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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Dec 06. 2022

아이가 발표하는 학부모 상담은 처음이라..

아이와 갑자기 싱가포르로 오게 되었을 때, 이곳에 어떤 타입의 학교가 있는지.. 외국 학교에서 공부하기는 우리나라 학교와 얼마나 다를지 예측 가능한 게 없었기에 매번 부딪히고 경험하면서 '아~ 이 학교는 이런 스타일이구나'하며 하나씩 알아가야 했다.


(싱가포르에 있는 국제학교만 해도 어느 나라의 커리큘럼을 따르느냐에 따라 한국, 미국, 영국, 호주, 인도, 캐나다, 독일, 프랑스, 스위스, 일본, 중국, 네덜란드 등의 국제학교가 있고 다국적 국제학교도 있다. 게다가 싱가포르가 만든 국제학교까지 종류가 많다.  늘어나고 있는데  외국인의 공립학교 진학이 어렵다는 점도 한몫한다고 생각된다.)


아이가 셋이라 국제학교, 싱가포르 사립학교 그리고 공립학교까지 참 다양한 학교를 경험할 수 있었고 그 덕에 학교마다 너무 다른 분위기의 학부모 상담도 경험할 수 있었다.


아이의 태도나 성장해가는 과정을 칭찬하는 국제학교 분위기와 달리 싱가포르 학교들은 학부모 상담 때 성적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하는 편이었다. 부족한 과목은 투션 선생님을 구해서 조금 더 열심히 시켜야 한다고 하셨다.


몇 년 후 있을 시험을 대비해서 어떤 과목을 선택할 건지, 어떤 시험일지에 따라  과목을 시험 쳐야 하는지 다 다르기에 아이의 진로를 고민하고 결정해서 방향을 잡아가야 된다고 하셨다.

특히 우리가 외국인이라 더 그랬겠지만 나중에 싱가포르 대학을 갈 건지, 외국으로 갈 건지 아니면 한국으로 갈 건지에 대해 미리 결정하고 시험 대비를 하라고 하셨다.


당장 이 나라에 얼마나 있을지도 모르는데 몇 년 후를 대비하라니.. 꼭 필요한 말씀이지만 그 시험들과 과정을 잘 모르니 낯설고 어렵게 느껴지는 이야기들이었다. 그래서 싱가포르 학교의 학부모 상담은 매번 괜히 더 긴장되고 걱정스러웠다.




올해 중학생이 된 막내 학교의 학부모 상담일이 잡혔을 때도 나름 긴장이 됐다. IP 학교는 경험해 본 싱가포르 커리큘럼과도 많이 달랐고 아이들끼리 스스로 해야 하는 프로젝트가 많아서 어떤 식으로 평가되는지 더 모르겠어서 성적 얘길 하면 어째야 할까 미리 걱정하고 있었다.


여름 방학 전에 학부모 상담이 있었는데 학년 대표 선생님과 온라인으로 상담한다고 했다. (코로나 팬데믹 이후론 학부모 상담은 대부분 온라인으로 진행되고 있다. 전화 상담도 가능하다.)

이 학교는 왜 담임 선생님이 아니고 학년 대표 선생님과 하는 걸까 조금 의아했다.


과학 과목을 가르친다는 학년 대표 선생님 C는..

C; "드디어 마스크 속의 진짜 네 얼굴을 보는구나. 오 ~ 넌 이렇게 생긴 아이였구나. 이제야 진짜 너를 만난 거다. 그지?"

유쾌하게 웃으시면서 분위기를 편안하게 해 주셨고 선생님 덕분에 긴장됐던 마음이 좀 편안해졌다.


 뒤로도 다정한 질문들이 이어졌다.

학교 생활은 좀 적응이 되는지.. 특별히 어려운 부분은 없는지.. 요즘 관심사는 무엇인지..

내게도 아이가 작년과 올해 비교해서 달라진 부분이 있다면 어떤 게 달라졌는지.. 중학생이 된 아이에게 어떤 당부를 하고 싶은지 물어보셨다.


성적 이야기부터 하실 거라 긴장했다가 이게 무슨 분위기지 살짝 당황했다. 당근부터 주고 채찍 내미시려나..


이어진 질문은 싱가포르 학교에선 들어본 적 없는 질문이라 신기했다.

