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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Jun 03. 2022

힘들다고 포기했다면.. 지금이 있을까요?

(싱가포르 초등학교 중국어)

"엄마..  이번 Chinese (중국어) 시험 100점이래요." 

"뭐.. 뭐라고? 중국어가?"

이게 대체 무슨 일인가 싶었다. 들으면서도 내 귀를 의심했다. 다른 과목도 아니고 중국어라고?

아이도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세상에나..


3학년 때 AEIS라는 어려운 시험을 치고 합격해서 싱가포르 공립 초등학교로 옮겨간 막내..

달라진 학교 생활에 하나씩 적응해 가느라 나름 열심이더니..

4학년 중간고사 Paper 2 시험에서 Chinese (중국어) 100점 받아온 거였다.

진심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의 노력을 봐 왔지만 중국어가 백점이라니..


참고로 싱가포르 공립 초등학교의 중국어 시험은 듣기, 말하기, 읽기, 쓰기 등 여러 영역으로 평가하는데 3종류의 시험을 치른다.
1. Oral 시험 ;  주어지는 텍스트를 소리 내어 읽는 읽기 평가와 보여주는 광고나 신문 기사 등을 보고 묻는 질문에 대답할 수 있는지를 평가한다. 5, 6학년이 되면 뉴스 같은 영상을 보여주고 질문한다고 한다.
2. Paper 1 시험 :  listening comprehension (듣기 평가)과 writing(작문)을 평가한다.
3. Paper 2 시험 : 어휘, 발음, 관용구, 명언, 이어지는 문장 완성, 문법, 주어진 텍스트에 대한 질문을 객관식, 주관식 등으로 평가한다.


"와 ~~ 대단하다. 정말 축하해! 근데 이거 꿈 아니지?"

무슨 초등학생 시험 성적 100점에 유난이냐고 할지 모르겠지만..

아무것도 몰랐던 막내가 싱가포르에 와서 중국어 수업을 따라가기 위해 얼마나 고생했는지.. 그 수준이 얼마나 어려웠는지 함께 지켜봤기에 믿어지지 않았고 울컥해서 눈물이 날 거 같았다.


"그러니까요. 선생님이 애들 앞에서 4학년 전체에서 저 혼자 백점이라며 박수 치라고 해서 저도 깜짝 놀랐어요. 그러면서 애들 막 혼냈어요. 한국 아이가 백점 받는데 너네 공부 안 하냐구요."

아이구나.. 나오려던 눈물이 쏙 들어갔다.

기쁜 와중에도 마음이 아리고 아이가 안쓰러웠다.

이런 반응은 참.. 종종 경험하지만 들을 때마다 아이가 이방인임을 강조하는 격이라 서글펐다.


둘째네 학교 선생님도 아이가 뭘 잘하면 반 아이들에게 외국인이 이렇게 열심히 하는데 너희는 학비가 공짜라 공부 안 하냐며 혼낸다고 했다. 외국인은 비싼 학비를 내기 때문에 열심히 한다고.. 모든 선생님이 그런 건 아니지만.. 다들 더 열심히 하라고 하시는 말씀일 테지만.. 듣는 외국인 참 서운했다.

외국인이기에 마나 어려운 시험을 치고 힘든 과정을 통과해야 로컬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를 갖는지 모르셔서 하는 말인가 싶다. 비싼 학비만 낸다고 그 교복 입을 수 있는 게 아닌데..


외국인이라 초등학교 1학년 입학 지원 때 떨어지고 자리가 없으니 국제학교로 가라는 메일을 받았을 때 참 막막했었다. 어렵게 찾은 로컬 사립 초등학교에, 그것도 자리가 없어 세 달이나 늦게 입학했을 때.. 잘 몰라도 학교 다니면서 하나씩 배워가면 따라갈 줄 알고 준비 없이 보냈다가..  

영어도 많이 부족하니 영어에 집중하라며 중국어 수업 포기하란 소릴 자주 들어야 했다. 하교 시 아이를 데리러 매일 학교에 가야 했는데, 그만 포기하란 말씀 듣기 무서워서 중국어 선생님 마주칠까 봐 숨죽여 피해 다녔었다.  

막내가 자긴 중국어 수업 재밌다며 듣고 싶어 해서 스스로 정말 열심히 노력한 덕분에 계속 중국어 수업 들을 수 있었던 이야기는 <너 중국어 진짜 좋아하니?> 글에 소개되어 있다.




싱가포르에서 영어 외에 필수과목으로 배우는 언어는 Mother Tongue (모국어)이라고 부른다. 제2 외국어지만 모국어라는 거다.

