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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날 따라와요~"

(싱가포르 할머니의 정)

by 서소시

'언제 또 이렇게 오른 거지?'

장 보러 갈 때마다 깜짝깜짝 놀라게 돠는 요즘이다. 어마어마하게 오른 물가에 들었다 놓았다 하기 일쑤니..


특히 한국산 식재료들..

한동안 집 앞 동네 마트에서도 반가운 한국 식재료들을 만날 수 있어 눈물겹게 반갑고 행복했다. 쉽게 구경하기 어려웠던 깻잎이며 이곳 사람들은 잘 안 먹는 콩나물, 종류도 다양한 쌈 채소며 한국산 채소와 과일들까지.. 굳이 한국 마트를 찾아 멀리까지 가지 않아도 되니 반가운 마음에 구입해 왔는데..

어느 순간 보이지 않거나 가격이 많이 올라 훨씬 비싸졌으니 더 난감해졌다.


구하지 못할 땐 싱가포르엔 없구나 하고 그냥 잊고 살았는데.. 아는 맛이 제일 무섭다고.. 얼마나 맛있는지 맛보고 나니 더 먹고 싶어진 한국 식재료들이 뻔히 보이는데.. 사고 싶은데 사던 가격보다도 더 비싸지니 속이 쓰렸다.

그런 사정까지 더해져 마트 가는 길이 즐겁지 않은 요즘이다.


급하게 살 게 있어 찾은 동네 마트..

하필 주말 가장 붐빌 시간이라 입구부터 꽉 찬 사람들을 보면서 다음에 와야 하나 잠시 고민하다가 딱 필요한 것만 사자하고 들어갔다. 얼른 사고 나올 마음으로 장바구니를 들었다. 쇼핑 카트 밀면서 여유롭게 장 볼 상황이 아닌 날이었다.


그런데 장보기란 게 어디 그런가..

막상 들어가니 입구부터 난코스였다. 먹음직스러워 보이는 한국산 딸기들이 예쁘게 진열되어 있었다.

( 다른 나라 딸기보다 맛있는 빨간색인 한국산 딸기 )

'이걸 담아 말아.. '

작은 한 팩이 SGD $13 ( 약 13,000원 정도).. 한국에선 두 팩을 살 수 있는 가격일 텐데.. 딸기라면 자다가도 일어날 만큼 좋아하니 얼마나 신나서 먹을 거야 싶어 담고..



한국산 콩나물 150g에 SGD $4.37 ( 약 4,300원).. 으악.. 비싸다!

( 이곳에서 파는 콩나물은 한국산보다 굵고 짧다. )

조물조물 무쳐주면 맛있다며 엄지를 치켜세워 줄, 가늘고 길쭉한 한국산 콩나물을 보니 반가워 또 담고.. 포장지의 손가락 하트도 괜히 반가운 한국산..

아이들이 맛있게 잘 먹을 텐데 싶어 자꾸 하나둘 늘어나는 물건들..

게다가 오늘따라 두 개 사면 조금 더 할인되는 품목이 보여 하나 살걸 두 개 담고..


그렇게 담다 보니 장바구니가 넘치고 있었다. 할 수 없이 한 손으로 넘치는 장바구니를 낑낑대며 들고 몇 가지 물품은 다른 손으로 부여잡고 그렇게 계산대로 행했다.


역시나 산대마다 줄이 길었다. 어느 줄에 서야 하나 휙 둘러봤는데 줄지어 늘어선 카트마다 물건들이 한가득씩 담겨 있었다. 그러니 긴 줄들이 줄어들 기미가 안 보였다. 너무 무거워서 대체 어느 줄에 서야 나 갈팡질팡하며 기웃거려 봐도 어느 줄 할거 없이 오래 걸릴 거 같았다. 손에 들고 있던 물건들이 떨어질 듯 아슬아슬했다.




그때였다.

누군가 내 옆을 스쳐 지나가다 다시 되돌아와서 귓가에 속삭였다.

'날 따라와요.~~"

고개를 들어보니 할머니 한 분이 따라오라고 했다. 왜 그러시나 의아해하는 내게 다급한 손짓까지 하셨다. 얼떨결에 할머니를 따라 줄을 바꿔 섰다. 할머니는 뒤돌아 나를 보고 환하게 웃어 주시면서..

"내가 조금 사서 금방 될 거니 내 뒤에 서요." 하셨다.


조금 전 내가 서 있던 줄에 서 있던 분은 할머니를 따라 옆으로 옮겨가는 나를 보며 잘하는 거라고 했다. 아까부터 서 있어도 자기 줄은 전혀 줄어들지 않는다고 하면서..


마음 써주신 할머니가 고마워서 감사하다고 인사를 했더니..

"손에 들고 있는 물건들 들고 있기 힘들 텐데 내 장바구니에 담아 줄까요?"

하고 물어주셨다.

넘치는 장바구니를 한 손으로 겨우 들고 다른 손에도 꾸역꾸역 여러 개의 물건을 부여잡고 있는 게 안타까워 보이셨던 걸까..


" 난 살게 별로 없어서.. 기다리는 동안 담아둬도 괜찮아요."

손에 들고 있는 물건이 떨어질까 걱정된다며 본인 장바구니를 내밀어 주셨다. 할머니 장바구니엔 작은 식빵 한 묶음과 고기가 들어 있었다. 내 손에 들린 물건들을 본인 장바구니에 담아둬도 좋다는 할머니의 따뜻한 마음에 나도 모르게 울컥했다.


무거워서 힘들기도 하고 필요한 것만 사야지 해놓고 이게 뭔가 스스로가 한심해서 더 지쳐가고 있었는데.. 할머니의 배려에 금방 행복해져서 환하게 웃으며 너무 감사하지만 괜찮다고 했다.

선한 웃음을 띠며 나를 향해 내밀어주신 장바구니가 너무 정겹고 따뜻하게 느껴졌다. 싱가포르 할머니에게서 우리네 '정'을 느끼는 순간이었다.


그렇게 한참을 줄 서 있으면서 잦은 비로 추워진 날씨 이야기도 나누고 내 장바구니에 담긴 한국산 식재료가 여기 현지 식재료와 어떻게 다른지 궁금해하셔서 비싸지만 고향의 아는 맛이 그립기도 하고 맛있기도 하다고 대답했다. 할머니도 한국산 과일들 너무 좋아한다고 하셨다.


조금 더 빠른 계산줄을 찾아가시면서 나까지 챙겨준 할머니의 친절이 얼마나 감사하던지..

타국에서 외국인으로 살다 보면 이런 작은 호의에도 마음이 따뜻해진다.

할머니 차례가 오자 진짜 금방 되니 조금만 더 들고 있으라며 웃으시던 할머니..

건강하시고 좋은 하루 보내시라고 인사를 건네며 할머니와 헤어졌다. 돌아보며 손까지 흔들어주고 가시는 모습에 괜히 눈물이 핑 돌았다.

할머니가 베풀어주신 따뜻한 호의가 고마워서 멀어져 가는 뒷모습을 오래오래 바라봤다. 건강하시길..








(Photo by Thomas Le.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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