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일간의 남부 투어를 마치고 로마로 돌아온 나와 일행은 오랜만에 늦잠을 자고 천천히 하루를 시작했다. 숙소 근처 카페에서 크루아상과 에스프레소를 아침으로 먹고 로마관광을 시작했다.
시티투어버스가 참 다양하고 많았다. 우리는 '아이러브로마' 투어버스에 오르며 로마를 사랑할 준비를 마쳤다. 버스의 한국어 설명을 들으며 보이는 것들에 감탄했다. 모두 책에서나 나오는 진귀하고 아름다운 자태를 뽐내는 보물들이었다. 우리는 바티칸시티에 들어가기 위해 버스에서 내렸다.
신의 숨결이 깃든 도시 바티칸으로 가는 발걸음은 자연히 조심스러워지고 말수는 자연스레 줄어들었다. 역사의 심장을 걷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성 베드로 광장이 가까워질수록 성스러운 무게가 피부로 스며들었고 천년의 시간 속에서 여전히 우뚝한 성 베드로 대성당이 그 위엄을 눈앞에 나타냈을 때는 호흡이 정지된 느낌이었다. 구름이 흩어지며 비추는 햇살은 마치 하늘이 내려주는 환대처럼 따뜻하고도 장엄했다.
광장의 중심, 하늘을 찌를 듯한 오벨리스크 앞에서 사진 한 장을 남기고 고개를 들었다. 조각상이 늘어선 회랑 위로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그 뒤로는 돔을 이고 선 성당이 나를 바라보고 있었다. 그 공간에서 나는 작은 점이었지만 동시에 거대한 시간의 일부가 되었다. 성 베드로 대성당. 그 이름만으로도 세기를 넘어오는 경외심을 일으켰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는 줄은 길었고 그 사이사이엔 각국에서 온 여행자들의 얼굴이 있었다. 어떤 이는 묵주를 들고 조용히 기도했고 또 다른 이는 감탄을 금치 못한 채 천장을 올려다보고 있었다. 정교한 황금빛 천장과 화려한 프레스코화에 감탄했고 미켈란젤로의 성 베드로 상과 거대한 발다키노는 말문을 막히게 했다. 사람의 손으로 이런 공간이 만들어졌다는 것, 그리고 그것이 수 세기 동안 누군가의 기도와 감탄 속에 살아 숨 쉰다는 것이 놀라웠다.
이날은 특히 특별한 날이었다. 새 교황 '레오 14세'의 취임식이 열린 주일이었다. 방송국 장비들이 광장에 즐비했다. 그 덕분에 무료입장으로 성베드로 성당에 입장할 수 있었다. 나는 오후에 방문하여 중계 과정을 지켜볼 수는 없었지만 그 흔적을 정리하는 손길이 분주한 모습만으로도 행복했다. 한 시대의 전환을 상징하는 장면 속에 내가 함께 있다는 사실이 가슴 먹먹하게 했다.
성베드로 대성당.
사람의 손으로 지어진 공간이라 믿기 어려운 거대한 규모와 치밀한 아름다움과 그 안에 담긴 신에 대한 인간의 깊은 믿음이 나를 압도했다. 건축적 위엄이 먼저 시선을 붙잡았다. 르네상스와 바로크의 정수를 품은 이 성당은 미켈란젤로, 브라만테, 베르니니 등 수많은 거장들이 생애를 바쳐 완성한 신의 집이었다. 거대한 기둥들과 조각상들은 마치 살아 있는 듯 인간을 향해 말을 거는 듯했고 천장과 벽을 가득 채운 성화들은 그 자체로 기도였다.
하지만 진정한 위엄은 그 외형이 아니라 그 공간에 스며 있는 수많은 기도의 숨결에서 비롯된다. 수천만의 신자들이 이 자리에서 눈을 감고 손을 모았으며 그 시간의 누적이 이 벽과 바닥과 공기 속에 스며든 듯했다. 나의 작은 기도도 이 공간에 스밀 수 있어 감개가 무량했다.
오후 5시 시작되는 미사에 참여하여 미사를 드릴 수 있었다. 향이 피어오르고 오르간 소리가 천장을 가득 채웠다. 전 세계에서 온 신자들과 함께 드리는 미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일종의 연대감과 평온함을 안겨주었다. 목소리를 낮춰 읊는 기도문, 차분한 신부님의 영어 강론, 그리고 이따금 들려오는 아기 울음소리까지 모두 하나의 합창처럼 들렸다.
미사가 끝난 후 나는 천천히 광장으로 나왔다. 긴 그림자가 돌길 위에 드리우고 있었다. 그 그림자는 마치 오늘 하루의 기도처럼 나를 따라왔다.
바티칸에서 보낸 주일은 단순한 여행의 하루가 아니었다. 나를 다시 들여다보고 침묵 안에서 나와 세계의 연결을 느낀 성찰의 시간이었다. 미사에서 받은 성체보다도 더 깊숙이 오늘의 기억은 내 안에 들어와 자리 잡았다.
바티칸 성당은 더없이 화려하고 정교하고 거대하다.
하지만 내가 진정 느낀 위엄은 그것을 넘어서는 어떤 '존재의 침묵'이었다.
말할 수 없이 큰 것 앞에 마주했을 때 느끼는 고요한 떨림. 그 떨림이 바로 은총이었다.
신의 집 앞에서 나는 나의 작은 떨림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오히려 감사하게 되었다.
그리고 그것이 진짜 기도였다고 믿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