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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Aug 18. 2022

헤매면서 만들어가는 길..

(떠날 용기가 되어준 노래)

익숙한 곳에서 가족이나 가족 같은 지인들과 정을 나누며 잘 지내다가.. 어느 날 갑자기 낯선 곳으로 떠나야 한다는 건..

그것도 <이곳에서 몇 년>하고 기간이 정해져 있어서 주어진 시간을 잘 계획하고 미리 주할 준비를  수 있는 경우가 아니라, 정말 어느 날 갑자기 어딘지 모르는 곳으로 떠나야 하는 경우라면.. 누구나 많이 당황스럽고 난처할 거다. 우린 늘 그랬다.


매번 "혹시 몰라~" 하다가 갑자기 "가야 해!"로 전해 들은 남편의 발령 소식..

"갑자기? 그럼 집은? 애들 학교는? 이사는?"

당황할 새도 없이 남편은 늘 먼저 출발해 가야 했고 남은 문제들은 다 내 몫이었다.


매번 그랬지만 특히 싱가포르로 발령이 났을 때는 아이들은 영어도 전혀 못하는 상황이었고, 낯선 나라에 가서  적응하고 따라갈 수 있을까 걱정이 앞섰다. 어마 무시한 학비를 알아본 뒤로는 셋이나 되는 아이들 학비를 감당할 수는 있을까 참 난감했었다.


그 시기에 난 세 아이 육아로 내려놓았내 꿈을 다시 찾기 위해 분초를 나눠가며 열심히 공부하고 도전해서 하고 싶었던 일을 다시 시작했고 한 발씩 열심히 나아가고 있던 중이었다.

내 이름 다시 찾기!

육아로 인한 경력단절 상황에서 누구누구의 엄마가 아니라 다시 내 이름 세 글자로 불리기까지 얼마나 열심히 달려왔는지 모른다. 땀 흘려 일하는 즐거움도 새삼 다시 알아가며 보람되고 행복하게 일하고 있던 시기라 다 내려놓고 떠나기란 더 쉽지 않았다.


낯선 곳으로 갑자기 떠나는 일.. 해봐서 더 잘 안다고 해야 할까.. 게다가 이번엔 외국이지 않은가.. 뭐하나 쉽지 않아 보이는 상황에 겁이 났다. 아주 많이..

남편만 보내야 할까.. 어떤 선택이 최선일.. 진짜 내 꿈을 다 내려놓고 가면 나중에 후회하진 않을까.. 고민 많던 시간이었다.


그러던 어느 디오에서 흘러나오 노래가 마음에 와 꽂혔다. 동률 님의 <출발>이었다.

예전부 좋아하던 노래였지만 그때의 내 마음이 겁먹고 작아져 있어 더 그랬는지..

아주 멀리까지 가 보고 싶어
그곳에선 누구를
만날 수가 있을지
아주 높이까지 오르고 싶어
얼마나 더 먼 곳을
바라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가방 안에 넣고서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멍하니 앉아서 쉬기도 하고
가끔 길을 잃어도
서두르지 않는 법
언젠가는 나도 알게 되겠지
이 길이 곧 나에게
가르쳐 줄 테니까
촉촉한 땅바닥 앞서 간 발자국
처음 보는 하늘 그래도 낯익은 길
언덕을 넘어 숲길을 헤치고
가벼운 발걸음 닿는 대로
끝없이 이어진 길을
천천히 걸어가네

ㅡ 김동률, '출발' 가사 일부.. (출처; 멜론 앱)

세상 어딘가에서 누군가를 만날지..

어디까지 가 볼 수 있을지..

작은 물병 하나, 먼지 낀 카메라. 때 묻은 지도 한 장 들고 낯선 길을 걸어가는 모습이 눈앞에 막 그려지면서..

세상 어디든 오지만 아니면 사람 사는 곳은 비슷할 테고 그 속에서 살아가삶의 모습도 다 비슷할 거란 생각이 들었다. 낯선 곳으로 떠나는 삶을 두려워만 하지 말자 싶었다.


