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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ug 31. 2023

할머니의 손주 사랑은 더위를 이기지 못했다!

(싱가포르 중학교 캠프 2편)

그렇게 떠난 학교 캠프..

아이들 스스로 요리해 먹어야 한다는데 과연 굶지 않고 잘해 먹을 수 있을지 마음이 쓰였다.


그도 그럴 것이 뜨거운 날씨 속에 진행될 프로그램들을 살펴보니 이 활동들을 하고 요리해 먹을 시간이 있으려나 싶게 빡빡한 일정들이었다. 


캠프동안 아이들은 스스로 잘 6인용 텐트도 쳐야 하고, 카약, 산악 자전거, 산악 트레킹, 내비게이션 등 꽤나 활동적인 일정들로 가득 차 있었다.


막내 설명에 따르면 내비게이션 활동은 조를 짜서 지도를 들고 걸어 다니면서 지형을 분석한 다음 지워진 부분의 지도를 채워가는 활동이었다고 한다.


군대 가는 나라 싱가포르라 그런 걸까?

학교 캠프를 갔는데 예비 군대 체험을 보낸 기분이랄까..

왠지 이번 캠프의 주제는 "생존"인 건가 싶었다. 아이들이 떠난 섬은 샤워시설이 없어서 캠프동안 씻을 수도 없다고 했다. 수도 시설이 있지만 요리를 위한 최소한의 시설이라고..


무더위 속 강행군을 하고 제대로 씻지도 못하고 땀에 절어 여섯 명이 좁은 텐트에서 침낭 속에 들어가 잘 상상을 하니 얼마나 더울까 슬 걱정이 됐다. 잘 버티려면 먹기라도 든든히 먹어야 할 텐데..


나만 그런 마음이 아니었던 건지..

막내네 요리 조에 요리할 줄 모르는 손자가 굶을까 봐 슬쩍 도시락을 싸 주시며 친구들과 나눠 먹으라고 챙겨주신 할머니가 계셨으니.. 할머니의 손주 사랑이 불러온 웃지 못할 이야기..


캠프가 끝나고 아이를 데리러 학교에 갔는데.. 막내가 걸어와 차문을 여는데도 문 여는 아이가 우리 막내인지 정말 못 알아봤다. 겨우 4일 만에 보는 건데 아이는 전혀 모르는 아이로 변해 있었다. 얼마나 탄 건지 새까매져서 얼굴도 못 알아볼 정도였고 옷은 꼬질꼬질 더럽혀진 채 땀냄새가 지독했다. 그동안 머리도 못 감았을 테니 보기 딱할 정도로 엉망이었고 무엇보다 마른 아이가 더 말라서 너무 불쌍한 모습이었다. 


캠프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건지..

막내가 들려준 그날의 이야기 속으로..





첫날 저녁에 텐트 치느라 다들 지쳐서 저녁을 어떻게 해야 하나 하던 중이었어요. 우리 요리조 친구 중 한 명이 슬쩍 도시락을 꺼내더라고요. 할머니가 싸주셨다면서요. 이미 점심을 부실하게 먹어서 다들 배가 너무 고팠거든요. 모두들 할머니가 싸주신 치킨 요리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나 몰라요. 원래는 음식을 싸 오면 안 되지만 배도 고프고 할머니 마음을 감사하게 생각하자몰래 사이좋게 나눠 먹기로 했어요.


솔직히 그 요리는 친구를 위한 할머니 마음이라 생각하니 먹기 미안하더라고요. 또 젓가락이 커다란 배낭 어디쯤에 는지 빨리 찾질 못했어요. 찾고 보니 조금밖에 남지 않아서 두 조각 정도 먹었어요. 


 나 ; "조금 더 먹지.. 두 개 먹고 배고파서 어쨌니.."

막내 ; "더 들어보세요~ "


그런데 잠시 뒤, 갑자기 친구들이 하나둘씩 배가 아프다고 하더라고요. 그러다 갑자기 막 토했어요. 같이 나눠 먹은 우리 조 친구들 중 저만 빼고 셋 다 토하고 배가 엄청 심하게 아프다고 했어요.


나 ; "어머나.. 무더운 날씨에 배낭 속에 있었으니 상했던가 보다. 어쩜 좋아.. 친구들은 괜찮았어? 그나마 넌 두 개 먹은 게 다행이었던 거네?"

막내 ; "더 들어보세요~ "


아이들이 갑자기 아프니 급히 섬에서 나갈 수 있게 배편을 알아보고 그렇게 갑자기 같은 요리 조 친구들이 배를 타고 섬을 떠나야 했어요.


아프지 않아 다행이다 싶었던 것도 잠시..

요리 재료를 나눠서 짐을 싸왔는데 아이들이 갑자기 다 떠나 버리면서 자기 배낭도 다 들고 가니까.. 저한테 있는 건, 파스타 소스와 통조림 몇 개, 달걀 정도.. 파스타 면이나 감자 같은 건 다른 친구들 배낭에 있었거든요. 남은 재료들로 어떡해야 하나 난감해졌어요. , 다행히 달걀은 딱 한 개 깨지고 괜찮았어요. 

(달걀 하나씩 작은 비닐에 싸길 잘했나보다.)

나 ; "맙소사!!! "


다음날부터 다른 요리 조에서 같이 밥 해 먹으라고 했지만, 장 볼 때부터 준비해 간 재료가 다르니 많이 난감했어요. 그 조엔 요리 잘하는 친구가 있어서 고맙게 요리한 걸 나눠줬어요. 저한텐 달걀만 많으니 계속 달걀 요리를 먹었구. 감자를 챙겼다면 더 나았을까요?

(숫기 없는 막내는 다른 조 친구들에게 피해가 갈까 봐 괜찮다며 있는 재료로 버틴 거 같았다.)


이런 일도 있었어요! 

다음날 한 친구가 갑자기 마요네즈를 막 입에 짜 넣더라고요..

" 나도 집에 갈래!! 나도 배탈 나서 집에 갈 거야!~~" 하면서요. 그래서 친구들이 많이 웃었어요. 캠프가 갈수록 많이 힘들어지니 집에 간 친구들을 부러워하는 아이들이 많았어요.


보기 딱할 정도로 핼쑥해 막내 이야기를 듣다 나도 모르게..

" 그 치킨을 더 열심히 먹었어야 했네.. 젓가락을 좀 더 빨리 찾지.. "

말하면서도 이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인가 했다. 힘들었지만 아파서 하루만에 돌아왔다면 더 마음 아팠을 걸..


손주를 아끼는 할머니의 사랑은 더운 날씨를 못 이기고 친구들을 갑작스럽게 섬에서 떠나게 만들었고.. 조원을 잃고 홀로 남겨진 막내는 굶주려야 했나 보다..


(캠프 안내문의 Albert Camus의 글귀.. photo by 서소시)


(사진 출처 ; Photo by Yu Hosoi on Unsplash)




(3편에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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