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안에는 아직 어린 피노키오가 살고 있다
거짓
1.명사 사실과 어긋난 것. 또는 사실이 아닌 것을 사실처럼 꾸민 것.
2.명사 철학 이치(二値) 논리에서 진릿값의 하나. 명제가 진리가 아닌 것이다.
진실(眞實)
1. 명사 거짓이 없는 사실.
2. 명사 마음에 거짓이 없이 순수하고 바름.
3. 명사 참되고 변하지 아니하는 영원한 진리를 방편으로 베푸는 교의(敎義)에 상대하여 이르는 말.
나는 거짓말을 잘한다.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진실을 말하려는 것에 대해 그다지 적극적이지 않은 편이다.
보통 누군가와 대화를 나누다 보면 자신의 몇 가지 세부 정보들에 대해 상대방에게 발설해야 할 때가 있는데, 그때 내가 그에게 전하는 정보가 그것을 듣는 그로 하여금 불편한 마음을 갖게 한다면 그 진실은, 구태여 드러낼 필요가 없는 서로에 대한 일종의 호혜적 보루와도 같은 게 된다.
내 입장에서는 굳이 내 입을 모독해가며 상대방을 난처한 상황에 처하게 할 필요가 없어서 좋고, 상대방은 굳이 듣지 않아도 손해 될 것이 하나 없는 말을 듣지 않아서 좋은, 그 두 지점 간의 아주 적정한 평형상태.
그것이 주는 안정감과 균형 때문에 나는 거짓말 아닌 거짓말을 잘하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내 인생 최초의 거짓말은 8살 무렵이었다. 30여 년 전만 해도 초등학교에서는 매년 3월 초 새 학년 새 학기에 ‘가정환경조사서’란 것을 제출하게 했었는데, 내 기억으론 학창 시절 동안 나는 단 한 번도 사실 그대로의 가정환경조사서를 제출해 본 적이 없다.
부모란에 학력과 직업을 기재하는 공간에 내가 전혀 모르는 사실을 기입하고 있는 엄마를 보며 아마 여덟 살의 순진무구했던 어린 딸은 엄마를 향해 이렇게 물었던 것 같다.
“엄마, 왜 거기다 거짓말을 적어?”
어린 딸의 입에서 나온 ‘거짓말’이란 그 세 글자에 아마도 엄마는 감당하지 못할 만큼의 수치감과 모욕감을 느꼈던 것 같다. 그 단어를 입에서 내뱉음으로 인해서 그날 나는 엄마에게 ‘거짓말’이란 단어가 얼마나 무시무시한 일들을 초래할 수 있는 말인지를 제대로 배워야만 했다. 그리고 그 후 나는 엄마에게 다시는 그런 질문을 던지지 않았다.
그렇게 나는 원치 않게도, 내 나이 여덟 살에 어느 정도의 거짓말은 고요한 가정생활, 혹은 보편적인 학교생활을 위해 반드시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알아야만 했다.
키가 한 뼘 한 뼘 자라날수록 거짓말의 양상은 그 범위를 조금씩 넓혀나갔다.
어릴 때의 거짓말들이 주로 아이가 어른에게 하는 수직적 형태의 모양을 띠고 있었다면, 청소년 때의 거짓말들은 수직적 질서를 뛰어넘어 수평적 질서까지 넘보게 되는 내용의 것으로 확장되고 있었다.
그랬다. 나는 친구들을 사귀는 순간에도 거짓말을 둘러대고 있었다.
내가 지금 누구와 함께 살고 있는지, 부모는 무엇을 하는 사람인지, 내게 그동안 어떤 일들이 있었는지...
나와 관련된 그 모든 것들에 대해 나는 그 어느 것 하나 자신 있게 그들에게 진실을 말할 수 없었다.
피노키오가 거짓말을 할 때마다 코가 조금씩 자라났다면, 세상을 향한 거짓된 말들이 늘어날수록 내 안에선 저 깊은 곳에서 스스로를 공격하는 날카로운 가시들이 하나씩 자라나고 있었다.
다행스럽게도 중학생 때 나는 내 모든 비밀이자 진실을 털어놓을 수 있는 친구 하나를 만나 그 아이에게만큼은 오롯이 나에 대해서 있는 그대로, 내 마음의 날 것들을 표현할 수가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나는 단짝이 된 그 친구에게조차도 미처 말하지 못한 많은 비밀들을 짊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 무게는 시간이 더해질수록 강한 중압감으로 나를 짓눌러왔다. 그 친구 얼굴을 볼 때마다 마음은 괴로웠고 내가 미워졌다.
