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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Oct 20. 2022

싱가포르 초등학교 6학년의 현실..

(싱가포르에서 공부하려는 자, 초6학년의 무게를 견뎌라!)

싱가포르 초등학교 6학년 학생들에게 8월부터 10월 초는 잔인한 시간이다.

해마다 8월 오랄 시험을 시작으로 9월에서 10월 초까지 PSLE(Primary School Leaving Examination)라는 졸업시험을 치기 때문이다. 시험과목은 영어, 수학, 과학, 그리고 모국어에 해당하는 Mother Tongue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 중 선택)까지 네 과목을 시험 친다. 하이어 차이니즈(하이어 말레이어, 하이어 타밀어 중 선택)를 듣는 학생은 총 다섯 과목을 시험 친다.


이 시험 때문에 싱가포르에선 초등학교 6학년이 되는 아이가 있으면 그해 집안 분위기는 딱 우리네 고 3 학생이 있는 것과 비슷하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PSLE 시험을 쳐서 성적에 따라 서열화되어 있는 중학교로 진학하기 때문이다. 중학교에서 4년 공부한 뒤 중학교 졸업시험인 O레벨 시험을 통해서 다시 한번 더 좋은 학교로 진학할 기회가 지만, 중학교 진학부터 성적별로 구분되니 어느 학교에 가느냐에 따라 이미 아이들의 미래가 어느 정도 결정된다고 보는 분위기라 PSLE 시험을 아주 중요하게 생각한다.


부모들 중엔 아이 인생에서 정말 중요한 시기니 시험 준비를 돕기 위해 휴직을 하는 경우도 많다고 다. 막내 친구 엄마도 아이 공부시키느라 너무 신경 썼더니 살이 많이 빠졌단다.


학교에서도  시험을 대비해 열심히 수업하지만 보충수업은 학교마다 다 달랐다. 탑텐 스쿨이라 불리는 좋은 학교들에선 매일 방과 후 오후에 남아서 보충 수업을 한다고 다. 한국 친구들이 다니는 다른 학교도 일주일에 두 번은 보충 수업을 한다는데, 막내 학교는 방과 후 따로 하는 보충 수업도 없었다. 하이어 차이니즈 수업을 듣는 학생들을 위한 보충 수업만 주 1 있었다. 학교가 따로 열심히 챙겨주지 않으니 불안하고 막막했다.


게다가 갑자기 2021년부터 PSLE 시험의 점수 시스템이 달라져서 너무도 당황스러웠다. 네 과목 시험 점수를 더해 환산한 총점으로 지원하던 시스템에서, 각 과목별 점수를 밴드로 묶어 성취 레벨 (Achievement Levels, AL)로 구분해서 네 과목 성취 레벨 (AL) 총점으로 지원하는 시스템으로 바뀐 것이다.


싱가포르 교육부에서는 백점이나 90점이나 다 같은 성취 레벨 (AL) 1이니 모든 과목에서 백점을 기 위해 노력하지 않아도 된다고.. 아이들의 스트레스가 줄 거라고 했다. 아이들의 학업 스트레스를 낮춰주기 위해 새로운 점수 시스템으로 바꿨다고 하지만 막상 처음 받아본 성적표는 혼란스럽기만 했다.  

(PSLE 점수 시스템. 사진 출처: The Heart Truths- Wordpress.com )


 이전 시스템에선 시험에서 75점을 받으면 A를 받았다. 75점이 A라면 너무 후하지 않냐 할 수 있지만 그만큼 시험이 어렵고 좋은 점수받기가 어렵다는 뜻일 게다. 그런데 바뀐 점수 시스템에선 75점이면 성취 레벨 (AL) 4를 받게 되니 아이들도 부모들도 많이 당황스러웠다.

 

(PSLE 점수 시스템. 사진 출처: The Heart Truths- Wordpress.com )


막내 학교는 성적별로 반이 구분되어 있는 학교였는데 1 반인 막내반에서도 첫 중간고사를 치고 새로운 점수 시스템으로 표시된 성적표를 받아 든  교실에서 우는 아이들이 많았다고 했다. 만약 네 과목 모두 성취 레벨 (AL) 2를 받았다면 이전엔 올 A였던 성적표가 성취 레벨 (AL) 총점 8점으로 표시되니 그 차이가 크게 느껴졌다. 학교에서도 점수 시스템이  바뀌어서 아이들이 성적이 많이 떨어졌다고 느낄 수 있고 당황할 수 있겠지만 아직 적응이 안 돼서 그런 거라며 여전히 잘하고 있는 거니 아이들의 멘탈 관리를 위해 가정에서 많이 신경 써 달라는 안내문을 보내왔다.


