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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Jun 28. 2022

요리 똥손이지만 해외에서 김치를 담게 된 이유

"여보 저녁에 회식 있어요. 싱가포르 동료들과 김치찌개 집 갈 거예요. "

"네? 김치찌개요?"

". 그 김치찌개 좋아하는 Y 씨와 식사할 거예요."

~~ 김치찌개 마니아 Y 씨..

같이 하는 동료분 중 싱가포르인 Y 씨는 치찌개를 너무 좋아한다고 했다.

김치 숲(Soup)이라고 하면 무슨 일이 있어도 달려온다는 Y 씨.. 


김치 마니아 Y 씨와 회식을 할 때면, 그의 부탁으로 싱가포르에 있는 김치찌개 파는 한국 식당을 골고루  찾아다니고 있다 했었다. 그 덕에 그가 어느 경지가 되었냐 하면..

"이 집은 뭔가 빠진 듯 조금 덜 매워. 난 저번에 같이 먹었던 그 집이 더 맛있는 거 같아." 한단다.

하도 맛있게 먹고 좋아해서 왜 김치찌개가 그렇게 좋냐고 물었더니..

"세상에서 제일 맛있는 음식이야. 그런데 우리 부인에게 만들어 달랬더니 자꾸 김치를 물에 빠뜨려서 김치찌개가 아니라 김치 물을 만들어!" 하며 속상해했단다.


남편 얘길 듣다가 푸하하 웃고 말았다. 신혼 때 내가 끓인 김치찌개를 먹고 남편은..

"음.. 그래 애썼어. 그런데 다음부턴 만들지 마!" 했었다.

그렇다.. 부정하고 싶지만 난 요리 똥손에 가깝다.

쉬워 보이지만 은근 우리 음식의 깊은 맛 내기가 얼마나 어려운가.. Y 씨 부인 마음이 헤아려졌다.


몸에도 좋고 맛도 좋은 한식..

'그렇지~ 우리 음식이 얼마나 맛있는데..'

싱가포르에 살면서 한식 좋아하거나 김치 좋아하는 분들 만날 때면 괜히 뿌듯하고 어깨가 으쓱여졌다. 몇가지 소개해보면..




첫째 학교 친구 중 홍콩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캐나다에서 자란 친구 T는 아침 식사로 구운 식빵 위에 김치를 얹어 먹고 다고 했단다. 캐나다에 있을 때부터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자주 그렇게 먹었다며 갓 구운 빵 위에 얹어 먹는 김치 너무 맛있지 않냐고 했단다. 그 이야길 듣고 온 첫째는 따뜻한 밥 위에 김치 조합은 언제나 최고지만 갓 구운 식빵 위에 김치라니.. 이해할 수 없었다고 했다. 김치를 좋아하고 즐기는 방법도 본인들 취향대로 즐기는구나 싶었다.


김치 사랑 또 다른 마니아는 싱가포르 동료 A 씨의 부인도 빠질 수 없다. 싱가포르인 A 씨는 김치가 너무 매워 본인은 자주 먹지 못하는데 태국인인 부인은 김치를 너무 좋아해서 김치 없이 밥을 못 먹는다고 했다.

한 번은 이 가족이 같이 한국식당에 가 달란 부탁을 해왔다. 어떤 메뉴를 시켜야 하는지 잘 못 고르겠다며 진짜 한국인들은 한국 식당 가면 무슨 메뉴를 시켜 먹는지 궁금하다고 했다.

그러고 보니 둘째 중학교 싱가포르 친구들도 자주 부탁하이야기였다. 같이 한국식당 가고 싶다고.. 제대로 한식을 즐기고 싶어 하는 부탁일 테다.


그래서 단골 식당에 같이 가서 우리가 좋아하는 메뉴를 시켰다. K BBQ만 종종 먹어봤다는 그 가족에게 우리의 추천은 호불호가 있었다. 그 댁에도 어린 아들이 있어서 우리 아이들이 좋아하는 돈가스를 주문했는데 소스가 덮여 나오는 우리식 돈가스 비주얼은 별로인 듯했다. 바삭하게 틔겨진 일본식 돈가스를 더 선호한다고 했다.


반면에 역시 K BBQ는 모두에게 인기였다.

고기를 구우면서 김치를 같이 구워 먹는 걸 보여줬더니 너무 좋아하며 신 맛있다고 했다. 이렇게 안 먹어봤다며 새로운 김치 맛에 즐거워했다. 고기 기름에 구운 김치 맛을 처음 알게 된 그녀가 얼마나 기뻐하던지..


