 사는 것만이 좋은 엄마의 기준인 건가. 혼자 반문 했다가 혼자 답하며 슬퍼했다가 요란한 심장이다. 아무리 생각해도 빵점 엄마 면하기는 힘들다.


도시처럼 다양한 음식들을 사가지고 올 수 있는 것도 아니고, 어떻게든 이 고비를 넘기는 수밖에 없다. 어떻게 해야 할지 이것참 난감하다.


따신 밥 해주는 엄마들의 위대함을 절실히 느끼는 날들이다. 그 위대함을 전수받을 수 있다면, 빵점 엄마는 면할 수 있을텐데…….




오필리아처럼~

필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