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은 남자가 있었다. 남자는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았기에 방의 유리창을 종이로 다 발라버렸다.
그의 아내가 와서 그에게 물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햇볕을 가리려는 거야.”
남자는 날씨가 어떤지 알고 싶지 않았기에 창문을 종이로 뒤덮을 수밖에 없었다.
방안을 벗어나 세상 밖으로 나가면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은 상태에 있을 수가 없었기에 그는 자기 스스로를 그렇게 방안에 가둬두었다.
그렇다면, 우리의 심지 곧은 ‘이 남자’는 과연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바람을 이뤄낼 수 있었을까.
예상했겠지만,
그는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다는 자신의 소망을 성취할 수 없었다.
하다못해 그의 생존을 염려한 아내가 방 안으로 가져다주는 음식을 보고서도 그는 무언가를 생각해야만 했다.
“나는 이게 감자라는 걸 알아. 이건 고기라는 것도 알지…….”
그는 아무것도 알지 않으려 하면 할수록 자신이 이미 무언가를 알고 있다는, 알게 될 수밖에 없다는 필연적 사실과 마주해야만 했다.
물론 이러한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이 작품 속에는 뒤에 이어지는 기발하고도 우리의 허를 찌르는 이야기가 더 많이 남아있다.
1969년. 스위스 작가 페터 빅셀이 내어 놓은 한 단편집에 수록된 이 작품은 50년도 더 지난 지금에도 우리 현대인들의 단면을 비춰주는데 한 치의 손색도 없는 스토리를 보여주고 있다.
물론 모두가 그런 것은 아닐 테지만.
우후죽순으로 사방에서 쏟아지는 정보의 홍수로 인해 우리는 때때로 ‘아무것도 알고 싶지 않다’는 욕망에 사로잡힐 때가 있다.
하지만 이것이 비단 외부의 특정 자극에 의한 것이기만 할까. 우리 안에서 자체적으로 생산해내는 다양한 생각들은 우리에게 이따금씩 독이 되기도 한다. 그래서 나는 종종, 내 머리를 한 번쯤은 백지장처럼 새하얗게 다시 리셋해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하곤 한다.
내 머릿속에 가득 차 있는 생각 그물들이 이제는 빈틈 하나 찾아볼 여유 없이 너무도 지저분하게 얽히고설켜 있어서 한 번쯤은 그 그물들을 깨끗이 치워 버리고 싶다는 강한 욕망에 사로잡히곤 하는 것이다.
20대 때만 해도, 나는 무언가를 안다는 것에 상당한 경외심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나보다 무언가를 더 알고 있는 사람을 만나는 것을 선호했었고,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사람이 될 수 있기를 바랐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면 흐를수록.
나는 내가 여태껏 ‘안다’고 생각하고, 말해왔던 것들이 얼마나 가볍고, 얄팍한 수준의 보잘것없는 것들이었는가에 대해 조금씩 깨달아가고 있다.
‘안다’
나는 과연 무엇에 대해서 알고 있을까.
나를 둘러싼 내 주변 사람들에 대해서, 내가 전공했다는 내 학문에 대해서, 내 일에 대해서, 내 마음에 대해서, 내 삶에 대해서.
이 땅에 발을 내딘지 40년이 다 되어가는 시간 동안 나는 무엇을 알고 살아온 것일까.
생각해보면,
난 정말 제대로 알고 있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면서 뭐라도 안다고 누군가에게 그동안 의미 없는 말들을 토해내며 그야말로 ‘아는 척’을 하고 살아온 그 부끄러운 꼴이란. 그럴 수만 있다면 당장 쥐구멍에라도 숨고 싶은 심정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난 지금도 내 머릿속을 무엇 하나 남겨놓지 않고 깨끗이 비워버리고 싶다.
무언가를 결정하기 위해,
무언가를 정리하기 위해,
어떻게든 삶을 유지해 나가기 위해, 그러기 위해선 내 머릿속 안은 365일, 24시간 끊임없이 풀가동으로 생각 시계를 작동해야만 한다.
모든 생각들이 다 나를 괴롭히는 것은 아니겠지만 대부분의 생각들은 내가 무언가를 어설프게나마 알고 있기에 (혹은 인지하고 있기에) 비롯되는 것으로 그것들은 꽤나 나를 고통스럽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아무것도 더 알고 싶지 않았던 남자처럼 더 이상 아무것도 알고 싶지 생각하고 싶지를 않다.
조금이라도 더 많이 아는 것이 최상의 삶이라 여겼던 그때. 그 앎이 나를 행복의 길로 이끌어 주리라 조금도 믿어 의심치 않았던 시절들. 하지만 그 앎이 나 스스로를 갉아먹을 수 있는 종과 같은 존재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이제 내 남은 삶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만을 향해 있을 것이다.
그것은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것, 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역시 그러하며, 앞으로도 그럴 것이라는 것을. 결국 나는 이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왔다가 아무것도 모른 채 사라지리라는 것을. 그 자명한 사실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내 삶은 내 남은 삶의 유일한 목적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