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스카나를 둘러 저녁에 피렌체에 도착했다. 피렌체에선 한인민박집에 머물렀다. 친절한 사장님 덕분에 저녁부터 무료 가이드를 해 주셔서 2시간을 둘러볼 수 있었다.
피렌체의 아르노 강을 가로지르는 중세에 만들어진 베키오 다리로 갔다. 현재는 보석상들이 즐비해 있는 베키오 다리는 이탈리아어로 오래된 다리를 뜻한다고 했다.
민박집 사장님은 이 다리에 관한 여러 이야기들을 전해 주었다. 다리 위로는 우피치 미술관에서 피티궁전까지 이르는 숨은 통로가 있다고 했다. 메디치 가문의 사람들이 이용했던 곳이라 했다. 그리고 이 다리는 2차 세계대전 중 유일하게 파괴되지 않았다고 했다. 모든 다리를 폭파하라는 명령이 내려졌고 마지막에 이 베키오 다리는 남기라는 전갈에 살아남았다고 했다. 히틀러도 이 다리를 무척 사랑했다고 전했다.
나는 이 다리를 보며 영화 <향수-어느 살인자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영화 초반부의 분위기와 아주 닮아있고 특히 주인공이 향수제조업자의 제자로 들어가 향수에 대해 배우던 시절에 이 다리와 유사한 장소에서 지냈던 걸로 기억되었다.
베키오 다리를 지나 대성당으로 향했다. 대성당과 종탑, 세례당의 천국의 문을 둘러보고 숙소로 돌아와 짐을 풀었다.
다음날 우리는 산타 크로체 성당을 둘러보았다. 조토를 비롯한 수많은 작가들의 작품을 볼 수 있으며 거장들이 잠들어 있는 산타 크로체 성당은 형언할 수 없는 경건함을 불러일으켰다. 아주 천천히 조심조심 여기에 묻힌 그들을 기억하며 걸었다.
피렌체는 예술의 도시다. 그 중심에는 르네상스의 정수를 간직한 우피치 미술관이 있다. 우피치는 단순한 미술 전시 공간이 아니라 시대를 뛰어넘는 작가들과의 조우가 일어나는 곳이었다. 미술관 입구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그림 속으로 빨려 들어갔다. 고풍스러운 황금 프레임과 조명 아래 빛나는 회화들은 한 폭의 그림이자 하나의 세계였다.
그림에 대해 잘 모르지만 이 미술관 안의 작품들이 서양미술사에 얼마나 거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는지 짐작이 되었다. 천재들의 그림을 보고 있자니 가슴이 벅차고 그저 이 순간이 감사했다.
기억에 남는 몇 작품을 꼽으라면 보티첼리, 카라바조 그리고 램브란트 작품이다.
보티첼리의 비너스의 탄생은 부드러운 선과 바람의 흐름 속에서 한 여성이 조개껍데기 위에서 탄생하는 모습이었다. 꿈속인듯한 느낌을 주는 이 그림은 미술관 투어를 시작하며 앞서 보던 그림과는 달리 부드럽고 우아했다.
카라바조의 메두사는 시선을 마주치는 순간 시간이 멈추는 듯한 강렬한 울림을 주었다. 그곳엔 메두사와 나만 존재하는 느낌이 들었다. 보고 있을수록 공포감이 밀려오는 그림이었지만 눈을 뗄 수 없는 그림이었다. 가히 천재다운 작품이라고 생각했다.
렘브란트의 자화상은 젊은 시절의 렘브란트가 그려져 있었다. 회화 너머의 우리를 바라보는 그 눈빛 속에는 야망과 불안, 자신감과 회의가 섞여 보였다. 램브란트는 어둠 속에서 자신을 찾는 한 인간의 고뇌를 그려낸 듯했다.
우피치 미술관은 인간이 가진 감정과 욕망, 신에 대한 경외와 자연에 대한 사랑, 삶과 죽음 그리고 구원과 파멸을 모두 껴안은 이야기의 집합체였다. 미술관을 나서는 순간 나는 비로소 한 도시의 시간이 왜 예술과 함께 흐를 수밖에 없는지를 깨달았다.
피렌체와 우피치... 그것은 과거이자 현재이며 영원히 살아 숨 쉬는 예술의 심장이었다.
피렌체의 거리를 걷다 카페 질리(Caffè Gilli)로 들어갔다. 18세기부터 시간을 쌓아온 듯한 외관과 실내장식을 보며 피렌체에서 가장 오래되고 우아한 카페답다고 생각했다. 오래된 이 공간을 누비는 커피 향이 이 공간의 품격을 말없이 설명하고 있었다. 맛있는 에스프레소 한잔을 마시고 북적이는 카페를 나왔다.
이곳 피렌체에서 나는 예술에 대해 생각을 많이 했다. 이 위대한 작품들은 단순한 결과물이 아니라 삶을 천천히 바라보게 만드는 시선이라는 것을 배우게 되었다.
그리고 피렌체에서의 여정은 하나의 회화처럼 나의 기억 속에 오래도록 빛날 것 같았다.
피렌체는 그렇게 위대한 예술작품 같은 하루를 선물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