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녀, 엄마가 아니었다!

by 서소시

막내가 많이 아팠다.

지난해 코로나에 걸려 고생한 이후로 뭔가 면역 체계에 이상이 생긴 걸까?

1월 초부터 고열에 시달리며 많이 아파서 독감이나 코로나에 다시 걸린 건가 했는데.. 알 수 없는 바이러스에 감염됐다고 했다. 어떤 바이러스인지 모르니 줄 수 있는 건 그저 해열제뿐이라는데 약이 없으니 나을 때까지 아이 혼자 오롯이 아파야 했다.


그렇게 아프고 두어 달 지났을까..

"엄마.. 귀 뒤쪽이 좀 부어오른 거 같은데 만지면 아파요."

학교에서 돌아온 아이가 보여준 부위는 작은 동그라미 모양으로 빨갛게 살짝 부어있었다. 많이 아프진 않다니 좀 지켜보자 했다.


대수롭지 않게 여겼는데.. 며칠뒤부터 고열이 나기 시작했고 많이 피곤해하고 힘들어했다. 부어오른 부위는 점점 더 넓어지고 단단하게 커져서 빨갛던 부위는 열까지 느껴졌다. 게다가 다른 부위에도 새로운 게 생겨나기 시작했다. 한번 오른 열은 해열제를 먹어도 잘 내리지 않았고 계속 고열인 상태였다. 잘 먹지도 못했다.


의사 선생님은 항생제를 처방해 주고 지켜보자 하시더니 증상이 심해지자 초음파도 찍고 피검사도 해보자 하셨다.

최악의 경우엔 혈액 암일 수도 있다고.. 심장이 녹아내리는 거 같았다. 검사 결과가 나올 때까지 제발 아니길 바라며 얼마나 가슴 졸였는지.. 아이 앞에선 괜찮은 척했지만 잠든 아이 손을 붙잡고 잠 못 드는 밤이 여러 날이었다.


다행히 결과는 임파선이 부은 거고 피검사 결과도 괜찮다고 했다. 하지만 이번에 걸린 바이러스 역시 줄 수 있는 약이 없다며 해열제만 처방해 줬다. 약이 없다는 건지..

또다시 아이 혼자 오롯이 아파야 했다..

여러 날 아팠으니 곧 낫겠지 했는데.. 웬일인지 아이는 계속 피곤해했고 이상한 여러 증상들로 힘들어했다. 바이러스 감염은 다 나았다는데..


계속되는 증상들로 잠도 잘 못 자고 아파해서 한밤중에 급히 어린이병원 응급실로 향했다.

아픈 환자가 왜 이리도 많은 건지..

밤을 꼬박 새우고 네 시간 넘게 기다려 겨우 만난 의사 선생님은 혹시 모르니 입원을 해서 좀 더 자세한 검사를 해보자고 했다. 바이러스 감염 후 증후군 같은데 다른 질병일 가능성도 있다며..

입원까지 해야 하다니..

그렇게 입원한 병실에서 그녀를 만났다.




입원실로 올라가니 우리 옆자리 아이는 콜록콜록 거친 기침을 끊임없이 계속하고 있었다. 네 살 정도 됐을까..

'어머.. 저렇게 기침이 심하면 목도 가슴도 엄청 아플 텐데..'


잔뜩 긴장한 채 밤새 못 자고 응급실에서부터 여러 번 막내의 증상을 설명하느라 지칠 대로 지쳐있던 와중에도 옆자리 아이가 내뱉는 거친 기침이 너무 아플 거 같아 자꾸만 눈길이 갔다. 아이를 돌보고 있던 그녀와도 그렇게 가벼운 눈인사를 나눴다. 바쁘게 오가는 의료진과의 대화를 얼핏 들어보니 폐렴인 듯했다.


토할 듯한 거친 기침을 쉼 없이 내뱉는 아이 옆에서 당황하지 않고 차분히 간호하고 있는 그녀를 보면서 내심 엄마는 저래야 하는데 싶었다. 예전에 첫째가 폐렴으로 입원했던 때가 스쳐 지나갔다. 그때나 지금이나 아이가 아프면 더 놀라고 당황해서 허둥대는 내 모습과 비교가 되었다. 수시로 찾아오는 의료진과 아이의 증상을 이야기하며 아이 등을 쓸어주느라 앉지도 못하고 있는 그녀가 안쓰러웠다.


"엄마, 영어 할 수 있나요?"

영어는 매번 너무 어렵다. 특히 병원에선 더욱더.. 막내가 언제부터 아팠는지, 어떤 증상이 있었는지 찾아오는 의료진마다 여러 번 설명한 뒤에야 아침 식사가 나왔다. 겨우 잠든 막내를 깨워 먹여야 하나 안타까워하던 그때, 옆자리 아이에게 방문객들이 찾아왔다. 아침 일찍부터 병문안을 오는 건가 좀 의아했다. 어린이 병동이라 보호자 외에 면회가 자유롭지 않았기에..


