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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May 10. 2022

“나는 한국이 정말 궁금해요!”

외국에서 크는 사춘기 아이의 한국 바라기

요즘 싱가포르 어느 쇼핑몰을 가도 여기가 한국인가 싶을 만큼 한국 아이돌 노래만 나오고 오징어 게임 인형이 가게마다 려있는 상황이다.

굳이 '한국 마트'를 따로 찾아가지 않아도 집 앞 슈퍼에서 한국 음식을 종류별로 만날 수 있다.

(처음 우리가 싱가포르에 왔을 때를 생각해 보면 지금은 여기가 한국과 뭐가 달라 싶을 만큼 많은 한국 물건들이 들어와 있다. 엄청 비싼 게 문제지만..) 심지어 김치도 종류별로 구입할 수 있다. 맛김치, 포기김치, 총각김치, 열무김치, 갓김치, 깍두기 심지어 묵은지까지.. 구경하기 어려웠던 귀하디 귀한 깻잎도 보인다.


한국에서 온 파릇파릇한 냉이와 달래, 돌나물을 구입한 날은 행복해서 절로 콧노래가 나왔다. 이 더운 싱가포르에서 봄을 느낄 수 있다니.. 한 잎 한줄기 상할새라 조심하며 한 상 가득 봄 밥상을 만들어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얘들아~ 이거 봄에 나는 귀한 봄나물들이야. 겨우내 꽁꽁 얼어있던 땅을 뚫고 올라온 생명력으로 봄을 알리는 친구들이란다."

아이들과 한국의 봄을 이야기하며 귀한 한 끼를 행복하게 먹었다. 봄이면 힘들게 캐 온 쑥으로 떡도 만들어 주시고 쑥국도 끓여주시던 엄마 마음을 알 거 같았다.

타지에서 오래 살다 보니 이런 식재료가 눈물 나게 반갑고 고맙다.


'와 ~ 이만하면 외국에 있어도 향수병 없이 살만하다.' 싶을 만큼의 변화다. 싱가포르에서 오래 살고 있는 지인분들도 요즘 같으면 장본 물건 배달도 되고, 없는 거 빼고 다 있어서 너무 살기 좋아졌다고들 하신다.

싱가포르 안으로 성큼 들어온 한국이 반가운 건 익숙하던 것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리라.




'한국'에 대한 이야기를 하다 보니 '한국 바라기'가 된 둘째와 있었던 일이 생각났다.

시작은 이랬다..

어느 날 학교를 다녀온 둘째가..

엄마, 전 한국을 너무 몰라요! 진짜 심각하게 몰라요."

"응? 왜 그렇게 느껴? "

"한국 여행 갔다 온 친구 C가 너 여기 가봤어하고 묻는 곳들 전부 하나도 아는 곳이 없어서 계속 몰라~ 만 했어요.


아이구나.. 얼마 전 한국으로 가족 여행을 다녀온 반 친구가 다녀온 곳을 보여주며 아는 곳이냐고 물어온 모양인데, 한국에 대한 기억이 많이 없는 둘째는 다 모르는 곳이라 답답했던 모양이다.

"진짜 한국 사람이 이렇게 모를 수가 없어요!"

"심지어 독일 친구 M은 삼촌이 한국에서 일하며 살고 있어서 일 년에 두 번씩 한국을 간대요. 그래서 그 친구가 더 잘 알더라고요."


"난 몰라~"만 말하며 답답했을 아이가 안쓰러웠다. 아이들이 다녀온 곳은 서울인데 정작 둘째는 서울을 모르니.. 싱가포르에 온 이후로 한국을 몇 번 다녀왔지만, 셋 모두 다른 학교를 다니고 있어 방학 일정이 달랐고, 가도 짧은 일정에 할머니 집이나 친척집, 병원 다니다 오기 바빠서 제대로 구경을 다니거나 하진 못했다.


초등학교 1학년을 마치고 왔기에.. 언니와 손잡고 학교 가던 길이며, 그 길에 떨어져 있던 은행 냄새가 싫어서 언니와 달려서 도망친 기억, 눈이 소복하게 내린 아침 눈사람 만들어 차 위에 올려놓고 즐거워했던 기억, 학교 앞 문구점에서 팔던 맛있는 컵떡볶이와 슬러쉬..  

한국을 가도 둘째가 기억하는 우리가 살던 동네로 가는 게 아니라, 할아버지, 할머니가 계신 아빠 고향으로 가는 거라 아이들이 기억하는 한국의 모습과도 다를 수밖에 없었다.


한글 받아쓰기도 완벽하지 않았을 때 갑자기 싱가포르로 온 둘째는 학교를 다니며 이곳에 적응하려 많이 노력했다. 라디오에서 들려오는 노래가 무슨 말인지 하나도 모르다가 어느 날부턴가 그 노래를 따라 불렀고 영어가 조금씩 편해지기 시작했다. 이곳이 좋은 이유를 날마다 찾으며..
"초록색이 많아서 좋아요.", "맛있는 음식이 많아서 좋아요.", "사람들이 문도 잡아주고 친절해서 좋아요."

그렇게 이 나라에 정을 붙이며 잘 적응해 주었다.


5학년을 마치고 와서 한국에 대한 기억이 많은 큰 아이와 달리, 기억이 많이 없으니 한국에 대한 궁금함이나 그리움도 덜한 줄 알았다. 그런데 아니었나 보다.




