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인 아침 눈물이 터진 이유

by 필이

아침에 일어난다.

괜찮다.

마음이 이상하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

기분이 묘하긴 한데

그래도 괜찮다.


먼길 빗길 운전탓이다.

이게 다 어제 쌓인 피곤탓이다.


눈을 감는다.

다시 잠들려 애써 본다.


쉽지 않다.

몸은 일어나지가 않는데

잠조차 오지 않는다.


몸이 침대에 붙어

천근만근 무겁기만 하다.

알고보니

이건 마음 무게였던가.


정목스님 명상말씀을 듣는다.


느림의 도시, 인도 바라나시


삶의 마지막 종착역처럼 찾게 되는

죽음의 도시

아니 죽음을 맞이하는

신성한 도시


겐지스강에 육신을 보내고

새롭게 맞이하는 해를 바라본다는 건

어떤 의미일까


생각해본다.


내가 그 강에 앉았다 느껴본다.


어떤 이가 겐지스강에서 밟은

사람 뼈의 느낌을 설명한다.

술에 취한 듯

붉어진 얼굴로

삶에 들뜬 듯

높아진 목소리로


겐지스 강은

조용히 흐르기만 할 뿐인데

의미를 부여하는 것은

인간이다.


삶을 다 한 죽음을 고요히 품어주는 곳

겐지스 강


그 강에 앉아

죽음을 본다.

그리고

떠오르는 해를 맞으며

삶을 걷는다.


이것이 인생이다.

이것이 우리네 삶이다.


정목 스님의 말씀은

명상으로 마무리 된다.


깊이 호흡하며

나의 온몸을 안아준다.


아프고 힘든 곳을

쓰다듬어준다.


그리고 말씀한다.

감사는 조건이 있어서 하는 것이 아니란다.

감사를 하면 감사가 온단다.


온몸에 감사가 퍼지며

일어난다.


몸을 일으키며

운전으로 고생한 몸을 안아준다.


마음을 일으키며

토닥토닥 안아준다.


그리고

아이 방으로 가서

짙어진 어둠을 걷어내듯

커튼을 걷는다.


빛이 들어오는 아이 방 아이 침대

두 손으로 정성껏 쓰다듬는다.


그리고 인사한다.


아이야,

잘 잤지?

오늘이 너의 대학생활

첫 시작이구나.

넌 잘 할 거다.

너의 시작을 응원한다.

사랑한다.

예쁜내새끼.


돌아서는데 그만



눈물이 터져버린다.


이 눈물의 의미는 무엇일까.


제 길을 찾아 떠난 아이의 빈자리에 대한 허전함일까?


이젠 정말 혼자라는 두려움일까?


모른다.

모르겠다.


단지

보고 싶을 뿐이다.


어제 헤어지기 전에

더 꼭 안을 걸.

손 잡고 더 오래오래 있을 걸.


함께 있을 때

얼굴 바라보며

더 많이 이야기 나늘 걸.



아니다.

후회하지 않는다.


몇 개월 후에 돌아오면

잠시 집으로 쉬러 오면

그때

원없이 안아야겠다.

그때

원없이 손 꼭 잡고

원없이 얼굴을 바라보고

원없이 이야기를 들을테다.


그래

그럴 거다.

그래


그러니

이 눈물의 의미는




나도 모른다.


이 글은

3월 1일

스무살 아이를

연세대학교 기숙사로 데려다주고 돌아온

다음날 아침 쓴 글입니다.


[아들과엄마]

마무리 글을 곧 쓰게 될 것입니다.


순서에 맞지 않지만

이 글을 먼저 포스팅하고

남은 [아들과엄마]는

다음주에 이어가겠습니다.


순서에 혼란을 드려 죄송합니다.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