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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랄라 Feb 22. 2024

파티플래너로 전직했습니다 (1)

웨딩 플래너는 구원자다.

결혼을 하긴 할 건데 이제부터 도대체 뭘 해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혼 시장. 그것은 내가 경험해 본 모든 시장 중에서 가장 정보의 불균형으로 점철된 늪이었다. 소비자는 전부 결혼을 처음 겪는 사람들이라 소위 ‘전문가’가 알려주는 대로 결혼을 치른다. 포털에, SNS에 검색을 돌려도 비용은 비밀댓글이나 DM을 통해 문의해 달라는 내용뿐이었다. 이것들이 모두 웨딩 업체의 마케팅 수법이며 순진한 예비부부들을 그에 활용하는 것임을 알게 된 건 얼마 지나지 않아서다. 어떻게 말하면 얼마고, 저렇게 말하면 얼마고. 컨설팅 업체를 끼면 도매가에서 수수료가 붙은 정도라 직거래하는 것보다 오히려 저렴한 조금은 이상한 생태계.


하지만 상관없다.


어쨌든 결혼을 어떻게 하는지를 알려면 잘 아는 사람의 도움이 필요했고 나는 내 친구들 사이에서 선발주자를 맡았으니, 전문가를 찾아가는 수밖에.


결혼에 관심도 없던 사람이 결혼 전문가를 찾는 과정은 정말 고역이었다. 컨설팅 업체마다 한 사람의 플래너만 만나볼 수 있었고 업체별로, 사람별로 스타일도 취향도 제휴업체도 다르니까. 내가 원하는 업체를 제휴하고 있는 곳으로 선택하라던데 너무 많은 업체를 제휴한 플래너와 계약을 하게 되면 오히려 선택장애가 올 것 같았다. 와중에 커뮤니티에 올라오는 플래너 괴담들도 있었다. 계약금을 들고 날른 대표가 있다느니, 그래서 난 돈을 다 냈는데 스튜디오에서는 잔금을 못 받았으니 촬영을 못 해준다고 하질 않나. 정보가 없으니 그저 소문만 듣고 덜덜 떠는 사람이 되었다. 4차 산업 시대에서 정보는 권력이구나. 이상한 포인트에서 철학을 고민하게 되었다.


게다가 현실은 너무 가혹하다. 어떻게 하면 사람을 한 시간 정도 대화해 보고 판단해서 1년 프로젝트를 함께 하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을까?*  30년을 스스로 지켜본 바, 나는 아직 나조차도 잘 알지 못하는데. “그냥 대화 잘 통하는 사람으로 하자. 그럼 뭐 어떻게든 되겠지!” 는 너무 안일한 마음이었다. 하루에 모든 걸 결정하겠다는 것도 자만이었다. (웃음) 호기롭게 플래너 상담을 잡은 우리는 하루종일 청담과 강남 일대를 돌아다녔다. 웨딩플래너는 영업직이 맞았다. 당일 계획 혜택과 자신만이 해줄 수 있다는 것, 그리고 사람을 조급하게 만드는 능력까지. 고민해 본다는데 왜.. 보내주지 않는 거지? 옆에서 짝꿍이 이만 가보겠다고 으르렁거려도 어떤 플래너는 기세를 굽히지 않았다.


돌고 도는 뫼비우스의 띠 안에서 겨우 빠져나온 초보 예비부부는 너덜너덜해졌고 결국 처음으로 돌아왔다.

가장 차분하고 쿨했던. 플래너로는 10년 차, 이전엔 드레스샵에서 근무했었다는 그 사람에게.


“저희 돌아왔어요...^^”


잃은 것은 기력이요, 얻은 것은 8포인트의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웨딩 투두리스트였다.




커피 한 잔과 달콤한 케이크가 절실했다.



*

결혼이 가까워오는 오늘, 그 짧은 순간은 참 괜찮은 결정이었다. 촬영 부케는 제공되지 않는다고 했던 선생님은 사비로 이렇게나 예쁜 부케를 보내주었다. 덕분에 꽃 욕심이 많은 나는 5시간의 웨딩촬영동안 생화 부케를 3개나 돌려가면서 사용할 수 있었던 멋진 신부가 된다. 플래너 선생님께 참 감사한 마음이 많은데 그중 대부분은 우리의 취향이 비슷하다는 것에서 시작한다. 결혼을 고민하는 동지들이여. 플래너를 결정할 땐 꼼꼼함도, 연락 잘 됨도 중요하지만 나와 취향이 어느 정도 비슷한지를 고려하셔라. 그럼 내 마음에 쏙 드는 결과물을 갈등 없이 얻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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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이 너무 길어질까 봐 잘랐는데, 그래서 오히려 짧아진 초보 연재 작가의 실수를 너그러이 이해해 주세요 : )
다음 화에서는 8시간에 걸친 웨딩홀 투어, 드레스 투어, 투어, 투어, 투어 - 매 순간이 이상형 월드컵이었던 정신 복잡한 결혼준비 초반을 다룹니다.

우리, 참 잘 맞지만 싸우기도 많이 싸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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