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 찰나

찰나라는 걸 깨닫게 된 그 순간, 꽃은 가장 화려하게 피어난다

by 꿈꾸는 카프카

찰나(刹那)

명사

1. 어떤 일이나 사물 현상이 일어나는 바로 그때.

2. 불교 매우 짧은 시간. 탄지경(彈指頃)보다는 짧은 시간이나, 염(念)ㆍ탄지 따위와의 관계는 해석에 따라 다르다.


어김없이 병원으로 향하는 길.

우연히 아파트 앞 초등학교 담장 밖에 피어있는 장미들과 마주하게 되었다.

‘언제 이렇게 피어 있었지...’

분명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갑기만 해 보이던 담장 벽이었는데, 요 며칠 부쩍이나 날씨가 뜨거워지는가 싶더니 어느새 한아름 붉은 장비들이 피어나 삭막한 공간을 생기 있게 밝혀주고 있었다.

예기치 않게 만난 녀석들의 화사한 모습과 알싸한 향기 덕분에 나도 모르게 기분이 밝아졌던 것도 잠시. 나는 얼마 안가 이내 다시 무겁게 가라앉아 버리고 말았다.

‘쟤들도 곧 시들어버리고 말 텐데...’

누가 보면 괜한 걱정을 사서도 한다고 핀잔을 줄 일이지만, 아무것도 모르고 눈부시게 자태를 뽐내고 있는 녀석들을 보고 있자니 왠지 모르게 서글픈 마음이 드는 건 나도 어떨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연유에서 일까.

나는 4월 벚꽃이 한창인 철에도 남들처럼 벚꽃구경을 가거나 벚꽃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든지 하는 걸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20대 시절, 뭣도 모르고 세상이 마냥 싱그러워 보이기만 했을 그때에는 나도 제법 꽃을 좋아했었으리라... 하지만 언제부턴가 꽃은 내게 그것을 보고 있노라면 한없이 서글프고 애달픈 마음이 들게끔 하는, 그런 애잔한 존재가 되어 있었다.


한때, 아주 잠깐, 자신의 온몸을 불살라 지상 최대의 아름다움을 선사하고 그 화려함의 정점을 끝으로 언젠지도 모르게 우리 앞에서 사라져 버리고 마는 가혹한 운명의 것들...

어쩌면 그것은 지난 시절 내가 겪어온, 혹은 우리 모두가 겪어낸 고단했지만 눈부셨던 그때가 떠올라 느껴지게 되는 감정일지도 모르겠다.


찰나에 무지한 서글픈 존재들의 영원을 향한 맹목적 갈구...

젊은 날의 내가 그랬듯, 지금 내 눈앞에 피어난 늦은 봄의 저 꽃들 역시 그러하기를 바란다.

얼마 안 가 자신 앞에 펼쳐지게 될 운명의 비정함을 모른 채 지금의 자기 앞에 놓인 저 환희와 열락을 마음껏 누리기를...

찰나가 영원일지도 모른다는 믿음과 기대 아래 너의 삶이 늘 지금의 봄과 같이 기억될 수 있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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