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택의 폭이 넓어지면 되려 고장 나는 커플의 눈물 젖은 이상형 월드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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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 브런치북 [ 비혼인 결혼일기 ]에 “응원댓글“을 달 수 있게 되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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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혼 준비 과정을 되돌아보았다.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 속에 두 눈 질끈 감고 뛰어드는 날들이었다. 멋진 플래너 선생님은 주기별로 “이 항목은 결정되셨냐” 채찍질도 해주고 잘 골랐다고 당근도 주었다. 그중 가장 많이 준 것은 물론 여러 항목의 업체 리스트였다.
매일매일 달달한 디저트가 당겨서 미칠 노릇이었다.
초콜릿 딸기 케이크와 아메리카노는 우리의 파혼을 격렬히 막아주었다. 청첩장을 만들 때에도 냅다 ‘결혼 안 해!’를 외치던 나니까. 초대장도 없는데 결혼을 어떻게 해! 결혼 안 해! 안 할 거야! 귀찮아! 하고 떼를 쓰던 나는 결국 결혼을 두 달 남기고 청첩장 제작에 성공했다. 얼른 청첩장을 내놓으라는 아빠와 플래너님이 아니었다면 아마도 우리는 청첩장 없는 청첩장 모임을 했을지도 모른다.
선택해야 할 것들이 너무 많았다. 한 두 개 정도만 골라야 한다면 기꺼이 신나게 해냈을 텐데 이거 끝나면 저걸 해야 했다. 게다가 반짝이고 화려해서 모태 까마귀의 눈과 마음을 홀리는 항목들이 너무 많았다. 마법의 단어 스드메. 반짝여서 미러볼이 될 것만 같은 화려한 비즈 드레스를 입을 것이냐. 우아한 레이스 드레스를 입을 것이냐. 아니면 깨끗한 실크 드레스?
그래도 드레스나 메이크업은 나한테 대보았을 때 어울리는 것이 확실했다. 가장 어려운 건 온전히 취향으로 골라야 하는 항목이었다. 짝꿍과 나는 결혼반지를 고르기 위해 두 달의 시간을 보냈다. 백화점부터 종로, 삼청동 디자이너 브랜드, 청담 예물샵까지 안 둘러본 곳이 없을 정도로 긴 여정이었다. 심지어는 짝꿍과 나의 취향이 살짝 달라 ‘그냥 여기서 하자’라는 그, 그리고 한 군데만 더 보자는 나의 설전도 끊임없이 이어졌다. 나에겐 부쉐론 방어전이었으며 짝꿍에겐 비슷한 것들을 자꾸만 보고 골라야 하는 틀린 그림 찾기였을지도 모른다.
반면 선택의 여지가 없는 것들도 너무 많다. 업체의 남은 일정에 맞추어 우리의 결혼을 결정하는 것의 대표적인 사례. 결혼식 날짜 정하기. 요약하자면 두통이 찾아올 만큼 고심 끝에* 버진로드가 아름다운 예식장에서 결혼하기로 결정했는데 우리가 생각하는 날짜는 이미 예약으로 가득 차 있었다.
아니, 혼인율... 낮다며.... 아무도 결혼 안 한다며... 거짓말이야?
아무튼 그 전후로 가능한 시간을 받았는데 딱 이틀. 하루는 동생 생일, 하루는 평범한 일요일이었다. 아무래도 동생 생일에 결혼할 수는 없지. 게다가 지금 예약금을 걸지 않으면 또 다른 날짜, 또 다른 베뉴를 알아봐야 할 수도 있다. 백만 원. 파 워 결 제. 이렇게 부모님의 허락도, 상견례도 없이 내 인생엔 결혼기념일이 생겼다. 공교롭게도 우리가 결혼하는 그날은 작년의 우리가 결혼하기로 마음먹었던 바로 그날이다. <비혼인 결혼일기>의 첫 화에서 “우리 결혼하면 평생 재미있을까?” 하던 그날에 결혼식을 올리다니. 이 정도면 나와 짝꿍은 천생연분인 게 분명하다.
고민이 끝났으면 응당 행복과 기대로 가득 차야 맞지 않나? 사실 고민이 끝나기는커녕 발등엔 불이 떨어지다 못해 타오르고 있는데 아직까지도 결정할 게 넘쳐난다. 아직 식순에도 손을 대지 못했고 부케는 못 골랐으며 그렇다고 다이어트를 열심히 하고 있는 것도 아니다. 나는 어제 감자탕을 먹었다.
엄청난 기획안을 흐리멍덩하게 가지고 있지만 정작 실행하는 것은 귀찮은 양아치 예비신부, 결혼 무사히 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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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결혼 생활을 꿈꾸던 우리가 ‘아! 결혼은 현실이구나!’를 처음 느꼈던 건 웨딩 베뉴를 고를 때다. 내가 알아본 세 군데, 플래너 선생님이 추천해 준 세 군데. 총 여섯 개의 후보 중 세 곳에 상담 예약을 했고 하루 만에 그들을 둘러보게 된다. 이것을 ‘투어’라고 하는데 정말이지 머리가 아파서 죽는 줄 알았다. 내가 죽거나 혹은 과부가 되거나. 정말 밥이 맛있게 나온다고 동네방네 소문이 난 예식장 A. 로비에서 다른 홀 하객이 섞인다는 단점이 있다. 반면 채광이 차르르 들어와 내가 은혜를 입는 것만 같은 예쁜 예식장 B. 홀이 예쁜 것 빼고는 모든 게 무난하다는 단점이 있었다. 빨리 선택을 마치고 일을 하러 강릉에 내려가야 했는데 없던 판단력도 끌어모아 B 예식장을 선택했다.
완벽한 선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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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들의 참견은 매 해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진로, 취직, 다이어트. 이후에는 결혼 이야기까지. 누구는 어디에 갔고 누구는 무얼 했다 비교까지 하는 게 참 스트레스다. 이런 류의 잔소리는 명절증후군을 엄마만 느끼는 게 아니게 만든다. 아이들도 충분히 피곤하다. 그런 의미에서 프랜차이즈 카페 종업원의 장점은 공휴일에 고강도의 근무를 해야 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나는 보통 일 핑계로 가족의 잔소리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응, 이번에도 못 가게 됐어. 우린 지금이 성수기거든.”
이런 내가 스스로 명절 연휴 5일 연속 휴무 신청을 내었다. 짝꿍의 부모님 댁에 인사드리기 위해서. 예비 형님 내외랑 할머님도 계시는 자리였다. 앞으로는 어렵겠지만 처음이니까 멋지게 스케줄을 다 뺐다는 생색과 함께 집에 들어섰다. 그리고 내 눈앞에 펼쳐진 충격적인 장면들. 놀라운 언행들.
“나 너네 집 가기 싫어. 너네 할머니 되게 별로야. 굉장히 가부장적인 건 알지? 감당하겠다고 결혼 선언 했던 건데, 다 포기하고 싶어 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