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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ug 30. 2023

학교에서 캠프 가는데 돈을 준다고?

(싱가포르 중학교 캠프 1편)

"이것 좀 보세요!! 선생님이 이걸 줬어요!"
학교에서 받아온 봉투를 열어보다 깜짝 놀란 막내.. 뭐가 들었기에 저렇게 놀라나 싶었다.

"선생님이 저를 불러서 이걸 주셨는데요.. 이걸 한 명씩 이렇게 주는 걸까요? 한 조에 이만큼씩 주는 걸까요? "

너무 놀래니 궁금해서 얼른 들고 온 봉투를 열어봤다.
"어머나! 이걸 왜 주신대?"

나 역시 깜짝 놀랄 수밖에 없었다.

(봉투 속에 들어 있던 바우처. Photo by 서소시)

봉투 속엔 무려 SGD $40달러 (약 4만 원) 상당의 바우처가 들어 있었다.

(이 바우처로 현금처럼 마트에서 물건을 살 수 있다.)

요 며칠 아파서 학교를 못 자세한 설명을 놓친 건지 아이는 당황스러워했다. 곧 학교에서 학년 전체 캠프를 가는데 참가비를 내는 게 아니라 오히려 학교에서 이 바우처를 줬다는 거다.

"그런데 학교에서 캠프 가는데 바우처를 왜 주는 걸까?"
때까지만 해도 이 바우처의 의미를 잘 알지 못했다.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지난 몇 년간 코로나 사태로 인해 전면 취소되었던 학교 행사들.. 늘 아쉬웠는데 드디어 막내도 친구들과 함께 학교 캠프를 갈 수 있게 된 것이다. 하필 아픈 후라 체력이 완전히 회복되지 않아 조심스러웠지만 아이는 이번만큼은 꼭 참가하고 싶어 했다.

다음날..
"엄마, 이번 캠프 동안에는 우리가 직접 요리를 해서 먹어야 한대요.. 그래서 먹을거리를 장 볼 돈을 주는 거래요. 한 명씩 다 40불 바우처를 준거래요. "
"너희가 직접 요리한다고? 4일 내내 밥이 한 번도 안 나온대?"
"그리고 이 만큼의 돈을 모든 학생에게 다 나눠줬다고?" 
이게 무슨 일인지 들으면서도 믿기지가 않았다.

학교에서 캠프를 가는데 참가비로 돈을 내보긴 했지만 받아 본 적은 없었기에, 돈을 나눠주는 상황이 너무 의아했는데 밥까지 안 준다니..

이번 캠프는 싱가포르의 한 섬으로 떠나는 3박 4일 동안의 일정으로 아이들은 6명씩 조를 나눠서 텐트를 치고 자야 하고, 잠자는 친구들과는 다른 친구들로 4명씩 조를 짜서 함께 요리를 해 먹어야 한단다. 3박 4일간의 식사를 스스로 해결해야 하기에 이를 위해 모든 학생들에게 SGD $40 (약 4만 원) 상당의 바우처를 나눠줬다는 거다.

같은 요리 조 친구들 중에 요리할 수 있는 친구가 있냐고 물었더니 아무도 없단다. 이런이런.. 갈수록 태산이다. 아이들끼리 간단하면서 배부르게 먹을 수 있는 게 뭐가 있나 서로 의논하고 있다고 했다. 감자 삶아 먹자. 달걀 삶아 먹자 하면서..
인스턴트식품은 최대한 사지 말라고 했다는데 그럼 뭘 준비해 가야 하나.. 


뭘 사가면 좋을지 고민이 됐다.

'컵라면? 햇반? 김?'

친구들도 한국 음식 좋아할 텐데 싶었다.

잘 못 먹고 고생할까 봐 훈수 두고 싶었지만..

캠프의 의도가 아이들끼리 머릴 맞대고 문제를 해결해 나가길 바라는 거 같아서 그냥 지켜보기로 했다.

게다가 애당초 컵라면이나 햇반, 김은 가져갈 수 없는 물품이었다.


학교에서 보내온 주의사항에는 장 볼 물품에 대해 한 가지 중요한 주의 사항이 있었다. 캠프를 위해 준비할 모든 음식은 "할랄(Halal) 식품"이어야 했다. 다인종 다문화의 나라 싱가포르기에 학교 행사로 음식을 준비할 때면 모두를 위해 꼭 "할랄 음식"을 준비해야 했다.
아이들은 일일이 할랄 표시가 있는 음식인지 확인하며 장을 봐야 하는 거였다.




며칠 뒤, 같은 요리조 친구들과 만나서 어떤 걸 만들어 먹을 수 있을지 의논하고 장을 함께 보기로 했다며 나선 막내.. 네 명이서 무려 16만 원이나 되는 거금이 있으니 잘 사보겠다며 의욕적으로 나갔다.

요리할 줄 아는 친구가 없으니 아마도 감자 삶아 먹고 달걀 삶아 먹고 할거 같다는데..

'달걀은 어떻게 들고 갈려고? 섬까지 이동하는 동안 깨질 거 같은데..' 

한마디 하려다 잔소리 같아 삼켰다. 아이들이 알아서 할 일이기에..

한참 뒤 무거운 비닐을 양손 가득 들고 돌아온 막내.. 장 보는데 오래 걸려서 물건 고르기가 어려웠냐 물었더니.. 돈이 너무 많아서 장보고 남은 돈으로 함께 마트표 초밥과 음료를 사서 신나게 먹고 왔단다.
네 명이서 무려 16만 원 상당의 돈이 있으니 장보고도 많이 남았다고..
혹시 모르니 재료를 넉넉히 준비해 가야 할 텐데 싶은 엄마 마음과 달리 아이들은 뱃속에 미리 담아가기로 했나 보다.

서로 들고 갈 물품을 나눠 가지고 왔다는데..
친구들은 네가 제일 믿을만하다며 막내에게 달걀과 파스타 소스 같은 유리 용기를 부탁했단다. 거절 못하고 다 들고 온 막내.. 저걸 안 깨지게 어떻게 들고 갈 거냐 물었더니..
"잘 ~요!" 한다.. 에구나..
열어보니 달걀은 두어 개 이미 깨져 있었다.


선생님이 달걀은 하나씩 신문에 싸서 안 깨지게 들고 오라 하셨다는데 정말 난감했다. 신문에 싼다고 괜찮을까? 아이랑 고민하다 하나씩 작은 비닐에 포장을 했다. 혹시 깨져도 부어서 요리해 먹으라고..


장 봐온 걸 보니.. 나름 할랄 표시가 된 재료를 사려고 노력한 게 보였다.
이런 것도 할랄 식품이라니.. 시리얼에도, 초코바에도, 우유팩에도 할랄 표시가 있다는 걸 처음 알게 됐다. 

(우유팩, 시리얼 팩에 있는 할랄 표시. Photo by 서소시)


아이들이 가져갈 물품에는 개인 침낭과 개인 코펠 등 부피 있는 짐이 많았다. 어떻게 짐을 싸야 잘 들고 가는 건지도 숙제였다. 수영복에 워터슈즈, 간단한 옷가지만 챙겨도 이미 배낭 가득 차는데.. 식재료가 안 깨지게 짐을 싸려니 쌌다 풀었다를 여러 번 반복해야 했다.

그렇게 요리할 줄 모르는 아이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모른 채 장 봐온 물건들로 채워진 무거운 배낭을 메고 그렇게 캠프를 떠났다.
그리고..
그 일이 벌어졌다.


(2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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