한식에 대한 외국분들의 반응 중 기억에 남는 분은 우연히 탄 택시의 기사님이다. 한국인이냐 물어보시던 기사님은 개인적으로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한다고 하시며, 한국 음식은 정말 맛있지만 진짜 그 돈 내고 사 먹냐고 물어보셨다.  

"아.. 여기 한국 식당 한국 음식 가격이 비싸긴 해요."

가격이 너무 비싸다고 물어 보신 건가 하고 대답했더니.. 기사님이 이야기하신 건 뜻밖에도 한국에서의 음식 가격이었다.


한국 음식을 너무 좋아해서 한국 가서 먹으면 좀 더 쌀까 싶어 한국 여행을 가셨단다. 가이드에 소개된 유명한 식당을 찾아간 것도 아니고, 길 가다 들어간 어떤 식당에서도 SGD $10로 먹을 수 있는 음식이 별로 없었다며 그렇게 비싼데 어떻게 사 먹냐며 놀라웠다 하셨다.

한국 물가에 너무 놀랐다고 하시며 한국인은 다 부자인 거 같다고 하셨다. 모든 식당이 다  비싸지 않다며 안타까워하다 다시 생각해보니,  호커센터에 익숙한 분들이니 그럴 수 있겠다 싶었. 호커센터에선 SGD $5불 정도면 한 끼 맛난 식사를 할 수 있으니 그 차이가 더 크게 느껴진 게 아닐까..

(이 이야기 들었을 때 환율이 800원 초기였던 시기니.. $5면 한화로 4,000원 정도면 식사가 되던 시기였다.)


남편과 같이 일하는 벨기에 분들도 김치를 좋아하고 맛있게 먹는다는 얘길 듣고는 "김치" 좋아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구나 싶었다. 그래서 어느 해 명절에 외국 동료분들, 친구가 된 분들께 작은 선물이라도 하나 나누고 싶은데 다른 먹거리보다 우리의 맛 "김치"를 주면 많이 좋아할 거 같았다.


고민해서 준비해 보낸 김치를 받자마자 다들 너무 좋아했다.

그리고는 모두 똑같이 "네가(네 부인이) 직접 만든 거야? "하고 물었다.

"우리 친구가 만든 거야."

에구나.. 홈메이드 김치라고 하고 주니 다들 그리 물었나 싶었다. 포장된 김치도 많이 팔지만 갓 담은 김치가 더 맛있을 거 같아서 자주 가는 단골 한국식당 사장님에게 따로 부탁해 만들어 보냈었다. 단골 사장님도 우리 친구니 틀린 말은 아니지만 뭔가 부끄러웠다.




사실.. 김치를 좋아하는 외국인들을 만나면 제일 많이 듣는 말은 이 말이었다.

"네가 김치 만들지? 한국인은 김치 다 만들  알지?"

매일 밥상에 김치 없이 밥 못는 한국인들이니 김치 만드는 건 당연하지 않냐는 반응이었다.


언젠가 영어 교실에서 만난 다양한 나라에서 오신 분들과 서로의 음식을 싸와서 같이 나눠 먹는 자라가 었었는데 거기서도 이 질문이 나왔다. 김치의 나라 한국이니 모두가 김치 정도는 눈 감고도 뚝딱 만들 수 있는 거 아니냐고 했다. 그 교실에 한국인은 나와 다른 한 분이 더 있었는데 그분과 서로 마주 보고 동공 지진이 제대로 일었다.


음.. 부끄럽게도 "당연하지~"하고 답을 하기 어려운 현실에 난감했다.

"물론 솜씨 좋은 분들은 직접 만들지. 그런데 김치는 생각보다 만들기 어려운 음식이야. 많은 정성과 노력이 어가지. 손맛이 중요한 음식이거든. 한국에 살 땐 주로 엄마나 시어머니가 보내주신 김치를 받아먹었어. 난 그분들 솜씨를 흉내 낼 수 없어 도전하지 못해. "


변명이지만 정말 진심인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다른 나라 분들은 아주 의외라는 반응이었다. 한국인은 김치 없이 밥 못 먹으니 당연히 다 만들 줄 안다 생각했다고.. 파는 김치도 정말 맛있어 그렇게 말하려다가 삼키고 말았다. '.. 그들 시선에선 이게 당연한 일로 보이는구나.'