누가 이중언어 배우기 좋은 나라 싱가포르라고 했는지 따져 묻고 싶을 만큼 초등 과정도 집에서 어릴 때부터 사용하는 모국어이기에 공부해서 따라갈 수 있는 수준이 아니었다.

저학년 때는 그래도 적응하면 할 수 있겠다 싶었지만 고학년이 될수록 수준 차이가 너무 컸다.

그냥 교과서 단어나 문장을 외우고 치는 시험이 아니라, 신문기사나 뉴스, 광고 등을 묻고 작문까지 해야 하니 점점 더 어려워졌다.


그렇게 어려운데 이게 어떻게 된 일이냐 물었더니.. 운이 좋았단다.

모르는 문제가 몇 개 있었는데 자기가 고른 답이 정답이었다고.. 

말없이 아이를 꼭 안아줬다. 말하지 않아도 어려운 과정을 따라가느라 얼마나 마음 고생이 많았을지 알기에 마음이 아팠고 아이가 참 대견했다.



얼마 뒤 학교에서 학부모 상담이 있었다. 교실에 갔더니 담임 선생님이 중국어 시험에 관한 이야기부터 하시며 칭찬하셨다. 한국 아이가 혼자 100점을 맞아서 화제가 되었다 하시며 부모 중 중국어 하는 사람이 있냐고 물어보셨다. 없다고 했더니 좀 놀라는 눈치였다. 외국인인데 대단하다며 칭찬해 주셨다.


중국어 선생님은 강당에서 따로 만날 수 있었는데, 각 모국어 과목마다 선생님들 으로 줄이 길었다. 중국어 경우엔 다들 중국어로 상담 중이었다. 

"혹시 선생님이 중국어로 물어보시면 네가 설명해줘라. 엄마 중국어 못해서 어쩌지?" 하고 이에게 부탁했다. 


오랜 기다림 끝에 우리 차례..

연세가 좀 있으시고 인상 좋으신 중국어 선생님은 아이를 보자마자 환하게 웃어주시며 내게 "중국어?, 영어?" 뭐가 편하냐 물어보셨다. (둘 다 안 편합니다만..)

싱가포르 학생들도 못 받은 점수를 한국인 아이가 혼자 받았다며.. 싱가포르에 온 지 몇 년 되었냐.. 중국어 공부한 지 얼마나 된 거냐.. 역시나 부모 중 중국어 하는 사람이 있는지도 궁금해하셨다.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공부했다고 하니 놀라워하셨다. 


"이가 가족 중에서 중국어 제일 잘하는 아이고 집에서 우린 한국어로 대화해요."라고 대답했더니 TV는 보냐고 물어보셨다.

"그게.. TV가 없어요."란 내 대답에 선생님은 언어에 많이 노출되는 게 제일 좋은 언어 학습법이라며 TV 시청을 권했다. 만화라도 중국어로 보라고.. 나중엔 뉴스도 중국어로 봐야 한다고..

아이가 열심히 해서 얻은 결과니 앞으로 걱정하지 않으신다며 하던 대로 쭉 하라고 응원해 주셨다. 다만 갈수록 더 어려워 질거라며 Oral (말하기) 연습이 많이 필요하다고 하셨다.


'Oral (말하기) 시험을 뉴스를 보고 질문을 한다고?'..   

갈수록 얼마나 더 어려워지려나 맘이 쓰였다.


내향적인 편이고 투션을 싫어하는 막내는 학교에서도 말을 많이 안 한다는데 '말하기'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싶었다.

로컬 학교에서 공부하는 다른 한국 엄마들에게 물어보니.. 중국어는 본인들도 도와줄 수 없어서 문제 푸는 학원 한 곳과 말하기와 에세이 쓰는 학원.. 그렇게 두 군데는 기본적으로 보낸다고 하셨다. 집에서 중국어를 사용하지 않으니 일주일에 두 번은 꾸준히 사용해야 도움이 될 거라고 하시면서..


학원을 참 싫어라 하는 막내라 다른 방법이 필요했다. 고민하다 친구 K의 엄마 C는 아이 공부도 본인이 가르치고 우릴 만날 때도 막내에게 늘 중국어로만 대화해주니..  

"혹시.. K네 엄마 C에게 부탁해서 중국어 말하기 연습 K와 함께하면 어때?"하고 물어봤다. 아이는 싫다고 했다. 아이가 늘 하는 말이지만 학교 선생님이 제일 잘 가르치신다는 대답과 함께..