새 점수 시스템은 비슷비슷한 성적의 학생들 간에 변별력을 주기 위해 성취 레벨 (AL)  2, 3, 4 단계는 시험 점수 5점 단위로 구분되는데, 실상은 한 두 문제 차이로 성취 레벨 (AL)이 달라지는 거니 희비가 엇갈리는 경우가 많이 발생했다.

총점 단 1점 차이로 지원할 수 있는 학교가 달라지는데 한 두 문제 차이로 성취 레벨 (AL)이 달라지니 모두 처음 경험하는 새로운 점수 시스템에 많이 당황할 수 밖에 없었다.


((PSLE 점수 시스템  /  중학교 지원시 점수 구분표  . 사진 출처: www.moe.gov.sg)


게다가 동점자가 많아지는 상황이 발생할 텐데 총점이 동점일 경우 합격 우선순위는 시민권자, 영주권자 그리고 마지막이 외국인 순이라고 했다. 외국인인 우린 같은 점수를 받아도 제일 마지막 순서이니 불이익이 생기는 구조였다. 막내는 이 부분을 가장 억울해했다. 같은 점수를 받아도 다른 친구는 합격인데 자긴 불합격일 수 있는 상황이니.. 왜 갑자기 바뀌어서 이런 불이익까지 받아야 하나 속상하고 억울했다. 학교 들어오는 것도, 졸업시험도 외국인이라 차별받고 불이익을 받으니..


하루는 과학 선생님이 막내를 따로 불러 넌 한국인이라 중국어 시험 안 치는 경우면 그 과목은 다른 과목들 점수에 따라 성취 레벨 (AL) 6점에서 8점 중 받을 텐데 알고 있냐고 걱정해 주셨단다. 한국 학생이니 중국어 수업을 포기한 경우인 줄 알고 안타까워해 주신 거였다. 막내가 하이어 차이니즈 듣는다고 했더니 많이 놀라워하셨다는데.. 새로 바뀐 점수 시스템이라 모를까 봐 따로 불러 설명해주신 선생님이 너무 고마웠다는 막내였다. 외국인에겐 여러모로 더 어려운 시험이다.




그러던 어느 날 , 막내 친구 K의 엄마 C에게서 급한 연락이 왔다. 너무 충격적인 일이 일어났다고.. 학교 근처에 살지 않으니 소식 모를 거 같아 연락했다며 C가 전해온 소식은 너무 마음 아픈 소식이었다. 학교 건너편 HDB에 사는 K네 반 여학생이 안타까운 선택을 했다고 했다. 이유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지만 싱가포르에선 가끔 6학년 아이들이 이런 안타까운 선택을 하기도 한다고 했다. 겨우 6학년인데.. 너무 슬펐다.


그래서 학교 에서 K네 반 아이들 멘탈 관리를 위해 상담을 해주고 있다고 했다. 막내반은 상담 안 왔냐고 하면서.. K 근처에 앉던 학생이라 K의 충격이 크고 C도 너무 놀라 마음이 무너진다고 했다. 겨우 6학년인 아이가 얼마나 힘든 시간을 보냈기에 런 일이 일어난 걸까 너무 안타깝고 마음 아팠다. 


혹시 옆반 소식 아냐고 조심스레 물어보니 선생님께 들었다며 마음 아파했다. 잘 아는 아인 아니지만 너무 슬프다고.. 학교에서도 계속 안내문을 보내왔다. 아이들이 시험과 성적에 대한 스트레스를 받지 않도록 가정에서 관심을 가져달라고.. 겨우 초등학교 6학년 학생에게 일어난 일이란 게 믿어지지 않았다.   


아이가 싱가포르 학교를 다니니 이 나라 제도에 따라 시험을 치고 평가받는 건 당연하지만 결코 부담을 주거나 스트레스로 받아들이지 않게 도와줘야겠다 싶었다. 중학교를 가기 위한 시험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니 결과에 너무 휘둘리지 말자 다독였다.


이 나라 사람도 아니고 여기서 평생 공부할 것도 아닌데 괜한 욕심에 아이를 더 힘들게 하고 싶지 않았다. 그럼에도 큰 시험을 쳐서 그 결과에 따라 학교가 달라진다니 지금이 정말 열심히 공부해야 하는 시긴데 싶은 불안감은 있었다.