그 아이의 거친 기침 소리만 가득하던 병실 안이 갑자기 더 큰소리로 채워지기 시작했다. 의료진에게 방금 온 여성분이 화를 내고 있었다. 중국어로 굉장히 화가 나서 크게 소리치고 있었는데, 이럴 땐 중국어를 모르는 게 다행인 건지..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싶을 만큼 밤새 못 자서 힘들고 지쳐있던 상황이라 이 소란이 불편했고 얼른 끝나길 바랐다.


" 아이고.. "

소란에 결국 겨우 잠들었던 막내가 힘겨워하며 깼다.

내용을 모르니 그저 소음처럼 들리는 나와 달리 막내는 중국어를 배우니 아픈 와중에도 다 알아듣기에 잘 수가 없었나 보다.

" 구.. 못 자서 어쩌니.. 그나저나 대체 무슨 일이래? "


막내가 들려준 이야기는 아이가 밤새 고열이었는데 간호사 한분이 밤에 열 체크를 잘못해서 대처가 늦어졌고 그래서 아이는 계속 고열로 고생한 모양이었다. 사과하러 온 의료진에게 이 여성분이 화를 내며 실수한 당사자가 직접 와서 사과하라고 소리치고 있단다. 어머나..


" 어.. 그런데 방금 온 저분이 엄마래요~"

" 뭐라고? 밤새 옆에서 지키던 분이 아니고? 방금 온 분이 엄마라고? "


그랬다.

나중에 보니 밤새 옆에서 못 자고 아이를 간호하던 그녀는 그 댁의 헬퍼(메이드)였던 거다.

아이가 저렇게 많이 아픈데 엄마가 아니라 헬퍼가 지키고 있었다고? 아이가 밤새 엄마 보고 싶다고 울고 보채거나, 엄마가 왔다고 더 좋아하며 반가워하지 않았는데..


헬퍼가 평소 아이를 돌보며 같이 사니 이미 한가족 같은 존재라 이런 상황이 가능한 걸까.. 독박육아로 세 아이를 홀로 키운 내 입장에선 그저 신기한 광경이었다.

게다가 그 엄마는 얼마 안 있다 돌아갔고 아픈 아이는 떠나는 엄마에게 가지 말라고 울거나 보채지도 않았다. 이럴 수가..

엄마가 잠시 안 보여도 울기부터 했던 엄마 껌딱지 울보 삼 남매를 키웠기에.. 더 낯설었나 보다.


'진짜 엄마가 아니었다고? '

주위에서 이상한 헬퍼(메이드)를 만나 고생한 이야기도 많이 들었고 우리 콘도에서도 아이를 제대로 돌보지 않는 헬퍼들을 종종 봤다.


아이가 쓰레기통을 붙잡고 놀고 있어도, 바닥에 드러누워도 옆에 서서 핸드폰만 들여다보는 헬퍼도 있었고, 유모차에 탄 채 떠나갈 듯 우는 아기를 보면서도 오히려 음악을 더 크게 틀고 그냥 유모차만 미는 헬퍼도 봤었다.

엘리베이터 문이 열릴 때마다 뛰어 나가려는 아이를, 그 집 헬퍼가 아이 옷을 확 잡아당겨서 넘어뜨린 경우도 봤다.

그럴 때면 아이 엄마에게 찾아가 알려줘야 하나 고민될 정도로 아이들이 불쌍해 보였다.


그런 이유들로 쌓여온 헬퍼의 육아에 대한 나의 부정적인 생각들을 한방에 날려버린 그녀..

다음날도 밤새 못 자고 아픈 아이 옆을 지키는 그녀를 보면서 좋은 분을 만나면 이렇게 믿고 맡길 수도 있겠구나 싶었다.


여러 가지 검사 후, 정말 다행스럽게 막내는 괜찮다는 결과를 받았고 며칠 후 퇴원을 했다. 회복하기까지 시간이 좀 더 필요하다고..



"아이가 밤새 기침하고 열나고 많이 아픈데 엄마가 집에 가서 편히 잠이 올까? "

나도 모르게 나온 혼잣말을 가만히 들어주던 둘째..

"편하게 자진 않았겠죠.. 그냥 잤겠죠.. 그래도 엄만데.. "

"그랬겠지?"


그녀, 엄마가 아니라 헬퍼였다니.. 경험해보지 못해 더 신기하기만 한 헬퍼 문화다.






( 사진 출처; photo by Jon Tyson on Unsplash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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