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덟 살 무렵 조그마한 아이가 알고 있는 것 중 제일 좋아 보였던 게.. 제일 어려워 보였던 게.. 비행기 타는 거였나 보다.
아들 바라시는 할머니 서운하시게 둘째 딸로 태어나.. 숙모와 다르게 엄마가 시집살이 심하게 겪으시는 게 내가 또 딸이기 때문이란 걸 어렴풋이 알게 된 즈음이었나 보다.
뭔가 자세히는 알지 못했지만.. 그냥 누가 말해주지 않아도 할머니의 눈빛이 달랐던 거 같다. 나를 대할 때와 한 살 위 사촌 오빠를 대하는 행동이 눈에 보이게 달랐었기에..
그 시절 우린 할머니, 삼촌 가족과 함께 옆집에 나란히 살았었는데.. 할머닌 아들만 둘인 삼촌 집에서 같이 사셨고 우린 그 옆집에 살던 때였다. 매일 만나다시피 하는데.. 골목길에서도 삼촌 집에서도 할머닌 내 이름 한번 다정하게 불러주신 적이 없었던 거 같다. 늘.. "가쓰나들 ~"로 부르셨다. 언니와 세트로..
참 신기하게 생겼다 싶었던.. 당시엔 너무 귀했던 바나나를 할아버지 제사상에서 보고 너무 먹고 싶어서 제사가 끝나기만 손꼽아 기다렸는데.. 할머닌 손주들만 부르셨다. 그리고 그들에게만 한 송이씩 나눠 주셨다. 어렸던 남동생을 잡아끌다시피 할머니 눈을 피해 다른 방으로 데려가선 한입씩 나눠 먹자고 어르고 달래고.. 그렇게 겨우 한입 얻어먹었었다. 먹고 싶은 마음이 앞서 크게 베어 물었다가 남동생을 결국 울리고 말았나 보다.
지금도 그래서 바나나를 안 좋아한다. 달콤하고 맛있어야 할 바나나에서 쌉싸래하고 아린 맛이 나는 듯해서..
그런데 그 시절 날 서럽게 만들었던 게 어디 바나나뿐이었을까.. 오징어 다리가.. 아니 그보다 오징어 몸통이.. 사촌 오빠 밥에만 올려주시던 고기 산적이.. 뭐 이러다간 못 먹을 음식 천지기에 애꿎은 바나나만 기억하기로 했다.
우린 왜 안 주냐고 따져 물을 생각도 못해 봤었다. 너무 당연시되던 그 분위기.. 귀한 것일수록 더 손주에게만 쥐어주시던 할머니.. 그리고 그걸 지켜보던 엄마의 슬픈 눈빛..
제일 억울하고 슬펐던 건..
세배하고 나서 세뱃돈도 남자아이들에게만 주셨단 거였다. 딸이랑 세뱃돈이 대체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어찌나 심술이 나던지 죄 없는 남동생만 구박하며 심술부렸었다.
그렇게 서러울 때마다..
괜히 더 큰소리로 외쳤다.
"엄마~~ 꼭 비행기 태워줄 거야! 내가!!!"
딸 낳아 오히려 더 좋다 소리 듣게 해 주겠노라 그렇게 다짐을 했었다.
말이 씨가 된다더니..
이 말이 이렇게 대단한 힘을 가진 <마법의 말> 일 줄 몰랐다. 알았다면 더 큰 소원을 떠들걸 그랬나 보다.. 정말 말하는 대로 이루어졌다. 원래 뜻과는 조금 다른 모습이지만..
둘째 딸네 집에 가려면 엄만 정말 비행기를 타셔야 하니..
제주 살던 6년 동안, 그리고 지금 싱가포르 8년 동안.. 자주 오시진 못했지만 그래도 비행기 태워주겠노라 큰소리치던 딸 만나려면 비행기 타셔야 하니.. 그 말대로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