어느 날인가는 수업 시간에 선생님이 여행 다녀온 한국 사진 중 하나를 아이들에게 보여주며 이 글자가 뭐냐고 유일한 한국 아이였던 둘째에게 물어봤다고 한다. 아이는 모두가 자기를 쳐다보고 있고 처음 접한 어려운 한글에 당황했지만, 사진을 자세히 보고 설명해 주었다며 혹시 잘못 말한 걸까 봐 걱정했다. 


무슨 사진이었나 들어보니 고속버스 터미널 사진이었나 보다.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기다리고 있고, 버스들이 많았다고.. 사진에 큰 글씨로 안내문이 있었는데 설명한 내용을 들어보니 “환승”이란 글자였나 보다. 제대로 설명한 게 맞냐며 긴장하던 둘째.. 우린 집에서 우리말로 대화하는데도 일상생활에서 자주 안 쓰는 말은 많이 잊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정작 아이는 한글로 씌인 안내문보다 한국의 터미널 자체가 기억이 안 난다고 속상해했다.

버스 타고 여행 간 기억이며 고속버스 휴게소 같은 곳은 기억에 없다고 했다.

KTX를 탄 기억도 없다고..  

"정말? 우리 할머니 집 갈 때 고속버스 휴게소 들러서 맛있는 거 많이 사 먹고 했잖아. KTX도 가운데 마주 보는 자리 표 사서 막내 테이블에 앉혀서 가고 했잖아." 답답해진 첫째가 이야기해도 정작 둘째는 생각이 안 난단다.


기차 탈 일 없는 싱가포르에 사니 너무 기차가 타보고 싶다는 아이..  

우등 고속버스를 타면 어떤 기분인지, 도로마다 너무나 잘 되어있는 고속도로 휴게소에 얼마나 맛집이 많은지 들려주다가 유튜를 찾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다른 나라 여행 가기 전 가볼 곳 찾아보는 것도 아니고 참..

몇 가지 영상을 보던 둘째는 내게 외쳤다.

“나는 한국이 너무 궁금해요! 정말 가보고 싶어요.”

타국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지니 아이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궁금해지고 있다.


찾아보는 김에 더 보자 하고 "한국의 시장"을 보여줬다. 진짜 기억나는 게 없어 물어보면서..

(감사하게도 여러 유튜버님들이 아주 먹음직스러운 먹방까지 보여주시며 시장을 잘 소개해 주고 계셨다.)

"엄마!!  저 저거 다 먹을 거예요. 담에 한국 가면 시장부터 가서 저기 나오는 거 다 먹을 테니 말리지 말아요."

"한국을 먹으러 가겠다고?"

"네!!!~~~~"

집이 떠나가라 외치고 있었다. 사춘기가 되면서 먹는 것에 진심인 둘째..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오래 한국을 못 가고 있으니 아이는 한국이 너무 그리웠나 보다.




그리고 한국이 그리워진 또 하나의 계기가 있었다.

싱가포르 라디오에서 한국 노래가 나온 건 얼마 전부터다. 영어 가사가 아닌 노래는 잘 틀어주지 않는 건지..

반면 쇼핑몰에 가면 온통 한국 아이돌 노래다. 접할 기회가 없어 큰 관심이 없더니.. 사춘기가 되면서 찾아 듣기 시작했고 어느 날인가는 이렇게 말했다.

한국어 가사는 정말 영어 가사와 다르네요. 표현이 너무 다양해요. 영어로 표현할 수 없는 우리말만의 표현이 있다니..”

외로운 마음을 공감해주고 위로가 되어주는 가사들을 찾은 후로는 한 아이돌 그룹의 팬이 되었다.


사춘기 시기에 우리 딸이 아이돌 덕후가 된다고? 나는 열렬히 지지하고 응원했다.

아이가 힘들 때, 외로울 때, 지칠 때.. 위로가 되어주고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힘 낼 수 있게 격려해주는 노래를 찾았다는데 그 얼마나 감사한 일인가.. 정서와 문화가 다른 친구들 속에서 마음고생이 많았은데, 친구들과 다 나누지 못한 마음의 짐을 덜어주고 위로해주는 우리말 가사와 멜로디로 아이에게 위안이 되어준다니 그 아이돌 그룹이 진심으로 고마웠다.  덕에 아이는 우리말 표현력과 어휘력이 급격히 늘었다. K 팝 가수들 덕분에 한국어 배우는 와국인이 많다더니 우리 집에서 경험할 줄이야..




오래 떠나 있었더니 아이는 오히려 우리나라가 너무 궁금하고 가보고 싶은 곳이 되었다.

어릴 적 학교 앞 그 골목길이.. 학교 앞에서 먹던 떡볶이가..

한국의 서울이.. 고속버스 휴게소가.. KTX가.. 지역마다 특색 있는 시장들이..

맛있는 길거리 음식들이.. 위로가 되는 우리말 노래가..

아이 마음속에서 한국으로 달려가고 싶게 요동치나 보다..

하늘길이 열리고 마음 편히 한국을 갈 수 있게 되면 둘째 손을 잡고 시장부터 찾아가야 할 거 같다.

물론 사랑하는 가족들부터 만나고 난 후에..

글을 쓰다 보니 한국이 .. 가족들이.. 너무 그립다..





사진출처 : Photo by Mike Swigunski on Unsplash






< Daum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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