아이고.. 우린 중국어를 전혀 몰라 도와줄 수가 없는데 어쩌려고 다 싫다고 하나 막막했다.




4학년이 끝나기 전에, 5학년에 어떤 과목을 들을지 결정을 하야 하는데.. 6학년에 있을 PSLE(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 때문이라고 했다.

Mother Tongue Langage (모국어) 대해선 3가지 중 결정된단다. 중국어 경우엔 성적에 따라..

Higher Chinese라는 심화 중국어와 Normal Chinese, 그리고 Basic Chinese 등으로 나눠 결정을 한단다.


Higher Chinese (심화 중국어, 그냥 HC로 지칭한다.)는 영어, 수학, 과학 등 다른 과목의 성적이 좋고 Chinese (중국어) 점수가 좋아야 들을 수 있는 기회를 줬다.

싱가포르  PSLE영어, Mother Tongue(중국어. 타밀어. 말레이어 중 선택), 수학. 과학 등 네 과목을 시험 치는데.. 거기에 Higher Mother Tongue (심화 모국어)을 추가로 더 선택하면 시험 후 어떤 혜택이 조금 더 있다고 했다. 아무리 혜택이 있어도 그냥 Chinese (중국어) 이렇게 어려운데 싶었다.


지인분께 들어보니 부모가 대만분이라 진짜 모국어가 중국어인 아이도 다른 과목 성적이 조금 부족하다 해서 HC (심화 중국어) 들을 수 없었다고 했다.

반면에 탑 스쿨이라 불리는 좋은 학교들에  다니는 아이들은 모두 처음부터 선택 없이  HC (심화 중국어) 듣는다고 했다.


"그런데, HC(심화 중국어) 그냥 중국어와 뭐가 다른 거야? 그냥 단어 수준 같은 게 더 어려워지는 거야? "

얼마나 다른지 묻는 내 질문에 아이는 다른 과목을 하나 더 공부한다 생각하면 된다고 했다. 교과서에 안 나오는 긴 글을 주고, 글에 대한 이해력을 요구하는 문제가 많아 조금이 아니라 많이 어렵다고 했다.


지난 시험 성적 때문인지 선생님은 아이에게  HC (심화 중국어)를 듣게 해 주었다. 정말 들을 거냔 내 질문에 아이는 당연하단 반응이었다.




그런데 5학년 HC (심화 중국어) 수업이 시작되자 역시나 실력 차이가 여실히 드러났다. 매주 단어 시험을 봤는데.. 계속 통과를 못하고 재시험을 쳐야 했다.

"중국어 단어 수준이 높아 외우기 어려워서 그런 거야?"

"아뇨. 단어를 뜻에 맞게 문장을 찾아 넣어야 하는데요, 교과서 문장과 다른 처음 보는 문장이 나와요. 그리고 뜻이 여러 가지 일 수 있어서 제가 외운 걸로는 잘 못 찾겠어요. 게다가 시간도 정말 짧게 줘요." 

아이가 노력하는데 자꾸 재시험을 봐야 하니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거 같았다. 그래서 그냥 우리 이 과목 듣지 않는 게 어떠냐 물어봤다.


사실 막내는 4학년 전체 성적이 좋아서 5학년이 되면서 1반이 되었, 친한 친구 K는 2반이라 오직 중국어 시간에만 만날 수 있었다. 그런데 K가 HC (심화 중국어) 들으니 친구와 같이 공부하고 싶어서 이 선택을 한 건가 싶기도 했다. 그냥 Chinese (중국어)를 들으면 다른 반에서 수업하기에..  

(싱가포르 초등학교는 성적에 따라 반을 구분한다.)


그리고 그즈음.. 부모님이 모두 중국계인 친구 Y가 HC (심화 중국어)을 듣다 포기하는 일이 있었다. 막내와 성적이 비슷한 친구였는데 왜 포기했나 물어보니 과학 과목 성적이 잘 안 나와서 그 과목 공부에 시간을 더 쓰는 게 맞다고 생각한다 했다.


듣고 보니 진짜 중국어가 모국어인 아이도 HC (심화 중국어)를 안 듣는데 막내가 왜 이 어려운 과목을 공부한다고 고생하나 싶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물어봤다. 이 과목을 포기하는 게 어떠냐고..


아이는 왜 포기했으면 하는 건지 이유를 물어왔다. 아빠도 같은 말을 했다면서..