C :  "쉬는 날 부모님을 위해 요리해 본 적 있니? 부모님께 감사한 마음을 표현해 보길 권한다. 참 넌 한국인이니 김치 만들어 드려야 하는 거 아니니? "

(이 선생님도 한국인은 다 김치 만들 수 있다고 생각하시는구나 싶었다. )


김치라니.. 요리해 본 적 없는 막내가 난감해하자 달걀 프라이나 간단한 라도 한잔 타 드려라 하셨다. 부모님은 무엇이든 네가 고마움을 표현하는 거면 다 좋아하실 거라고..


그리고 아이에게 들려준 이 말씀으로 상담을 마치셨다.

C : "성적도 중요한 시기지만 어떤 문제를 스스로 도전해서 극복해 나가는 게 중요하단다. 그러니 무엇이든 도전해보렴."

성적 이야기를 안 하고 상담이 끝나다니.. 그래서 괜히 고맙고 더 좋았다. 로컬학교에선 경험해 보지 못한 상담이었다. 아이 마음도 부모 마음도 신경 써서 헤아려 주신 거 같아 감사했고 마음이 따뜻해졌다.




학기말엔 담임 선생님과 학부모 상담을 할 수 있었는데 이번엔 또 다른 방식의 상담이었다.

담임 선생님이 부모에게 아이가 어떻게 생활하고 있는지, 어떤 성적을 받았는지 평가해서 알려는 방식이 아니라, 아이 스스로가 한 학년 동안 무엇에 집중해서 어떤 걸 도전해봤고, 그 경험으로 인해 어떤 성장을 할 수 있었는지 프레젠테이션을 하도록 했다.


상담 전에 바쁘게 발표 자료를 준비하는 막내를 보면서도 이 상담이 어떻게 진행되는 건가 의아했다. 아이가 발표하는 학부모 상담은 처음이라..


아이는 일 년 동안 어떤 과목에서 어떤 프로젝트를 했는지, 이를 통해 어떤 걸 배우고 경험했는지도 발표했지만, 교과목 외에 올해 어떤 걸 도전해서 얼마나 성장할 수 있었는지를 더 열심히 발표했다.


스스로 배우고 싶어 도전한 밴드 CCA에서 플루트를 배우고 지금은 어떤 연주가 가능해졌는지.. 친구들을 위해 만들기 시작한 학급 신문을  몇 부나 발행했고 어떻게 더 나아갈 건지..


아이의 발표를 다 듣고 난 뒤, 선생님은 아이가 열심히 진행한 일들을 칭찬하셨다. 그리고 아이가 어떻게 한 해를 보냈는지를 보고 어떤 말을 해주고 싶냐고 하셨다.

혼자 얼마나 열심이었는지 지켜봐 왔기에 더 큰 목소리로 열심히 한 해를 보낸 네가 자랑스럽다고 말해줬다.

( 나중에 아인 그렇게 말해줘서 고마웠단다.)


이런 방식의 상담은 처음이라 신기했다. 아이의 요즘 관심사를 조금 더 알 수 있게 된 거 같아  점은 참 좋았다.

과목의 성적을 보고 부족하다, 더 공부해라는 식의 이야기를 했다면 힘든 시간이었을 텐데.. 아이의 노력 과정을 스스로 발표하게 하고 그걸 보고 난 뒤 칭찬할 건 칭찬하고 조언할 건 조언하는 방식이라 신선하면서도 재밌구나 싶었다.


학부모 상담은 교사와 학부모가 서로 협력하여 아이가 바람직한 방향으로 성장해 나갈 수 있도록 돕기 위한 시간이라고 알고 있다. 집에서 내가 보는 내 아이의 모습과 학교에서 선생님이 보는 내 아이의 모습이 다를 수 있을 테다. 그런데 어른들의 시선이 아닌 학생 스스로 자신의 관심사와 노력한 과정을 보여주며 스스로를 대변해 볼 기회도 갖고, 나 자신을 돌아볼 수 있는 기회도 될 테니 참 좋은 방법이구나  싶었다.


아이가 발표하는 학부모 상담은 처음이라.. 

하는 중에는 이게 뭔가 싶었지만..

가만가만 돌아보니 아이 스스로 제 목소리를 낼 수 있게 학교가 만들어준 소중한 자리구나 싶다. 잘 들어주는 것도 더없이 좋은 응원이 될테니..






(사진 출처 : Photo by sofatutor on Unsplas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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