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7시, 나폴리 항에서 카프리로 향하는 배에 올랐다. 여행하기엔 참 이른 시간이었다. 현지 가이드의 적극적이고도 욕심 있는 판단으로 우리는 새벽 4시에 기상을 하고 모든 것을 준비해서 카프리로 향했다. 잔잔한 바다 위를 가르며 달리는 배의 속도만큼이나 내 가슴도 점점 더 벅차올랐다.
배 위에서 바람을 맞으며 바라본 그 광경은 영화 속 장면처럼 비현실적으로 아름다웠다. 내가 이곳에 있다는 것이 행복해서 절로 웃음이 났다.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 카프리. 바다 위로 우뚝 솟은 바위섬은 우리가 지금 어디에 와 있는지를 또렷하게 알려주었다.
사진으로는 도저히 담아낼 수 없는 푸른색의 농도, 바위의 결, 그리고 햇살의 결이 겹쳐진 풍경. 그 순간만큼은 아무 말도 필요 없었다. 우리는 그저 바라보고 감탄했다.
사람이 많지 않은 카프리의 고요한 아침을 즐기는 것도 좋은 선택이었다. 다만 아쉬운 점은 오늘은 푸른 동굴을 관광할 수 없다는 안타까운 소식이었다.
우리 일행은 9시에 오픈하는 1인용 곤돌라 리프트를 타고 몬테 솔라로 정상까지 올라갔다. 나는 혼자서 리프트를 타고 올라가는 내내 고요한 카프리를 찬찬히 둘러볼 수 있었다. 잘 정돈된 집과 정원들 그리고 올리브 나무, 멀리 보이는 푸른 바다를 만끽하며 어느새 정상에 도착했다.
정상에 도착하니 한눈에 펼쳐지는 카프리 전경과 함께 여행객들의 쉼터가 되어주는 작은 카페가 기다리고 있었다. 이 카페는 단순한 휴식처를 넘어 가장 아름다운 카프리의 풍경을 곁에 두고 커피 한 잔을 즐길 수 있는 곳이었다. 나는 에스프레소 한 잔을 들고 바다를 내려다보는 순간 시간을 멈추고 싶었다. 단연코 잊을 수 없는 뷰 맛집이었다. 이 카페와 전망대는 카프리 여행에서 놓쳐서는 안 될 포인트로 적극 추천한다. 가벼운 등산이 아닌 하늘을 나는 듯한 리프트 경험과 정상에서 만나는 카프리의 진면목은 느껴본 사람만 알 수 있으리라.
우리는 햇살 가득한 골목길 작은 델리에서 구입한 카프레제 바게트로 점심을 먹었다. 겉은 바삭하고 속은 부드러운 바게트 사이에 토마토, 바질, 신선한 모차렐라가 층층이 쌓여 있었다. 한 입 베어 물자마자 모차렐라의 크리미 한 질감과 토마토의 산뜻한 단맛, 바질의 향긋함이 입 안 가득 퍼졌다. 따로 소스가 없어도 충분히 맛있었다. 그 간결함이 오히려 이탈리아 음식의 정직함을 증명하는 듯했다.
점심을 먹고 시계탑이 있는 광장으로 이동했다. 나는 바다가 한눈에 들어오는 광장 벤치에 앉아 조용히 카프리를 더 즐겼다. 카프리의 바람, 바다, 그리고 햇살이 만들어낸 그날의 시간은 낙원이 있다면 바로 여기 이곳이라 생각할 정도였다.
카프리섬은 바다만큼이나 골목도 매력적이다. 하얀 벽과 알록달록한 꽃, 좁은 거리 안으로 가득 찬 사람들과 그 사이사이로 스며드는 햇살. 브랜드 숍이 줄지어 있지만 그 풍경마저도 이탈리아 특유의 여유로 덮여 있었다. 부자들의 휴양지답게 섬의 모든 시설들이 고급스럽고 잘 정돈되어 있었다.
카프리의 골목을 걷다 문득 발길을 붙드는 향기가 있었다. 햇살 아래 상큼하게 퍼지는 레몬내음. 시선을 그곳에 멈추고 일행과 나는 자연스럽게 그곳으로 향했다. 그렇게 들어간 곳이 바로 Carthusia(카르투지아) 향수가게였다. 작은 가게 안은 각기 다른 정체성을 지닌 향수들로 가득했다.
점원의 도움으로 여러 향수 중 장미향을 베이스로 한 향수를 하나 구입했다. 무언가 마음 깊숙한 곳을 건드리는 듯한 그 향에 매료되었다.
카르투지아 향수는 단지 향수가 아니라 카프리에서의 한 순간을 병에 담아 집으로 가져가는 느낌이었다. 이제 이 향을 맡을 때마다 햇살과 바람이 흐르던 그 거리와 그 순간의 나를 떠올리게 될 것이다.
푸른 동굴을 탐험하지 못하는 아쉬움에 우리는 요트를 타고 카프리를 더 둘러보기로 했다. 항구에서 출발한 요트는 천천히 푸른 바다를 가르며 나아갔다. 바람이 머리카락 사이로 스며들고 파도는 살포시 선체를 두드렸다.
유럽 화가들의 그림이 왜 이토록 아름다운 하늘과 바다를 그림 속에 담아내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나조차도 예술의 혼이 타오르는 감정을 느꼈다. 뭐라도 그려내고 싶었고 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 아름다운 자연이 나를 위로하고 자신감을 불러일으켜 주었다. 어느 순간 우리는 말이 없어졌다. 우리는 그저 바다와 바람, 빛과 움직임에 자신을 맡긴 채 물 위를 떠다녔다.
우리는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 작은 동굴 안으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마주한 바다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청색이었다. 햇살이 바위틈 사이로 스며들어 물속에서 반짝였고 그 빛은 마치 내가 지금 꿈속에 있는 것처럼 느끼게 했다. 카메라로는 담을 수 없는 너무 안타까웠다.
절벽 아래 드리운 석회암의 그림자와 바위 사이사이로 반짝이는 햇빛 그리고 맑디맑은 물빛. 요트가 암초를 지나칠 때 그 기묘하고도 위엄 있는 자연의 형상 앞에서 나도 모르게 숨을 죽였다.
가끔은 뒤를 돌아 친구와 눈을 마주치며 웃었고 가끔은 등받이에 몸을 기대어 그저 눈을 감았다. 그곳은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좋은 공간이었고 그 시간은 아무 말이 없어도 충만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카프리의 바다는 나를 품었고 나는 그 안에서 고요한 감정을 오래도록 만지고 있었다.
나는 지금 다시 눈을 감고 카프리의 좁은 골목을 따라 걷는다. 걸음을 멈추고 바다를 향해 몸을 기울인다. 말없이 반짝이는 수면 위로 바람이 지나가고 햇빛은 내 어깨를 감싼다.
그 순간의 고요함과 온기, 푸른 바다는 내가 카프리를 기억하는 방식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