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서소시 Oct 22. 2023

학교 밴드가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공연한다고?

(싱가포르의 CCA 교육)

"엄마, 우리 밴드가 올해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공연을 한대요!"

"어디서 한다고? 에스플러네이드? "

"네~ 무료공연이 아니고 콘서트 홀에서 하는 공연이라 표를 구매해야 볼 수 있는 공연이래요."

막내가 전한 소식에 깜짝 놀라고 말았다.


에스플러네이드는 싱가포르를 대표하는 문화예술공연 시설로 두리안을 닮은 외관으로 유명한 곳이다. 이곳에서 막내네 학교 밴드가 공연을 한다니.. 그것도 1600석 규모의 콘서트 홀에서 공연한다니..

예술 교육을 중점적으로 하는 예술중학교나 예술고등학교도 아닌데 이렇게 큰 공연장에서 공연을 한다는 게 믿기지 않았다.

( 두리안 닮은 모습의 에스플러네이드 photo by 서소시)


"이게 정말 기능해?"

이해하기 쉽게 풀어 설명해 보면.. 우리네 학교 '방과 후 활동' 비슷한 '학교 심포니 밴드'를 했는데 예술의 전당 무대에 서서 공연한다는 것과 비슷한 의미인 거다. 예술을 전공하는 학교도 아닌데 이런 큰 무대에서 공연할 수 있게 지지해 주고 후원해 준다는 게 그저 신기하기만 했다. 학교 밴드가 에스플러네이드 무대에 올라 공연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고 했다. 그만큼 잘 해내야 하는 공연이라 아이는 어깨가 무겁다고 했다.




어떻게 일반 학교 밴드팀이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공연하게 된 걸까?

이 공연은 싱가포르 교육과정 중 하나인 CCA라는 활동이 있어 가능했다.

그럼 CCA란 무엇일까? 잠시 소개해 보면..


싱가포르 공립학교에는 아이들이 자신의 관심사나 재능을 발견할 수 있는 기회인 CCA ( Co-Curricular Activities, 공동교육과정) 활동이 있다. 이 과정은 학문적 교과과정이 아니라 학생들의 균형적인 발전을 보장하기 위해 제공되는 과정이다. 싱가포르 교육부의 소개를 보면 CCA 활동이 학생들의 전반적인 발전에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보고, 학생들 스스로의 흥미를 개발하고 가치관, 사회적 정서적 역량 및 기타 관련 기술을 배울 수 있는 플랫폼을 제공하여 미래의 도전에 대비하는 기회를 만들어준다고 한다. 다른 배경에서 자라온 학생들이 모여 서로 배우고 교류함으로써 우정을 발전시키고 학교와 공동체에 대한 소속감을 깊게 하는 시간이 될 거라고 한다. 교육과정 중 일부라 필수과정이며 무료다.


학교마다 그 종류는 다르지만 아이들은 자신의 흥미와 특기를 살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에 다양한 활동을 지원해 참가할 수 있다. 크게 4가지 범주로 각종 스포츠 클럽, 유니폼 그룹, 비주얼 및 공연 예술 그룹, 사회 활동 그룹이 있으며 다양한 종류의 과정들이 있다.

중학교 지원 시 선호하는 CCA 가 있는지도 그 학교를 선택하는데 중요한 한 요소이고, 아이들의 장래 진로에도 큰 영향을 미치는 중요한 활동으로 인식되고 있다.


초등학교의 CCA 활동에서 우수한 실력을 가진 학생은 중학교 진학 시 PSLE(초등학교 졸업시험) 점수로 지원하는 것과 달리, 각 활동별 실기 평가(오디션)와 인터뷰를 통해 좋은 학교로 진학할 수 있는 DSA (Direct School Admission)  프로그램도 있다. 

여러 분야에 뛰어난 학생들을 뽑아 그 분야의 우수한 인재로 키우기 위해 만들어진 코스다. 학교마다 CCA 활동이 다양하고 다르므로 지원 시 확인이 필요하다. 여러 스포츠 분야 중 '태권도'를 뽑는 학교도 있다.


싱가포르 교육 과정은 초등학생 때부터 어려운 시험을 거쳐 서열화된 학교로 진학하기에 경쟁이 치열한 것도 사실이다. 반면에 CCA 활동을 통해 학문적인 교육 외에 스스로를 탐구하고 알아갈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 주고 자신이 좋아하는 활동에 참여하며 즐겁게 학교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막내는 초등학교 때 CCA활동으로 '기타'를 선택했었다. 좋아하는 노래를 직접 연주해 보고 싶다며 지원했는데 학교에서 기타도 대여해 주고 연주법도 가르쳐주니 만족도가 높았다.  

그래서 중학교 지원할 때도 '기타 앙상블 팀'이 있는 학교를 우선순위로 생각했었다.


그런데 막상 중학교에 가서 CCA 활동 소개를 듣더니 '심포니 밴드'에 참여하고 싶어 했다. 여러 악기가 만들어내는 연주가 너무 멋있었단다. 관악기를 배워 본 적이 없어서 참여가 가능할까 싶었는데 학교에서 악기도 대여해 주고 연주법도 가르쳐준다고 했다.


