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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Jan 31. 2024

엄마는 치어리더가 될 테야!

(잘못된 응원법이었을까?)

어느 날 갑자기 낯선 싱가포르오게 되면서 모든 게 처음부터 다시 시작이라 많이 당황스러워하던 아이들에게 늘 이렇게 응원했었다.


잘하고 있다고.. 조금만 더 힘내서 나아가 보자고.. 멈춰 서지 않고 나아가는 작은 발걸음들이 모이면 분명 어딘가에 닿아 있을 거라고..
그곳이 어디든 결과에 크게 연연하지 말고 조금씩이라도 나아가야 한다고.. 가끔은 잘못 든 길이 새로운 지도를 만들기도 하듯이 실패하고 헤매더라도 가봐야 아는 거라고..


어려웠던 순간마다.. 길이 안 보여 어디로 가야 하나 막막했던 순간마다.. 이 응원은 든든한 길잡이가 되어 주었다. 포기하지 않고 다시 도전할 수 있게..


그런데.. 굳게 믿었던 나의 응원법이 과연 맞는 걸까 의구심이 드는 일이 있었다.

 
몇 달 전 막내 중학교에서 열린 커리큘럼 설명회 자리였다. 아이들이 앞으로 준비해야 할 시험제도에 맞춰 어떤 과정으로 공부하게 될지.. 어떤 선택 과목을 몇 개 골라야 하는지 등을 소개해 주는 자리였다. 이후 학부모들이 궁금한 점을 묻고 답하는 시간이 이어졌는데 이곳 부모님들의 교육에 대한 관심이 어느 정도 인지 새삼 놀라울 정도로 질문이 끝나지 않았다.


 설명회에서 참 신선하다 싶었던 부분은 입시 제도에 대한 소개만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는 점이다. 들을수록 어렵다 싶은 과정 설명이 이어지던 중에 갑자기 학교 카운슬러 선생님이 마이크를 잡으셨다. 어려운 과정을 공부하는 동안 아이들의 멘탈 관리를 돕기 위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돕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런 말씀 중에 보여주신 사진 한 장.. 
<번아웃>이란 글자 아래로 마라톤에 참여한 한 아이가 달리다 지쳐 허리도 못 펴고 숨을 고르고 있는 뒷모습이었다. 입시 역시 하나의 기나긴 마라톤 같은 과정이라 보여준 걸까?  

사진 속 아이는 뒷모습만 보였지만.. 눈물 콧물이 뒤섞여 눈도 제대로 못 뜨고 있을 그 힘겨운 얼굴이 그려져서 마음이 아려왔다.

다음 순간 선생님의 질문이 이어졌다.  
"지쳐 있는 이 아이가 당신의 자녀라면 부모로서 당신은 어떻게 하시겠습니까? "

결승점이 바로 앞이니 멈추면 안 된다고 참고 시 뛰어가라고 하시겠어요?

쉬는 동안 다른 아이들이 다 앞질러 갔다고 타박할 건가요?

얼른 물 마시고 정신 차려야  때라 큰소리로 야단치실 건가요?

아이가 완주할 수 있게 함께 달리시겠어요?  


카운슬러 선생님의 이야기는 계속 됐다.
이 사진 속 부모는 이랬단다. 많이 지쳤으니 힘내서 달릴 수 있게 초콜릿 바를 던져주며 얼른 먹고 다시 달려가라고..
초콜릿 바를 받아 든 아이는 그걸 먹고 힘내서 다시 달렸을까?


사진 속 아이는.. 그 초콜릿 바를 멀리멀리 던져 버렸다고 했다. 아이에겐 초콜릿 바를 먹을 힘도 남아있지 않았다고.  

이 아이는 정말 많이 지쳐있었던 거라고.. 먹고 힘낼 초콜릿 가 필요했던 게 아니었다고..
이렇게 많이 지쳐있다면 어떤 도움을 줄 수 있을지 함께 고민하고 좋은 방법을 찾아야 하는 게 부모인 우리가 할 일이라고.. 학교에서도 선생님도 돕겠다며 도움이 필요하면 연락 달라고 했다. 이 얼마나 감사한 말씀인가..


