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치 맛집을 알게 된다는 건

by 필이

한국인은 김치 없이는 못 산다는 말도 다 옛말이라고 한다. 식탁 위 먹거리들이 수입화되면서 한국인의 입맛도 변했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필이는 여전히 김치 없이는 못 산다. 김치 없이 밥을 먹으면 앙꼬없는 찐빵을 먹은 것처럼 허전하다.


입맛은 닮는 건가?

김치 좋아하는 건 울 아이도 마찬가지다. 김치만 하나 있어도 밥을 잘 먹는 아이다. 요리 못하는 엄마와 사느라 반찬없이도 살아남는 법을 몸으로 터득한 것이 분명하다. 문제는 엄마가 김치도 잘 담그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혼할 때 김치 담그는 요리책도 산다. 책을 보며 김치를 담는다.


백김치를 좋아해서 담았더니 배추가 살아서 밭으로 가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키우던 소에게 특별 요리로 제공한다.


밭에 싱싱한 가지가 많아 가지 김치를 담는다. 가지가 색깔이 이상해지면서 맛도 이상하다. 이건 소도 주지 못하고 그대로 거름밭으로 간다.


싱싱한 열무가 있어 열무 김치를 담는다. 이건 뭐가 문제인가? 열무의 매운맛만 나는 이상한 김치가 된다.


손바닥만한 동치미 무가 아주 싱싱하다. 동치미를 담는다. 그것도 장독에다가 아주 정성스럽게 담는다. 이건 뭐 소금을 먹는 건지 동치미를 먹는건지 짜도짜도 너무 짜다. 하루 전에 물에 담궈 짠물을 뺀다. 그나마 먹을만하다.


밭에서 키우던 배추라 크기가 작다. 우리 먹을려고 키운 거라 약 하나 안 치고 자연으로 키운 배추다보니 크기가 들쭉날쭉하며 작다.


열몇 포기 김장을 했을까? 배추 다듬어 절이고, 씻어 건지고, 양념 만들어 버무리고, 뒷정리하며 마무리까지!


2박 3일은 걸린 듯한 생애 첫 김장을 하고 난 후 보름을 넘게 앓아 눕는다. 감기 몸살 지독하게 걸린 것이다.


구구절절 김치의 역사를 길게 푼 것은, 필이가 이만큼이나 김치를 담기 위해 노력을 했다는 것을 말하고 싶은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젠 김치를 담지 않는다. 재작년 파김치에 참기름을 넣은 사건(위 글 참고) 이후 김치는 아예 담을 생각을 하지 않는다.


친정 엄마가 계시지 않으니 엄마표 김치를 먹지 못한 건 벌써 수십 년째다. 김장을 하면 나눠 주시는 분들로 겨우 연명한다. 당연히 모자라는 김치는 마트에서 사서 먹는다.


"너거 집에서 쭉 내려오면 거 부식 가게 하나 있거든? 거기가 김치 맛집이다. 내도 눈 이래 되고부터는 그 집에서만 김치 사먹는다. 내 이름 말하고 김치 사묵어라. 맛있다."


지난 주 목요일, 파란수영장 짝꿍 언니가 김치 맛집을 소개해준다. 울 아이가 고들빼기 김치가 먹고 싶다는 말을 해서 어쩌다 언니랑 김치 이야기를 하게 된 것이다.


그리고 그날,

퇴근하면서 언니가 말해준 가게로 간다.


"오늘 김치 담았는데. 우리집 김치 맛있다. 이리 드와서 보고 사가면 된다."


필이를 저온창고로 데리고 가는 주인 아주머니. 짝꿍 언니 이야기를 하니 무척 반가워하신다.


저온 창고에는 김치가 종류별로 한가득이다. 2/3는 주문받은 것이란다. 고들빼기 김치는 다 팔리고 없단다. 며칠 있다 담을 거란다.


필이는 오늘 담았다는 배추김치랑 알타리무김치, 파김치, 물김치까지 사가지고 돌아온다. 갑자기 우리집 냉장고가 부자가 된다.


김치 맛집을 알게 된다는 건 음식점이나 다른 맛집을 알게 된다는 것과는 다른 의미를 갖는다.


든든한 친정집이 하나 생긴 것만 같다고 할까? 식탁에서 빠질 수 없는 김치. 그동안 마트에서 조금씩 사먹던 김치를 이젠 kg로 사가지고 온다. 아이도 엄마도 이젠 김치 실컷 먹을 수 있겠다며 신난다.


"내가 몸이 이래가 니 김치 한 번 못 담아준 게 한이 된다."


결혼하던 해 엄마는 병원에 입원한다. 잠깐이면 될 줄 알았던 입원이 그 길로 집으로 돌아오지 못한다.


오랜 병원 생활, 이후 요양시설에서 만난 엄마는 아이를 가져 배부른 필이를 보고 늘 이 말을 하신다. 당신 손으로 김치 한 통 못 담아준다고 미안하다고.


엄마!

엄마 손맛이 그리웠던 걸까.

김치 맛집을 알게 된 것이 이리도 기쁜 것은!


에잇참!

눈물은 왜 나는 건지…….




오필리아처럼~

필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