"도전은 좋은 거지만 지금 학교 공부하는 것도 너무 어렵고 중국어 수업만 따라가기도 어려우니까.. 우린 국인이잖아. 영어로 여러 과목을 공부해서 PSLE 치기도 어려울 텐데.. 네가 너무 힘든 게 보기 마음 아파."

"엄마.. 제가 커 갈수록 점점 더 어려운 과목을 공부하게 되는 거 아닌가요? 그럴 때마다 어려우니 그만두라고 할 건가요? 더 크면 힘들다고 포기할 수 있는 공부가 있긴 더 있나요? "  

"힘들다고 포기했다면.. 지금처럼 이만큼 중국어를  할 수 있었을까요?" 


아이의 말에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정말이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랬구나. 시작부터 아이가 따라가기 어려우니 포기하라고.. 그 말만 계속 들었었지..'

왜 시간이 조금 흘렀다고 다 잊고 있었을까.. 그때도 난 힘드니 포기하는 게 어떠냐고 물었었고 아이가 공부해 보고 싶다며 버텨온 거였다.

막내는 중국어가 어렵지만 Higher Chinese (심화 중국어) 들으면서 실력이 느는 게 느껴져서 좋다고 했다. 친구 때문에 이 과목을 듣는 게 아니라 더 잘 배울 기회를 갖는 게 기쁘다면서..

그랬다. 이 아인 이런 아이였다. 스스로 좋아서 어려워도 버텨온..


"막내야.. 정녕 그 선택을 해야겠니?"

아이 말이 맞지만.. 굳이 이렇게 어려운 길로 가려는 건지.. 마음이 무거웠다.

"그럼 꼭 약속해줘.. 해 보다가 정말 어려워서 힘들면 꼭 말해주기로.. "

"네 그럴게요. 보다가 아니면 그만두더라도 보지도 않고 포기하고 싶진 않아요. " 


순간 울컥해 눈물이 났다.

어느새 아이가 이렇게 쑥 커 있구나 싶었다.

낯선 나라에 와서 대화도 안 통하고 한마디 말도 잘 못하면서 학교를 다녔던 아이는.. 어느새 이렇게 도전 앞에 용감한 아이로 커가고 있었다.


PSLE 네 과목 시험 점수가 다 좋아야 결과적으로 좋은 중학교 가기 유리하단 걸.. 추가로 어려운 HC (심화 중국어) 과목을 더 도전하기보다는 골고루 네 과목 점수 잘 받아야 한다는 걸.. 아이도 잘 알고 있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스스로의 한계에 도전해 보고 싶어 했다. 친구 따라 강남 간 건 줄 알았더니 잘못 알고 있었나 보다.


요령 피울 줄 모르는 아이인지라 어려운 공부 따라가는데 얼마나 고생할지 예측되어서.. 그냥 다른 과목 공부 더 열심히 하자고 설득하고 싶었으나..

아이의 단단한 생각이 자꾸 떠올라서 그냥 아이의 도전을 응원하기로 했다.

"막내야.. 네가 정녕 그 길을 가야겠다면.. 그 선택을 하겠다면.. 힘들 때 달려와 쉬어갈 수 있는 위로가 되어줄게. 많이 힘들 땐 언제든 와서 기대."


그 뒤로도 아이는 어려운 중국어와 실랑이하느라 고생을 많이 했다. 숙제 한 페이지 하는데도 몇 번을 드러누웠다 앉았다 반복하며 힘들게 해 갔고 성적도 아주 좋을 순 없었다. 뭘 알아야 도와줄 텐데 숙제도 아무 도움을 줄 수 없어 그냥 지켜보기가 딱했다. 그럼에도 아이는 스스로 선택한 길이기에 포기하겠단 말 없이 묵묵히 걸어 나갔다.


조금 더 쉬운 길 선택해서 조금 더 편히 가는 요령을 피우기보다 결과는 그리 대단하지 않더라도 어려움을 묵묵히 견뎌본 이 경험이 아이가 걸어가는 앞길에 더 많은 거름으로 남아 줄거라 믿는다.


"막내야.. 살다 보면 너무 버겁고 어려워서 다 포기하고 도망치고 싶은 문제들을 만나기도 해..

그럴 때 힘겹게 버티기보다 조금 더 쉬운 길을 선택해도 괜찮아. 그래도 정말 괜찮아.

그런데 지금은 네 선택을 믿고 존중할게..

네가 도망가지 않고 도전했던 그 마음으로 내일은 또 어떤 도전을 이어갈지 응원하며 같이 지켜봐 줄게."





사진출처 : Photo by Annie Spratt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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