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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hatGPT는 싱가포르에선 좋은 중학교를 못간다.

by 서소시

며칠 전부터 책상 앞에 앉아 머리를 부여잡고 끙끙거리던 막내가 드디어 끝냈다며 와서 한번 봐 달라고 했다. 뭐가 이렇게 여러 날 아이를 힘들게 했을까 싶어 들여다봤더니..

시였다!

어머나.. 갑자기 웬 시냐고 물었더니 영어 선생님이 내 준 숙제라는데 싱가포르 엘리트 학교 학생들을 대상으로 하는 "영시 짓기 대회"에 제출하는 거라고 했다.

무려 다섯 편의 시를 모두 다른 양식에 맞춰 써야 하는데 시를 써 본 적이 없어 너무 어려웠단다.


그러고 보니 싱가포르 초등학교 영어 교과에선 시에 대해 배우고 시를 짓는 과정이 없었다. 한국에선 국어 교과에서 동시를 배우고 시 쓰기를 한다고 했더니 아이들은 신기해했다. 이런 경험을 못하는 점은 참 많이 아쉽다. 중학교 가서 처음 시를 접하니..

이곳 교과 과정에서 작문은 주어진 상황에 따른 글을 써야 하는데 예를 들면 저학년 땐 주어진 그림 여러 장을 보고 그림의 상황들이 자연스럽게 이어지게 작문을 해야 하고, 고학년이 되면 '교통사고' 나 '화재' 같은 주어진 제시어에 맞게 창의적인 작문을 써야 한다.


그랬는데 갑자기 시라니..

게다가 주제도 현 사회 현상 중 관심 가는 한 가지 이슈를 골라 그 이슈에 대한 내용으로 다섯 개의 다른 제목의 시를 쓰라고 했단다. 아이구나.. 왜 여러 날 끙끙 앓았는지 이해가 되는 순간이었다.


중학교 남학생들에게 무려 다섯 편이나 시를 쓰라고 하니 반 친구들도 모두 힘들어했단다. 여러 날 붙잡고 있다고 쉽게 끝낼 수 있는 숙제가 아니니 너나 할 거 없이 다들 머리 아파했다는데..

하루는 한 친구가 좋은 생각이 있다며 이걸 이용했더니 순식간에 숙제 끝낼 수 있었다며 친구들 앞에서 자기 컴퓨터를 보여줬단다. 3초 만에 멋지게 시를 만들어 낸 건 바로 ChatGPT였단다. 눈앞에서 금방 시가 완성되는 걸 보고 너무 놀랐다는 막내..

그 친구도 말만 그랬지 대회 제출용이라 그 시를 숙제로 내진 못했단다.


참고로 몇 해 전부터 싱가포르 교육부는 모든 세컨더리 학생들에게 PLD (Personal Learning Device, 개인용 학습 전자기기)를 무료로 나눠주고 수업에 적극 활용하게 하고 있다. 과제 제출도 이것으로 한다. 학교마다 컴퓨터나 아이 패드 중 선택해서 같은 학교 학생에겐 통일된 모델을 제공한다. 앱을 다운로드하거나 소셜 미디어에 접속하지 못하게 막아두고 게임 역시 할 수 없게 관리한다. 아이들이 싱가포르 공립 중학교를 다니니 혹시 우리도 무료로 받으려나 했는데 역시나 외국인은 예외였다. 학비도 엄청 비싸게 내고 다니는데 나은 모델을 고를 수도 없고 학교에서 선택한 컴퓨터를 제값 다 주고 구매해야 했다.




" 엄마 너무 신기해요! 이건 진짜 한번 봐야 해요."

친구가 보여준 게 너무 신기해서 찾아봤다는 막내는 놀랍다며 내게도 보여주고 싶어 했다. 요사이 계속 뉴스에 나오는 그 유명한 ChatGPT! 이 무서운 인공 지능은 미국 변호사 시험을 통과하고 미국 의사면허 시험도 통과했다는데 얼마나 대단하길래 이렇게 어려운 시험들을 다 통과한다는 건지 의아하고 신기하기만 했다.


그 실력을 드디어 보게 되다니..

막내가 원하는 시 양식과 주제 등 간단한 정보를 넣자 시작과 동시에 줄줄줄 거침없이 써 나가더니 정말 몇 초 만에 뚝딱 시가 완성되었다. 눈앞에서 보니 상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신기하면서도 솔직히 소름 끼치게 무서웠다.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세상은 또래 친구들과의 무한 경쟁뿐만 아니라 이런 대단한 인공 지능과도 경쟁해야 하는 세상이라는 게..