그렇게 참여하게 된 밴드팀에서 오디션을 거쳐 플루트를 불게 됐다.

'한 번도 플루트를 배워 본 적 없는데 학교에서 이 악기를 가르쳐 준다고?'

아했지만 며칠 뒤 학교에서 대여해 준 플루트를 들고 왔고 기본기부터 연습하기 시작했다. 선생님과 같은 악기를 연주하는 선배들이 번갈아가며 기본기부터 가르쳐 준다고 했다.


이렇게 멋진 악기를 무료로 배울 수 있고 악기를 당장 구입하지 않아도 된다니 좋은 기회구나 싶었다. 반면에 악기를 배워 팀으로 연주할 수 있는 실력을 키워야 하니 연습 시간이 많이 필요했다.

CCA 활동은 학교별, 종류별에 따라 참여하는 활동 시간이 다 다른데.. 막내네 밴드는 일주일에 세 번씩, 한 번에 세 시간씩 연습에 참여해야 했다. 대부분의 CCA가 많아야 주일에 두 번 정도인데 꽤 많은 시간 참여해야 했다. 교육과정 중 하나이기에 수업시간의 연장으로 보면 된다. 덕분에 CCA가 있는 날이면 아이는 새벽에 해 뜨는 걸 보며 등교해서 깜깜해진 밤에 하교하는 상황이 벌어졌다. 그럼에도 좋아하는 악기를 배울 수 있어 아이는 좋아했다.


그렇게 플루트를 배우기 시작한 아이는 곧 소리를 내기 시작했고 어느 날엔 제법 노래처럼 들리게 연주하더니.. 일 학년이 끝나갈 즈음엔 어려운 곡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됐다.

그냥 취미로 하는 활동쯤으로 알았는데 생각보다 열심히 연습해야 하는 과정이라 힘들지 않냐고 물었더니, 아이는 여러 악기가 함께 조화롭게 만들어내는 음악이 너무 듣기 좋아서 가슴이 벅차다고 했다. 따로 학원을 안 보냈는데 이렇게 연주까지 가능한 실력으로 성장했다는 게 신기했다.


그렇게 2학년이 되고 얼마 뒤.. 막내 학교 밴드가 에스플러네이드에서 공연을 한다는 소식을 가져온 거였다.

싱가포르에는 여러 학교들이 모여 공연 예술 분야의 CCA팀들이 참가해서 아이들이 갈고닦은 실력을 겨루는 대회가 있다. 싱가포르 유스 페스티벌(Singapore Youth Festival)이라고 하는데 이 대회에서 막내네 학교 밴드부가 여러 해 좋은 성적을 받아왔기에 여러 곳에서 후원해 줘서 아이들이 큰 무대에 설 수 있는 기회를 가지게 된 거였다.

학생들이 더 넓고 큰 무대에서 공연해 보는 경험을 통해 한걸음 더 성장할 수 있도록 이 공연을 위해 얼마나 많은 도움들이 있었을지 생각하니 참 감사한 경험이다 싶었다.




( 에스플러네이드 콘서트 홀 photo by 서소시)

큰 무대인 만큼  더 열심히 연습하고 준비해야 했다. 틈틈이 아이가 들려주는 연주를 들으며 같이 설레었다. 그리고 드디어 그날이 왔다.

아이가 이 멋진 경험을 즐길 수 있길 바랐다. 그런데 아이보다 내가 왜 더 떨리던지..


이렇게 큰 무대는 처음인지라 잔뜩 긴장한 채 입장한 아이는 차분히 잘해주었고.. 긴장한 처음과 달리 연주가 계속될수록 함께 그 무대를 즐기는 듯 웃고 있었다.


 날의 공연이 특히 더 감동적이었던 부분이 있었다.

무대 중간중간 밴드부와 다르게 검은색 정장을 입은 학생들이 몇 명 보였는데 그중엔 다리를 다쳐 깁스를 한채 연주하고 있는 학생도 있었다. 왜 다르게 입고 있을까 의아했는데..

문득 '아~ 그 선배들이구나!' 싶었다.


연습할 때, 졸업한 선배들이 연습하는데 와서 연주를 들려주기도 하고 같이 연습한 적 있다더니.. 그들은 이 학교 밴드부를 졸업한 선배들이었던 거다. 이렇게 큰 무대에서 연주해 본 적 없는 후배들의 부족한 소리를 채워주기 위해 시간을 내서 달려와 함께 연습해 주고 이렇게 한 무대에 올라 힘을 실어주고 있었던 거다.

학교와 밴드부를 아끼는 그들의 마음이 느껴져서 참 고맙다 싶었다.


그렇게 함께 만들어 내는 무대였기에 아름다운 음악과 어우러져 더 감동적인 시간이었다.

무대 위에서 당당하게 연주하고 있는 막내를 보면서 이런 경험을 할 수 있다는 게 그저 감사했다.

마지막 곡을 연주하면서 악기별로 일어나 인사를 했다. 열심히 환호하며 즐거워하는 관객들과 멋진 무대를 만들어낸 아이들의 뿌듯한 표정이 오래오래 마음에 남을 순간이었다.

 


이전 07화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더위를 이기지 못했다!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