‘왜 나는 말하지 못했을까...’
그것은 아마도 버림받을지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을지도 모른다. 가능만 하다면 저 지구 세상 끝까지라도 감추고 싶었던 나의 탄생과정과 나의 가정환경, 그리고 내 주변의 사람들.
그 끔찍한 치부를 들켜버리는 순간 친구가, 혹은 어떤 누군가가 나를 비난하거나 무시하거나 떠나버리게 될지도 모른다는 극도의 불안감.
그 극한 불안감에서 벗어나기 위해, 나를 지켜내기 위해, 나는 끊임없이 거짓말을 해야만 했다.
그랬던 내가, 조금씩 그 거짓의 굴레로부터 자유로워지기 시작한 때가 있었다면. 아마도 그것은 나와 비슷한 상처를 지닌 사람들을 만나게 된 후부터 쯤이었을 것이다.
살고 싶은 마음에서였을까.
더 이상 이대로는 내가 진짜 나일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이 나를 엄습해왔을 때, 그때 나는 내 곁에 있던 누군가에게 먼저 용기 내어 이런 말을 꺼낸 적이 있었다.
“저기 사실 나 너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 진짜 나에 대해서 말이야...”
그 누군가가 나의 이야기를, 나를 둘러싼 진실에 대해 알게 되는 순간. 그가 나를 어떠한 눈빛으로 바라볼지 그것이 그토록 두려웠음에도 불구하고 나는 그때 무슨 용기에서인지 나에 관한 이야기들을 온전히 그에게 하나하나 풀어내고 있었다.
“그랬었구나... 많이 힘들었겠다... 여기까지 살아내느라, 이겨내느라 고생 많았어...”
숨 가쁘게 토해 낸 나의 고백에 예상치 못했던 그의 따뜻한 말 한마디. 그가 그때 내게 건넨 그 몇 마디는 그간 차갑게만 얼어붙어 있던 나의 딱딱한 마음에 따스한 온기를 지펴주었다. 그리고 그날. 나는 그동안 미처 알지 못했던 그의 숨겨진 비밀들을 그로부터 전해 들을 수 있었다. 그 역시 나처럼 마음 안에 커다란 가시 하나를 품고 사는 이였던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우리는 자주 보지는 못해도 가끔씩이나마 서로의 안부를 묻고 지내는 인생의 좋은 벗이 되어 날카로운 가시밭과 같은 인생길을 함께 걸어가고 있다.
그날의 그 용기와 그 시도는. 내게 먼저 다가선 마음 하나가 생각지도 못한 큰 기적을 불러일으킬 수도 있다는 삶의 중요한 교훈이 되어 주었다. 내가 먼저 내보이지 않으면 다른 이도 절대 내게 먼저 자신의 진심을 드러내지 않는다는 것을. 반면, 조금만 용기 내어 한 발짝 나아가 서로의 날 것이 드러나고 서로의 민낯이 드러나는 그 순간 정말 상상치도 못할 마음의 지극한 평온이 찾아올 수 있다는 그 놀라우면서도 명백한 사실을 나는 어른이 되고서도 한참이 지난 후에야 겨우 깨닫게 되었다.
그렇다고 항상 나와 생각이 맞는 사람만 만날 수는 없는 법이다. 때로는 섣불리 보인 진실 하나가 상대방에게는 불편과 거부감을 자아낼 수도 있다. 그래서 나는 아직도 종종 내 안에 어린 피노키오를 세상 밖으로 데려 나오곤 한다. 물론 그것이 꼭 필요하다고 여겨지는 상황에서만 말이다.
아직도 내 안에서 피노키오를 떠나보지 못했다는 것이 가끔 서글프기는 하지만 그래도 적게나마 위로가 되는 것은 그 피노키오가 예전만큼 그리 나를 아프게 하지는 않는다는 것이다.
잠시라도 나를 스쳐간 인연들이 있다면, 그리고 그때 행여나 내가 그들에게 거짓된 말들을 한 적이 있었다면 늦었지만 그들을 향해 나는 지금이라도 이렇게 고백하고 싶다.
‘그때 미처 진실을 말하지 못해 미안했었다고. 하지만 이것 하나만 기억해주노라고.
그 거짓 안에는 당신에게 한 걸음이라도 더 가깝게 다가가고픈 서툴지만 어디 마음 하나 둘 곳 없던 외로운 내 어린 피노키오가 함께 하고 있었다 '고 말이다.
비록 거짓이란 이름으로 포장될지언정 그 안에 당신을 향한 내 진심은 진실이었다고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