이야기를 들으면서 사진 속 아이의 뒷모습에서 눈을 떼지 못했다.
이 나라 아이들은 초등학교 졸업 시험(PSLE)부터 더 좋은 성적을 내야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고.. 그래야 더 나은 미래를 보장받을 수 있다 믿기에 앞만 보고 숨 가쁘게 달려와야 했다. 

그러는 동안 지쳐서 저렇게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는 건 아닌지.. 조금 더 달릴 힘이 남아 있는 건지.. 더 이상은 달리고 싶지 않은지..

저렇게 멈춰서 버리기 전에 살펴보고 헤아리며 보듬어  하는 거구나 싶었다..


무조건 조금씩이라도 나아가보자 했던 나의 응원법이, 응원이 될 수 없는 순간도 있다는 걸 깨닫고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아무리 나아가려 애써 봐도 맘처럼 되지 않는 날도 있고.. 어떤 순간에는 도저히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만큼 지쳐서 포기하고 싶은 순간을 만나기도 했을 텐데..
그럴 때 잠시 쉬어가며 숨 고르기 할 순간도 분명 필요할 텐데..

 
매 순간 나아가라고.. 결승점이 바로 앞이니 조금만 더 가면 된다고 응원하는 게 능사가 아니구나 싶었다.

멈춰 선 그 순간.. 아니 저렇게 멈춰 서기 전에.. 어떤 어려움이 있는지 잘 헤아려보고 무엇이 최선의 도움일지 함께 의논하고 고민해야 했었나 보다.

사진 속 아이가 환하게 웃으려면 어떻게 도와줘야 할까..
깊어지는 고민 속에 당장 해답을 찾을 순 없지만.. 어떤 게 제대로 된 응원인가 고민하게 된 계기가 되었다.



 

우리 삶에도 제대로 된 치어리딩이 필요하다!
경기의 승리를 위해.. 지쳐가는 선수들을 위해 힘과 용기가 다시 솟을 수 있도록.. 진심을 다해 외치는 소리들..
지금 이 순간을 위해 준비하며 노력해 온 무수한 시간들에 대한 보상으로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도록.. 아쉬움이 남지 않도록 최선을 다할 수 있게.. 슈퍼 파워가 솟으라고 외치는 그 응원들..

혼자가 아니라 내 편이 되어 나를 지켜봐 주고 내게 힘이 되어주고픈 그 고마운 마음들로 인해 더 나아가지 못할 상황에서도 마지막 힘을 낼 수 있게 도와주는 그 응원들..
어쩌면 우리 삶에도 매일매일 매 순간.. 그런 응원들이 필요할지도..



그러기에 더더욱 아이들의 치어리더가 되어 제대로 된 응원을 해주고 싶..
승리를 위해, 더 나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 하는 응원 아니라..

부족하더라도 꼭 전하고 싶은 마음은..
노력해 줘서.. 애써줘서 고맙다고.. 잘해오고 있다고.. 언제나 좋은 결과만 얻을 수 없고 실망할 수도 있지만, 노력해 온 모습을 알기에 노력의 값짐을 더 높게 사야 한다고..  힘겨울 땐 도움도 요청하고 충분히 쉬어가며 숨 고르기를 해도 된다고.. 쉼을 통해 충전할 시간도 가져야 한다고.. 그래도 괜찮다고.. 

그 옆에서 손 꼭 잡아주고 따뜻하게 안아주며 함께 하겠다고..
그렇게 마음 다해 응원하고 싶다..


" 엄마가 기꺼이 치어리더가 되어 열심히 응원해 주고 언제나 같은 편 해줄게.. 사랑한다.."





(사진 출처 ; photo by Joshua Earle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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