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 로마

by 고 온

이탈리아 여행을 바쁘게 움직이는 관광으로 끝내고 싶지 않았다. 마지막 이틀은 로마 근교의 호텔에 묵으면서 호캉스를 즐기며 쉬다 비행기에 오를 계획이었다. 야외 수영장에서 수영도 하고 뒹굴뒹굴하는 것이 목표였다. 그런데 실외수영장이 6월부터 오픈이라 이용할 수 없다는 안내를 받았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여행이라고 했던가? 그래서 더 기억에 남는 여행이 되는 건가?

KakaoTalk_20250526_224013666_14.jpg


우리는 웃기로 했다. 남은 여행을 후회하고 싶지 않아서...

나와 일행은 다시 로마 시내로 나가기로 했다. 우리가 가기로 정한 곳은 판테온이었다.

로마는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도시라고 생각했다. 고대와 현대가 공존하는 이 도시에서 나는 판테온(Pantheon)의 거대한 원형 돔 아래에 서 있었다. 판테온의 거대한 돔 아래 서면 자연스럽게 고개가 하늘로 향한다. 건축적 경외심이 절로 우러나오는 공간이었다. 공간이 주는 두려움과 경외심을 동시에 느끼고 싶다면 나는 단연코 이곳 판테온이 제격이라 말하고 싶다. 햇빛이 둥근 채광창(오쿨루스)으로 쏟아져 내려 신전 내부를 은은하게 밝혔다. 빛의 줄기가 내리쬐는 그곳에 서서 판테온을 구석구석 눈으로 살폈다.


KakaoTalk_20250526_223837702_19.jpg

거대함에 압도당했다. 기둥 하나하나에 남겨진 세월의 흔적은 진심으로 장엄하다고 느꼈다.

나는 그 속에 앉아 잠시 휴식을 취했다. 다른 방문객들도 조용히 숨을 고르며 각자의 방식으로 이 공간을 느끼고 있었다.

나는 그저 앉아 있었다. 아무 말 없이, 아무 생각 없이...

고요가 내 안에 들어차도록 비우고 비워냈다.

KakaoTalk_20250526_223845319_19.jpg


판테온의 여운을 품은 채 우리는 걸어서 트레비 분수로 도착했다. 사람이 너무 많아 놀랬다. 발 디딜 틈 없다는 것을 몸으로 체감할 수 있는 곳이었다. 동전을 던져 보겠다는 로맨틱한 생각은 단숨에 사라졌다. 바람에 흩날리는 물안개 사이로 멀리서 조각상들만 힐끗 보고는 그곳을 벗어났다.


KakaoTalk_20250526_224013666_02.jpg


광장을 지나 작은 골목으로 들어서자 젤라또 가게가 눈에 띄었다. 나는 이탈리아에 가면 1일 1 에스프레소와 1일 1 젤라또를 하겠다고 다짐했고 우리는 거의 매일 에스프레소와 젤라또를 먹었다. 오늘도 젤라또 가게 앞을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젤라또를 하나씩 골라 손에 들고 광장 벤치에 앉았다. 이제 머지않아 이탈리아를 떠난다 생각하니 젤라또에 너무 애착이 갔다. 젤라또는 진하고 부드러웠다. 우리는 이런저런 이탈리아 여행의 마지막을 이야기하며 한 입 그리고 또 한 입 젤라또를 만끽했다. 입 안 가득 퍼지는 달콤함은 하루의 피로를 부드럽게 감싸 안았다.

KakaoTalk_20250526_224013666_06.jpg

젤라또를 다 먹고 나서도 한참을 그 자리에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아이들 웃음소리, 연인들의 셀카 그리고 지나가는 거리 음악가의 바이올린 선율까지...

로마는 그렇게 내 하루를 사로잡았다. 너무 크지도 너무 작지도 않은 감동으로...

이탈리아 여행이 단순한 여행이 아니라 내 삶의 밀도를 다시금 깨닫게 해주는 순간들이라는 걸 느꼈다.

돌바닥 위를 두 발로 걸으며 낯선 도시에서의 하루는 이렇게 빛나고 있었다.

사진 속의 나는 미소 짓고 있었고 그 웃음은 이탈리아가 내게 준 가장 큰 선물이었다.

KakaoTalk_20250526_225637918_13.jpg




keyword
이전 09화시간과 예술의 심장 피렌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