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 다시 쓰는 중입니다》
결실자의 삶과 성장 스토리
<기원 전, 후>
-하니 오웰-
78쪽
지금까지 내가 이리 강짜 있게 세상을 버텨낸 건, 홀씨가 되어서도 바특하게 살아낸 엄마의 온전한 공이다.
모진 시절이었다.
질리도록 한 군데만을 바라봐야 했던, 환청의 시절이었다.
89쪽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끝내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사랑은 저절로 솟아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남겨준 단 한 품의 따뜻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90쪽
엄마는 나를 걷게 하려, 당신의 삶을 멈춰 세웠다.당신의 시간을 나에게 기꺼이 내어주고,나의 다리로 당신의 생을 이어 살았다.
잡아주지 않아 서러웠던 그 손들은, 사실은 끝내 놓지 않던 손이었다.
91쪽
생명은 소멸을 품고 있다.
우리는 조금씩 사라지고 있으며, 그 지워짐의 방식을 익혀 가는 것이, '삶'이 된다.
태어남의 이면은 죽음의 시작이며, 삶은 그늘 속에서 피어난 빛의 질투다.
내 인생의 처음은 돌덩이였다.
더 많은 문장에
밑줄을 그었지만
브런치에는 500자까지만
담을 수 있다.
그리고
이 한 문장이
나를 붙들고 놓아주지를 않는다.
소멸消滅
사라져 없어짐
국어사전에 나온 간단명료한 설명.
이것이 내 인생의 처음이었다.
엄마는,
그 시절 너무도 힘들었던 나의 엄마는,
나의 잉태를 인지한 순간
사라지게 할 것을 결심한다.
힘든 삶에
나라는 존재가,
점보다 더 미약한 나의 존재가,
엄마에게는 질곡桎梏의 무게로 다가왔던 것일까.
그 시절
자신이 동원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강구하며
나의 소멸을 위한 의식을 행한다.
쉽지 않다.
질긴 목숨이다.
무엇이 이 작은 존재로 하여금
목숨줄 붙들고 늘어지게 하는가.
무엇이 이 작디 작은 존재가
생명줄 붙잡고 놓지 못하게 하는가.
무엇이
그 무엇은 결국
엄마다.
엄마의 '사랑'이라고 쓰지 못하는
'엄마'다.
사라지게 하고 싶었으나
끝내 수술대 위에 오르지 못한 엄마의 마지막 남은
사랑이다.
끝내 '사랑'이라 쓰고 만다.
그 시절,
그 힘들던 시절,
수술비가 없어서였는지도 모른다.
수술이 아닌 온갖 방법으로
없애려던 엄마의 시도는 매번 실패로 끝이 났고
그 실패 끝에 아이는 점점 제 존재를 키워나간다.
불러오는 배를 보며
엄마는 어땠을까.
점점 커져가는 나라는 존재를 보며
엄마는 어땠을까.
그것을 느낄 겨를도 없이
나라는 존재가 태어나버린 걸까.
그것까지는 알 수 없다.
<기원 전, 후>
작가 하니오웰은 말한다.
내가 누군가를 이토록 사랑할 수 있는 건, 누군가에게 끝내 사랑받았기 때문이다. 내 안의 사랑은 저절로 솟아난 것이 아니었다. 엄마가 남겨준 단 한 품의 따뜻함에서 비롯된 것이었다.(89쪽)
사랑은 사랑을 머금고 태어나 사랑을 되돌려주며 죽어간다.(92쪽)
그렇다면 나는 무엇일까.
사랑받지 못했기에 사랑을 줄 수도 없는 걸까.
사랑을 머금고 태어나지 못했기에 사랑을 되돌려주며 죽을 수도 없는 걸까.
내 인생이 소멸로 시작하였기에
그토록이나 소멸의 삶이 나와 함께 하는 걸까.
소멸의 삶
나에게 깔린 어둠은 바로 이것이었던가.
말하고 싶다.
소멸의 삶은 영원한 삶이라는 것을!
축복 사랑 이어짐
그리고 소멸
어떤 형태의 탄생도
소멸을 향해 가는 삶도
영원하다는 것을 말하고 싶다.
사랑으로 태어나지 못했어도,
사랑이라는 말이 사치인 매 순간을 살아온 엄마의 삶을
누가 탓할 수 있는가.
엄마는
최선을 다해 살아왔을 뿐이다.
주어진 삶에
죽음조차 택하지 못하던 질기던 삶에
하루하루를 순간순간을 그렇게 살아왔을 뿐이다.
아무도
엄마를 탓할 수 없다.
결국 나는 태어났다.
당신의 삶에 모질지 못했던 엄마는
결국 나라는 존재를 세상에 내어놓고 말았다.
그렇게 태어났다.
내 인생의 처음인 소멸이
영원한 소멸을 향해
영원한 사랑을 향해
그렇게 태어났다.
나의 소멸은
우리 아이에게 사랑으로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그러니
탓하지 말라.
나의 엄마도
나도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