두려운  뭘까 가만가만 되짚어봤다.

아이들이 가서 언어나 문화, 공부 문제로 힘들어 하진 않을까?

값비싼 물가와 렌트비, 교육비?

돌아온 뒤 나는 내 일로 다시 돌아올 수 있을까?

가족 중 누가 아프면 먼 나라에서 어떡하지?


답답한 마음에 다시 꿈을 찾는 과정에서 많은 도움을 주셨던 멘토 선배님께 여쭈어봤다. 좋아하는 일을 오랜 시간 노력해서 겨우 자리 잡고 재밌게 열심히 잘하고 있는데 아이들과 싱가포르로 떠나야 할지.. 

질문하며 새삼 깨달았다. 다른 어떤 이유보다도 내 일을 내려놓기 어려워하고 있다는 걸..


선배님은.. 

"너무 잘하고 있는데 다 내려놓기 힘들겠어요. 그런데 이제껏 다른 집 아이들 가르치느라 정작 내 아이들과 시간을 많이 보내지 못했으니.. 이번엔 내 아이들과 소중한 추억 만들라고 주신 선물 받은 시간이라 생각해 보세요."


아 ~~ 낯선 곳으로 떠나는 게 무서워서, 조금씩 자리 잡아가는 성과와 노력을 인정받는 기쁨에 들떠서 이런 생각은 해 보지 못했다. 나를 찾는 동안 소중한 우리 아이들과 함께하는 시간은 많이 놓치고 있었는데.. 잃을 것만 먼저 보느라 얻게 될 것은 보지 못했나 보다. 쥐고 있는 욕심을 내려놓으면 다른 게 보일 텐데..


다시 돌아와 노랫말을 새겨 들어봤다. 그리고 싱가포르에 오기 전부터 아이들과도 함께 들으며 이야기했다.

우리가 준비 없이 낯선 나라로 떠나야 하지만..

그곳에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을지..

얼마나 멀리까지 가 볼 수 있을지..

렇게 지도 위에 우리 발자국을 한 발씩 남겨가 천천히 걸어가 보자고..

그렇게 이 노래는 우리 가족에겐 싱가포르에서의  새 출발, 도전을 위한 응원가가 되었고 이곳에 와서도 기회 될 때마다 합창하며 목이 터져라 같이 불렀다. 서로를 응원하고 다독이면서..


아무도 가보지 않은 길은 그저 두렵고 선뜻 나서기가 쉽지 않다. 하지만 가봐야 안다. 모르던 길도 다녀봐야 아는 길이 되고, 헤매다 돌아서 나오더라도 가봐야 길이 있는지 아닌지 알 수 있다. 빠르게 가는 지름길일지.. 멀리 삥삥 돌다 헤매게 될 미로 일지.. 가보지 않고 누가 장담할 수 있을까.. 같은 길도 어떤 이에겐 식은 죽 먹기처럼 쉬운 길일지 몰라도 겐 끝없는 고난의 길로 여겨질 수도 있더라는..

싱가포르에 와서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했던 이야기다. 가보지 않고 어떤 길이 있을지 어떻게 아냐고.. 남들이 편하고 쉽게 갈 수 있는 길이라며 가르쳐 준다고 그 길이 나에게도 그럴 거란 보장은 없으니, 좀 돌아가고 헤매더라도 지치지 말고 가보자고..


금도 이 노래를 들으면 그때의 걱정들과 설레지만 두려웠던 감정들이 떠오른다. 이만큼 걸어와서 뒤돌아보니.. 모르는 길 걸어오며 헤매느라 고생한 아이들이 보여 마음 아픈 부분도 많지만, 어느새 이만큼 걸어왔고 우리만의 새로운 길을 만들어 가고 있구나 싶다.


나아가고 볼일이다. 한발.. 한걸음..

그 첫걸음을 뗐다면 묵묵히 걸어가 보자. 아직도 갈길이 멀고 더 가봐야겠지만 그렇게 헤매면서 우리만의 길을 만들어가고 있으니..





(사진출처; Pixaba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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