막내는 학원을 가는 것도 다른 문제집을 사서 푸는 것도 버거워했다. 이미 학교에서 나눠주는 과제가 너무 많아 보기도 버겁다고 했다. 학원을 가면 도움을 받을 순 있지만 학원 숙제까지 늘어나니 너무 힘들 거 같다며 학원 가길 거부했다. 


그런데 학원은 싫다며 단호하던 막내가 어느 날 갑자기 기타를 더 배우고 싶다고 했다. 6학년이 되면 학원 안 다니던 아이들도 학원 등록하고 전력을 다해 공부한다는데 지금 악기를 배우고 싶다니.. 부담 주지 말자 다짐했음에도 혹시 시험 다 끝난 후에 배우면 안 되겠냐고 되묻고 말았다. 막내는 학교 CCA(방과 후 수업 같은)로 기타 배우고 있었는데 좀 더 배워 좋아하는 곡을 연주하고 싶다고 했다. 기타 소리가 마음을 편안하게 해 준다며..


"그래 그러자! "

스트레스 많이 받을 아이가 쉬어갈 수 있게 당장 기타 수업을 알아봤다. 마음이 편안해진다는데 일주일에 한 번 한 시간 받는 수업 6학년이라고 못할게 뭔가 싶었다. 그런데 막상 등록하고 보니 수업 시간 외에도 아인 틈날 때마다 기타를 잡고 있었다. 보고 있자니 이 중요한 시기에 어쩌려고 러나 솔직히 걱정이 됐다. 부담 주지 말자 다짐했건만.. 참 머리와 마음이 따로 노는 모순적인 나 스스로에게 실망스러웠다. 잔소리하지 않으려 애써 봐도 자꾸 숨은 마음이 튀어나왔다.


그렇게 맘 졸이던 어느 날..

문득 기타를 메고 나온 막내가..

"엄마 완벽하진 않지만 들어보세요 ~" 하더니..

기타 연주를 시작했다. 대체 무슨 노랜가 가만히 들어보니 어라.. 서툰 멜로디 사이로 좋아하는 멜로디가 들려왔다.

"산다는 건 그런 게 아니겠니 ~ 원하는 대로만 살 수는 없지만~"

막내는 잘 알지도 못하는 곡일 텐데..

"엄마가 언제가 너무 좋아하는 노래라고 했던  기억나서 연습해 봤어요."


마음이 뜨거워져 눈물이 났다. 많이 힘들 텐데.. 그래서 기타 튕기며 그나마 쉬어가고 있었을 텐데.. 그 시간마저도 조바심에 마음 끓이고 있던 엄마를 위해 모르는 노래지만 열심히 준비해 준 게 너무 고맙고 많이 미안했다. 자꾸만 내 불안을 아이에게 던져주며 기타 좀 놓아두라 했는데.. 시험 후에 많이 치라며 잔소리했는데..

음악이 주는 따뜻하고 커다란 위로의 힘으로 아이는 그렇게 쉬어가며 위로받고 힘을 얻어가고 었을 텐데.. 


팔 벌려 힘껏 안아주며 고맙다고 했다. 언제 이렇게 실력이 늘었냐며 칭찬도 해줬다. 조바심 내는 못난 엄마를 위해 서툴러도 연습해준 마음이 부끄러운 내 욕심을 녹이고 있었다.

고작 12살 아이거늘..


시험 결과를 떠나서, 그동안 열심히 노력해서 로컬학교로 옮겨오고 잘 적응해준 덕분에 PSLE 시험을 칠 수 있는 기회도 스스로 만든 네가 많이 기특하고 고맙다고 했더니..

"이 시험 치는지 알았으면 로컬학교 안 왔을 거 같아요." 했다.

'그러게.. 이렇게 어려운 과정일 줄 알았더라면 도전하지 말 걸.."

하필 싱가포르에 와서 이런 고생을 이 어린 나이에 하는구나 싶어 안쓰러웠다.

정말이지 "싱가포르에서 공부하려는 자, 초6학년의 무게를 견뎌라!"다.

알았더라면 이 길로 오지 않았을까.. 몰랐기에 용감하게 여기까지 왔는데.. 경험할수록 싱가포르에서 공부하기는 만만치가 않다.


"어렵게 여기까지 왔으니 더 가봐야죠. 그만두긴 너무 아깝잖아요." 

안쓰러워 하는 내 손을 꼬옥 잡아주며.. 무심히 막내가 들려준 말..

어려움 많은 험난한 길을 가느라 힘들지만.. 그 길 가는 동안 좋아하는 것도 맘껏 즐기며 위로받을 수 있도록 그만 조바심 내려놓고 진심으로 응원해줘야 할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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