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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앞엔 빨간 옷을 입은 그들이 서 있었다!

by 서소시

"띵똥 ~"

'응? 누구지? 우리 집 벨 맞나?'

이 콘도로 이사 온 지 얼마 되지 않았던 설날 점심쯤 울린 벨이었다.

막 떡국을 끓여 먹고 설거지를 하려던 참이었다.


타국에서 살고 있지만 설날 아침은 바빴다. 일어나자마자 소매며 품이며 작아져서 보기에 조금 민망해진 한복을 꺼내 입히고 멀리 계신 할머니 할아버지께 영상전화를 걸어 인사를 드려야 하니.. 시차를 고려해 전화드려야 하니 아침부터 더 서둘러야 했다.

영상 전화를 통해 세배를 하고 덕담을 나누며 멀리 있어 더 그립고 아쉬운 빈자리를 그렇게 나눴다.

함께 나누지 못하는 맛난 음식들 앞에서 아이들 생각이 더 난다며 어머닌 연신 눈물을 훔치셨다.

멀리 타국에서 살다 보니..

이런 명절 때면 가족들이 더 보고 싶고 함께하지 못한 죄송함에 마음이 무거워진다. 이렇게 영상으로 실시간 만날 수 있는 세상이라 얼마나 다행인가 싶으면서도 보면 더 커지는 그리움으로 명절날이면 늘 그렇게 아쉽다.

그렇게 그리운 가족들에게 차례로 영상전화를 통해 인사를 나누고 늦은 아침을 먹고 난 직후였다.




"음.. 우리 집에 올 사람 없는데.. "

누군가 잘못 누른 벨인가 싶었는데 한번 더 울리는 벨소리..

남편이 의아해하며 문을 열었다.


" 꽁시파차이 ~"

문 앞에서 들리는 소리에 누군가 하고 같이 내다봤다가 깜짝 놀라 웃고 말았다.

이곳으로 이사 오고 엘리베이터에서 몇 번 인사를 나눴던 대각선 앞집 식구들이었다.

깜짝 놀란 이유는 그 집 식구들이 모두 빨간색 옷을 입고 서서 두 손 모아 외치고 있어서였다.

마스크까지 빨간색으로 맞춰 쓰고서..

게다가 그 댁의 중고등학생 아들, 딸까지 모두 함께라 더 놀라웠다. 그렇게 새해 인사를 전하고 우리 아이들을 위한 홍빠오와 작은 먹거리를 나눠주고 가는 게 아닌가.. 감사하게도..


와 ~~ 온 가족이 그것도 사춘기 시기의 자녀들까지 다 와서.. 그것도 온통 빨간색으로 맞춰 입고 찾아와 주다니..

신기한 경험에 고마움이 더해져 자꾸 웃음이 났다.


이곳 사람들은 새해가 되면 "꽁시파차이~" 하고 인사를 나누는데 "꽁시"는 축하한다는 뜻이고 "파차이"는 부자가 되라는 뜻이라고 한다.

"부자 되세요 ~~ "란 의미의 새해인사!

(좋은 의미니 여러분도 모두 "꽁시파차이 ~~ ")


싱가포르에서 몇 번의 설을 경험하면서도 온통 빨간색 물결인 설 풍경이 매번 생소했었다. 복을 부르고 액운을 막아준다는 빨간색이 넘쳐나서 거리마다 붉은색 등이 걸리고 옷 가게며 속옷 가게며 온통 빨간색 옷들이 앞쪽으로 진열됐다. 집안팎을 꾸미는 장식들도 빨강빨강했다.


그중 재밌어서 따라 하고 있는 풍습은 집안을 꾸미는 장식 중 글자 '복'자를 거꾸로 붙여놓는 것이다. 거꾸로 붙여 놓는 이유는 복이 떨어지란 의미도 있고 '거꾸로'라는 의미의 한자가 '온다'는 뜻의 한자와 발음이 같아서, 복이 온다는 의미가 된다고 한다. 그래서 우리도 대문 앞에 '복'자를 거꾸로 붙여 놓았다. 복이 많이 많이 왔으면 하고 바라보면서..

(대문 앞에 붙인 '복'자 ㅡ photo by 서소시)


이웃집에서 전해준 선물엔 아이들을 위한 홍빠오가 들어 있었다. 우리네 세뱃돈 같은 풍습인데 빨간 봉투에 돈을 담아 전한다. 홍빠오에 담는 돈은 숫자 4가 들어가면 안 되고 그들이 선호하는 숫자 8로 끝나면 좋다고 한다.

그런데 보통은 $10 단위로 넣는다.

홍빠오와 함께 행운을 상징하는 만다린 오렌지와 역시 행운과 번영의 의미를 가지는 파인애플 타르트가 들어 있었다.

(이웃이 전해주고 간 설 선물. ㅡ photo by 서소시)


설이면 대부분 오렌지 한쌍을 주는데 오렌지를 말하는 '감'이 광둥어로 '금'과 발음이 비슷해 황금빛 오렌지를 선물하는 것은 금을 선물하는 효과와 같다고 보면 된단다.

오렌지만큼 설을 대표하는 과일로 파인애플이 있는데 이 역시 발음과 연관해서 행운을 상징한다고 한다. 그래서 파인애플이 들어간 타르트도 많이 선물한다고..


찾아오는 친척들로 늦은 시간까지 시끌벅적한 이웃들 틈에서 유난히 조용한 우리 집이 더 도드라져서 괜히 더 외로운 설에 이렇게 애써 찾아와 문 두드리고 따뜻한 마음을 나눠주니 너무 감동이고 고마웠다. 인심 좋은 이웃 덕분에 유쾌하게 경험한 그들의 문화..


음력설이 되면 그렇게 서로 작은 선물을 전하며 복을 바라는 음식들이 있는 거 같았다. 마트 진열대에도 설 시즌이면 줄지어 진열되고 막내 친구네도, 싱가포르 지인도 이런 종류의 선물을 주셨다. 서로에게 복을 바라며 나누고 선물하는 싱가포르인들의 설 선물을 조금 더 소개해보면..

이곳에 여행 오시면 다들 맛보고 가시는 육포류, 간식처럼 두고 먹는 과자류인 바삭바삭한 러브레터(둥글게 만 계란 비스킷), 코코넛을 기반으로 한 쿠에 방키트(코코넛 쿠키), 견과류나 말린 야채 과자, 새우 쿠키 등이 있다.

(지인들의 선물 ㅡ 코코넛 쿠키, 새우 쿠키, 육포, 해바라기 씨 / 파인애플 타르트와 육포 ㅡ photo by 서소시)
(설맞이 동네 마트 풍경들.. ㅡ photo by 서소시)


다음 날 시끄러운 소리에 나가보니 콘도에서 여는 설맞이 잔치가 벌어졌다. 시끄러운 북소리와 함께 사자춤을 추는데 모든 일들이 평안하고 순조롭게 잘 풀리기를 기원하는 의미라고 한다.

홍빠오 뽑기 이벤트도 있었는데 잘 뽑으면 고가의 가전제품도 있고 호텔 숙박권도 있었다. 설레어하며 뽑아 든 막내.. 아이가 뽑은 건 마트에서 사용 가능한 20불 바우처와 만다린 오렌지 한쌍이었다. 그게 어딘가..

( 콘도 홍빠오 뽑기 당첨 ㅡ photo by 서소시)


타국에서 조금은 생소한 그들의 설 풍경을 경험하며 서로의 평안과 복을 바라는 마음을 전하며 주고받는 작은 선물에 감동받고 신기해하며 그렇게 또 이 나라를 알아간다.













《 Daum 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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