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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린이맘 May 23. 2022

피곤이라는 굳은살

말랑말랑한 기분으로 육아하기

며칠 동안 오른쪽 눈가에 다래끼가 나서 고생하는 중이다. 눈가는 발갛게 붓고 눈을 감고 뜰 때마다 거슬리는 느낌이 불편하다. 참고 참다 너무 아파서 남편에게 병원에 다녀오겠다고 말했다. 주말 아침을 병원 가는 일로 시작하다니…. 의사선생님은 다래끼가 맞다고 했다. 삼일 치에 약과 연고를 처방해줄 테니 손으로 눈을 절대 비비지 말라고 하셨다. 약을 사서 다시 집으로 돌아간다. 참 이상하다. 병원 가기 전에는 그렇게 아프던 증상이 왜 병원만 가면 사라지는 걸까? 의사선생님 앞에만 가면 증상도 지레 겁을 먹나보다. 다행히 다래끼를 안 째도 돼서 일찍 집으로 돌아왔다. 자꾸만 눈이 간지러워 손이 간다. 이러다가는 얼른 낫지 않을 것 같아 안경을 쓴다. 불편한 눈으로 아이와 놀아주고 집안일을 하며 평소의 일상을 해나간다.


처방받은 약을 삼일이나 먹고도 다래끼는 낫지 않았다. 게다가 오른쪽 눈 바깥쪽에도 다래끼가 났다. 또 병원에 가야하다니…. 아이가 있으니 병원 가는 일도 쉽지 않다. 친정엄마에게 전화를 걸어 잠깐 아이를 돌봐달라고 부탁했다. 웬만하면 부탁하고 싶지 않은데 변수가 생기면 어쩔 수 없이 도움을 청하게 된다. 최대한 폐를 덜 끼치고 싶어 아이의 낮잠시간에 맞춰 방문해달라고 했다. 그런데 아이가 도통 자려고 하지 않는다. 내가 나간다는 사실을 아는 걸까? 미세하게 달라진 나의 태도 때문일까? 아니면 발갛게 부은 엄마의 눈이 그 모든 것을 말해주고 있었을까? 아이가 잘 때 맡기고 잠깐 다녀오려고 했는데 아이가 안 자니 등에 식은땀이 흐른다. 다행히 친정엄마가 도착하기 십분 전에 아이는 잠이 들었다. 그렇게 아이를 맡기고 집을 나선다.


“아이고. 또 오셨네요. 이번에는 바깥쪽에 났네. 요즘 많이 피곤해요?”

“그런가봐요.”

진료를 마치고 다시 삼일 치에 약과 안약을 처방받아 집으로 돌아간다.


아이가 태어난 후 피곤하지 않은 날은 없었다. 더 피곤한 날과 좀 덜 피곤한 날만 있을 뿐이다. 피곤하다는 말도 항상 달고 산 나인데 왜 오늘따라 유독 피곤하냐는 말이 머릿속을 맴도는 걸까? 하루 종일 아이한테 보채여서 피곤한 것일까? 밤에 잠을 설쳐서 피곤한 것일까? 집에 가서 해야 할 집안일이 있어 피곤한 것일까? 나의 피곤을 어느 것 하나로 단정 지을 수 없다. 아마 이 모든 것들이 합쳐져서 마치 굳은살처럼 박였을 것이다. 그래서 피곤하냐는 질문에 당연한 듯 그런가보다라고 대답했을 것이다. 아이를 키우며 피곤함을 느끼는 상황이 반복되다 마음에 피곤이라는 굳은살이 되었을 것이다. 피곤에 무뎌져 고통을 덜 받고 덜 스트레스 받고 그렇게 괜찮다고 스스로를 다독여 왔다. 오히려 엄마의 역할을 잘 해내고 있다며 뿌듯해했다. 나의 감정을 외면하면서 말이다. 애써 모른 척하지 않으면 일상을 살아가기 힘드니까. 나는 엄마니까. 피곤함은 당연한 거라고 생각했다. 굳어버린 마음은 엄마로서 강하게 만들었지만 나라는 존재는 약하게 만들었다.


피곤함에 익숙해져 나를 위한 여유가 사라지고 좋아하는 것이 무엇이었는지조차 흐릿하다. 그동안 얼마나 많은 나를 잃고 지내왔을까? 피곤함이 더 굳어지기 전에 내가 좋아하는 것, 나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을 다시금 떠올려본다. 무너지지 않기 위해 무뎌지는 것을 선택했던 나. 굳은살이 더 많아지기 전에 지금의 나를 느끼며 살아야겠다. 아이와 함께 하는 순간도 물론 소중하다. 하지만 나를 잃지 않는 것도 중요하다. 굳은살은 원래 굳은살이 아니었던 것처럼 내 마음도 다시 말랑말랑해져야 한다.


마트에 잠시 들러 좋아하는 초코우유를 산다. 초코우유를 마시며 그동안 쌓인 피곤함을 떨쳐버린다. 그리고 떡집으로 향한다. 집에 가서 후라이팬에 기름을 두르고 인절미를 구워 꿀과 설탕을 뿌려 먹을 것이다. 말랑말랑한 떡을 먹고 말랑말랑해진 기분으로 말랑말랑하게 하루를 보낼 것이다. 그리고 저녁에 아이가 잠이 들면 노트북을 켜고 지브리 영화음악을 들으며 책을 읽어야지. 앞으로 좀 더 몽글몽글 구름처럼 포근해질 나를 상상한다. 이렇게 행복은 멀리 있지 않음을 새삼 실감하는 오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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