며칠 뒤 학교에서 돌아온 막내는 한 선생님이 너희 스스로를 자랑스러워하라고 하셨단다. ChatGPT가 싱가포르 PSLE를 통과하지 못했다며.. 아이들은 인공지능 보다 우리가 더 스마트한 거냐며 좋아해야 하나 했다는데..


설마 하며 신문 기사를 찾아보니 이 대단한 인공지능이 전 세계 어려운 시험들을 통과하며 유명해지니 싱가포르에서 가장 악명 높은 시험 중 하나인, 12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이 통과해야 하는 초등학교 졸업 시험(PSLE) 풀어보게 했단다. 그중에서도 특별히 너무 어려워서 시험이 끝난 후 많은 학생들과 부모들을 충격에 빠지게 했던, 지난 2021년 PSLE수학 문제를 풀게 했다고 한다. 어마무시하게 어려웠던 우리 막내가 쳤던 바로 그해 시험이었다. 몇 가지 문제를 풀게 했는데..


결과는 ChatGPT 가 계속해서 틀렸다고 한다. 여러 단계를 거쳐야 하는 문제나 귀납적 추론을 필요로 하는 질문들에 대해 실수가 많았다고..

( 사진출처: by coconuts singapore)


하지만 이것은 ChatGPT 가 제시된 이미지나 차트를 이해할 수 없었기 때문에 대부분의 질문에 답할 수 없었고 그래서 정확히 공정한 시험이라 보긴 어렵다고 했다.

그렇긴 하지만, 매우 단순한 질문에서 저지른 일부 실수는 글을 쓰는 능력으로 찬사를 받는 이 인공지능이 완벽하지 않음을 보여준다고 했다.


기사에선 이 친구는 미국에서 변호사는 될 수 있을 만큼 영리하지만 싱가포르에서 좋은 중학교는 가기 어려울 수 있겠다고 했다.

인공지능도 실수하게 만드는, 복잡한 과정을 거쳐야 풀 수 있는 까다로운 문제를 공부하고 있는 이 나라 어린이들이 솔직히 안쓰러웠다.


얼마 뒤 다른 시도가 있었다는 기사를 봤는데 ChatGPT에게 2020년부터 2022년까지 3년간의 PSLE 문제를 과목별로 시험 보게 했다는 내용이었다. 결과는 수학은 평균 16/100을 달성했고, 과학은 평균 21/100을 달성했으며 영어 이해 문제는 간신히 통과했단다. 점수가 가히 충격적이었다. 전 세계적으로 유명한 인공지능이 이 정도 점수를 받다니..

( 사진출처: by The straits times )

그만큼 PSLE가 어려운 시험임을 인증한 셈인데.. 기사를 읽으며 그 어려운 시험을 치른 아이들이 대견하고 짠해서 조용히 다가가 힘껏 안아줬다. 이렇게 어려운 공부를 하고 있다는 게 안쓰러운 마음이 더 앞서서..




얼마 뒤 둘째 학교에서 온 메일에도 이 ChatGPT에 대한 염려와 당부가 있었다. 이 놀라운 인공 지능은 데이터를 처리하고, 코드를 생성하고, 문제 해결을 지원하는 놀라운 능력을 가지고 있어서 텍스트를 생성, 요약, 교정 또는 번역할 수 있단다. 의견을 소화하고 반대 의견을 제시하며 에세이를 작성하고 채점하며 시험 기준과 복잡한 공식에 응답할 수 있다는데..


이 유용한 친구를 수업에 적극 활용해 수업의 질을 높일 생각이나 학생들이 과제나 시험에 활용하지 않도록 가정에서 관심을 가져달라는 내용이었다. 완벽하진 않으니 무조건적인 신뢰도 조심해야 한다고.. 과연 학교에서 사회에서 인공지능의 힘을 빌린 결과물을 공정하게 걸러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는데 학교에서도 신경 쓰였나 보다.


들고 다니는 전화기는 상상도 해 본 적이 없던 아날로그 시대를 지나 하루가 다르게 변화 발전하는 인공지능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지금.. 변화하는 많은 것이 상상 이상이라 우리 아이들이 살아갈 미래에는 어떤 일들이 일어날지 상상조차 어렵다. 인간을 위해 만들어진 인공지능일 테니 보다 나은 삶을 위한 방향이길 바라보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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