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는 얼마 전에 싱가포르 군대를 다녀왔다는 이십 대 초반의 우리 수영 선생님이다. 싱가포르인들은 만 18세에, 고등학교 과정을 졸업하면 바로 군대를 간다. 대학에 합격해도 군대부터 다녀와야 한단다.
코로나 팬데믹 시기가 길어지면서 집안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졌고 콘도 안에 수영장이 있어도 잘 가지 못했었다. 함께 운동하며 건강을 챙기자 싶어 얼마 전부터 온 가족이 함께 수영 수업을 받기 시작했다. 그렇게 만난 수영 선생님 E는 자기가 가르치는 이들 중 한국인이 많다며 알고 있는 한국어를 열심히 사용했다.
"아빠 ~~, 엄마 ~~ "
남편과 나를 그렇게 불렀고.. 아이들에게도
" 하나, 둘, 셋 ~~ " 하며 신호를 했다.
12월, 1월의 싱가포르는 잦은 비로 물 온도가 낮아 추웠고 수업 후 물에서 나오면 덜덜 떨렸다. 따뜻한 마일로를 준비해 오면 아이들에게 좋을 거다 조언을 해 준 그..
'아 ~ 그래야겠구나!'
다음 수업에 아이들이 좋아하는 유자차를 준비해 갔더니 따뜻한 유자차를 마셔 보고는 어디서 사는 거냐며 궁금해했다. 어떤 제품이고 어디서 살 수 있는지 알려줬더니 당장 가서 살 거라고 했다. 여기서 파는지 몰랐다며..
어느 날엔 따뜻한 한국 믹스 커피를 건냈더니 가장 좋아하는 커피맛이 한국 믹스 커피라며 너무 좋아했다.
E는 한국 음식을 정말 좋아한다며 남편에겐 싱가포르에 있는 한국 식당을 추천해 달라고 했고, 다음 주 수업에 와서 친구와 바로 다녀왔다며 맛있게 먹었다고 좋아하기도 했다. 다만 너무 비쌌다며 그 점은 아쉬워했다.
한 번은 김치만 넣은 김치전을 맛보라고 권한 적이 있는데 김치는 한국 음식 중 최고로 좋아한다며 무척 행복해했다. 그는 김치 러버였던 거다. 원래 한국 김치전은 해물도 넣고 훨씬 더 맛있는 거라고 했더니.. 다음에 한국 가면 김치전만 사 먹겠다며 좋아했다.
( 김치만 들어간 김치전. photo by 서소시 )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얼마 전 E가 한국의 봄을 보러 한국 여행을 간다며 얼마나 좋아하던지..
한국에 가면 뭘 먹어야 하냐며 소개해 달라고 해서 몇 가지를 추천해 줬는데 사실 어디를 들어가도 다 맛있을 거라고 말해줬다. 이곳의 한국식당에서 먹는 것과 어떻게 다른지 너무 궁금해하는 모습에서 처음 가는 한국 여행에 대한 기대와 설렘을 같이 느낄 수 있었다.
한국 가면 벚꽃도 많이 보고 좋은 추억 많이 만들어 오라고 응원했다.
한국 가서 혹시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해도 되냐고 묻기에 그래도 좋다고 했다.
그렇게 한국 여행을 떠난 그에게서 어느 날 연락이 왔다. 혹시 통역을 좀 해 줄 수 있냐는 부탁이었다. 무슨 상황인지 모르지만 돕겠다고 했는데 마침 영어 잘하는 분이 있어 잘 해결 됐다고 했다.
그렇게 일주일간 한국 여행을 다녀온 E를 다시 만났을 때, 그가 들려준 이야기는 이랬다.
"진짜 당신에게 들은 대로 어떤 식당을 가도 다 맛있더라고요. 무엇보다 김치가 너무 맛있어서 올 때 김치만 정말 많이 사 왔어요. 마늘이 많이 들어간 김치 맛이 최고였어요. "
김치는 비행기 안에서 부풀어서 터지기도 하기에 들고 오기 힘든데 어떻게 잘 들고 왔냐고 물었더니.. 그래서 한국 가자마자 큰 대형마트에 가서 김치통부터 샀단다. 올 때 김치를 가득 담아 올 생각으로..
'한국 여행 가서 김치통부터 샀다고?'
김치를 향한 그의 진심이 느껴졌다.
며칠 뒤 싱가포르로 오기 직전에 김치를 샀고 미리 사둔 김치통에 담으려고 했더니 한 번도 사용 안 한 김치통에 문제가 있었단다. 잠금 부분이 헐거워서 잘 안 닫혔다고.. 그걸 교환해 달라고 대형마트를 다시 찾아갔는데 며칠 전에 산거라 사용유무를 확인할 수 없으니 환불이 안된다고 해서 우리에게 연락한 거라고 했다.
그 과정에서 마침 영어 잘하는 분이 있어 도움을 주셨고 김치통을 사용하지 않았다고 여러 번 설명하고서야 교환받을 수 있었다고 했다. 그래서 무사히 김치를 한가득 담아 올 수 있어 너무 기쁘다고 했다.
다음에도 한국 음식 먹으러 한국 가고 싶다는 E.. 사 온 김치를 선물로 나눠 주겠다더니..
식구들이 너무 맛있어서 금방 다 먹었다며 큰 김치통에 가득 담아 왔는데 벌써 없다며 울상이었다. 두 통을 사 왔어야 했다며 미안해하는 E..
참.. 싱가포르 친구와 김치 이야기만 하게 될 줄이야..
이렇게 한국 음식을 좋아해 주니 반갑고 고맙다 싶은 순간..
E가 내뱉은 말에 푸하하 ~ 웃음 폭탄이 터졌다.
"아 ~ 너무 더워요.. 싱가포르 너무 더워요 ~~ "
"저기요.. E.. 당신 싱가포르 인이잖아요.. 여긴 원래 이 날씨구요.. "
그는 진심 한국의 시원한 날씨가 그립다고 했다. 싱가포르에 내리는 순간 다시 비행기 타고 돌아가고 싶었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