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폴리에서의 하루, 시간과 커피 사이에서

by 고 온

이탈리아 남부의 항구 도시 나폴리는 처음부터 낯설고도 반가웠다. 유럽에서 가장 오래된 도시 중 하나답게 거리마다 고대와 현대가 겹쳐져 흐르고 있었다. 도심 속 오래된 건물 사이를 걷다가 본 골목은 홍콩의 도시 풍경과도 흡사했다. 오래되고 낡은 작은 집들이 이어진 골목에 빨래가 집집마다 널려 있었다. 사람 사는 모양은 다 비슷하다는 생각을 할 무렵 트리에스테 에 트렌토 광장(Piazza Trieste e Trento)에 닿았다. 이곳을 찾은 이유는 여기서 오래도록 자리를 지켜온 카페 감브리누스(Caffè Gambrinus) 때문이었다. 낡고 고풍스러운 간판 아래로 들어선 나는 이탈리아 커피문화의 심장 속으로 발을 디뎠다.


처음 주문한 커피는 이곳 감브리누스에서만 맛볼 수 있다는 '카페 스트라빠짜또'였다. 작고 묵직한 잔에 담긴 에스프레소는 향으로 먼저 말을 걸었다. 구운 헤이즐넛, 깊은 초콜릿, 그리고 살짝 그을린 설탕의 향. 입을 대는 순간 진한 쓴맛이 입안을 감싸고 이어 초콜릿의 달콤한 잔향이 혀끝을 타고 흘렀다. 따뜻하고 진하며, 무게감 있는 여운이 남았다. 커피와 초콜릿의 미묘한 조화. 어느 것도 앞서서 튀지 않지만 어느 것도 죽지 않는 맛. 그 균형감을 너무 잘 맞춘 에스프레소였다. 왜 이탈리아는 에스프레소인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한 잔만 마시고 나오기 너무 아쉬워 '카페 에스프레소' 한 잔을 더 주문해서 마셨다. 황설탕 한봉을 다 넣고 천천히 티스푼으로 저어 세 번에 나누어 마셨다. 작지만 강렬했다. 나는 두 잔의 에스프레소를 마시고 감브리누스 예찬론자가 되었다. 누구든 이탈리아에 간다면 이곳은 꼭 들러야 하는 곳이라 추천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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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s://maps.app.goo.gl/zgLPcfPuyPcLQXv59


우리는 다시 나폴리의 거리로 나섰다. 나폴리는 마치 오래된 필름처럼 진하고 선명하게 우리를 끌어당겼다. 누구도 재촉하지 않았고 어디로 가야 할지 고민하지 않아도 좋았다. 그냥 나폴리의 오후를 흠뻑 맞으며 걷는 것 그 자체로 충분했다. 회색빛 하늘 아래 우리는 돌바닥 위를 걸었다. 나폴리만의 바다는 잔잔한 물결을 품고 있었다. 그 위로 떠오르는 하얀 배 한 척과 수면 위에 뿌려진 은빛 윤슬은 내가 여행자임을 다시 상기시켜 주었다. 나는 이 모든 것을 누려도 괜찮았다. 지금 이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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잠시 앉아 바람을 맞으며 나는 생각했다.

여행이란 결국 사람을 다시 살게 하는 일이라고.

오래된 도시, 짙은 커피 향, 바다 바람, 그리고 돌길 위에서 만나는 나 자신이야말로 나폴리가 주는 가장 깊은 선물이었다.


지금도 나는 이 도시를 잊고 싶지 않다. 나폴리는 그렇게 내 안에 한 잔의 에스프레소처럼 진하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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