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여행기
5월은 계절의 여왕답게 이탈리아에서도 빛났다. 하늘은 자기 색깔을 뽐내고 적당한 바람과 흐르는 구름을 쉬엄쉬엄 쳐다보며 로마에서 폼페이로 이동했다. 날이 좋아서 모든 것이 좋았다.
가이드가 단체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엄청 서둘러댔다. 이곳 폼페이의 규정이 바뀌어 오전 1만 5천 명 안에 들어야 폼페이를 둘러볼 수 있다며 지난번 허탕 친 에피소드를 들려주었다. 모두들 분주하게 가이드를 따라 올라갔다. 입구에서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며 나는 폼페이를 들어서는 문을 지났다. 순간을 거슬러 내 뒤로 2천 년의 시간을 흘려보낸 느낌이었다. 그렇게 폼페이는 기꺼이 과거로의 시간여행을 허락해 주었다. 이탈리아 남부 나폴리 근교에 위치한 고대 도시 폼페이는 베수비오 화산의 격렬한 분출로 순식간에 재로 뒤덮였다고 한다. 이 도시는 마치 시간이 멈춘 듯 보존되어 있었다. 이 거대한 도시를 걷다 보면 여전히 사람들의 삶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는 사실에 놀라울 따름이었다.
폼페이 사람들은 길 하나도 그냥 만들지 않았다. 인도와 차도가 있었으며 비가 와도 배수가 잘 되도록 높낮이를 두었다. 지금의 횡단보도 역할을 하는 돌들도 있었다. 돌바닥엔 지금의 안내판처럼 바닥에 그림으로 새겨 두기도 했다니 그저 놀랍기만 했다. 이 길을 걷다 문득 여기 수많은 돌들은 어디서 왔는지 궁금해졌다. 그리고 누가 이 돌들을 가지런히 놓아 집으로, 길로 만들었는지 그 손길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었다.
어느 귀족 저택에 들어서서 '춤추는 판' 동상을 보았다. 그 당시에 예술작품에 이런 활동성과 섬세함이라니 가히 놀라웠다. 작은 청동 조각이지만 경쾌하게 팔을 올리고 춤을 추는 자세는 오히려 생동감 넘치고 활기찼다. 죽음의 도시 속에서 만난 삶의 형상이라 더욱 강렬하게 다가왔다.
도시 한가운데 위치한 바실리카와 광장은 공공 재판과 상업 거래가 이루어지던 중심 공간으로 로마 도시의 정치적·행정적 기능을 보여주는 핵심 구조물이었다. 현재 바실리카는 천주교 성당들 중 가장 위계가 높은 성당에게 부여되는 이름이다. 로마에서는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전, 성 베드로 대성전, 산 파올로 푸오리 레 무라 대성전, 산타 마리아 마조레 대성전이 이에 해당한다.
또 하나 잊을 수 없는 곳은 공공 목욕탕이었다. 현재 우리가 사용하고 있는 그것과 아주 닮아 있었다. 단순한 씻음의 공간을 넘어서 사람들이 교류하고 문화를 나누던 곳이었다고 생각되니 그 시절의 그들의 문명이 더 놀랍게 느껴졌다.
나는 폼페이를 걷는 내내 그날의 참혹함과 인간의 나약함을 생각했다. 동시에 문명과 예술이 얼마나 위대한지에 대해 생각이 교차했다. 유적 속에 남은 뼈들은 말이 없지만 그 자리에 멈춰 서면 그날의 고요와 비명이 동시에 들려오는 듯했다.
폼페이는 단순한 고고학 유적이 아니었다. 그것은 인간의 삶과 죽음, 영광과 비극, 그리고 시간이 만들어낸 기적의 현장이었다. 무너진 도시 속을 걸으며 나는 오늘을 살아가는 나 자신의 하루를 새롭게 바라보게 되었다. 삶은 언제든 멈출 수 있기에 지금 이 순간이 더욱 소중하다는 깨달음을 얻었다. 폼페이는 그렇게 한없이 잿빛이면서도 따뜻한 기억으로 내 마음속에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