한국인의 위대한 발명품 김치냉장고 덕분에 늘 먼 타지에 살았어도 감사하게 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를, 일 년 내내 갓 담은 듯 맛있는 맛으로 먹을 수 있었으니 아쉽지 않게 잘 먹었었다. 김장철에 김치 담는 그 고된 수고로움을 같이 거들기는 했지만.. 멀리 산다고 내가 직접 만들어 봐야겠다 싶은 적은 없었다. 김치 못 담는 걸 부끄럽게 느껴 본 적도 없었다.


그런데 그날 그 교실에 있던 일본분 중 E가 자긴 김치 만들어 먹는다는 게 아닌가.. 유튜브에 찾아보고 사과를 갈아 넣어서 만들어 봤더니 맛있더라고 했다. 막 요리 유튜브를 시작했다는 그녀는 다른 분들이 칭찬하는 대단한 솜씨의 요리사이기도 했지만 그녀가 김치를 담아 먹는다니 기분이 묘했다.


'아.. 이 상황이 뭐지..'

우리나라 대표 음식 김치인데.. 그날 처음으로 김치 담을 줄 모른다는 게 부끄러웠다. 난 그동안 뭐했지 싶었다.


그 일본 친구 E 때문에 자극받고 집에 돌아와서 엄마에게 김치 어떻게 담으면 되냐고 여쭤봤다.

"그거 너도 많이 도와 봤잖아. 해보면 쉬워. 찹쌀 풀 쑤어서 식히고.. 고춧가루 적당히 넣고.. 액젓도 좀 넣고.. 새우젓 넣고.. 마늘, 생강 갈아 넣고 섞어가며 맛을 봐.. 부족한 거 더 넣으면서 하면 돼. 해보면 금방 해."

참.. 이게 어디가 쉽다는 건지.. 조금은 얼마가 조금이고, 적당히는 어느 정도가 적당히인지..

그 손맛을 어찌 흉내 내라는 건지..

잘 모르겠다는 내게 엄마는 이렇게 알려주셨다.

"맛을 봐. 네가 먹고 자란 맛을 기억하니 혀가 기억하는 맛이 있을 거야. 그걸 믿어봐."


영 자신 없었지만 한국인의 자존심이 있지 싶었다.

마트에 가서 배추를 둘러봤다. 배추는 중국산과 호주산이 있었는데 비싸도 보기에 배춧잎이 좀 얇은 호주산을 골라 들었다. 더운 나라라 겉절이가 적격일 거 같아서였다. 첫 시도니 한 포기만 해볼까 하다 식구도 많은데 싶어 두 포기를 담았다.


싱가포르에서 김치를 담아본 친구에게 물어보니 찹쌀풀 만들어 식히고 하면 맛있지만 더운 나라니 무와 배를 많이 갈아 넣고 담아도 시원해서 좋았다 했다. 찹쌀풀 없이 무와 배로 김치를 담는다고? 마음 따뜻한 친구가 담았다며 나눠준 김치는 정말 시원하고 맛있었다. 그 시원함이 무와 배였구나 싶었다. 일단 해보자 싶어 무와 배도 골라 담았다. 쪽파도 담고 마늘도 담고..


재료를 잔뜩 사 와서 시작하려니 참 우리 김치가 얼마나 정성 많이 품은 음식인지 새삼 어머님들께 감사했다. 늘 해주시니 이리 손 많이 가는 음식인걸 잊고 당연하게 받아먹었구나 싶었다.


배추와 무를 썰어 씻고 소금에 절였다. 더운 나라고 배추가 얇아서 배추는 1시간 정도 절여도 잘 절여졌다. 무도 30분 정도면 충분했다.  


친구가 알려준 대로 무와 배를 넣고 갈았다.


갈아놓은 무와 배에 각종 양념을 넣고 김치 양념을 만들면서 손이 떨렸다. 요리 똥손인 내가 호기롭게 일은 벌렸지만 대체 어떤 맛이 나올지 상상도 안됐다. 양 개념을 모르니 고춧가루도.. 액젓도.. 새우젓도.. 찍어 먹고 더 넣고, 찍어 먹고 더 넣고를 무한 반복했다.


이래저래 엄마 설명과 유튜브를 참고해가며 재료를 섞었더니 뭔가 전에 본 듯한 모습이 나왔다.

하도 여러 번 손가락으로 양념을 찍어 먹어 맛이 헷갈렸지만 여러 번 찍어 먹다 보니..

'어.. 왜 김치 맛 비슷하게 나지?' 싶었다.

엄마 말씀이 맞았나 보다. 먹고 자란 맛은 혀가 기억하나 보다..


어설프지만 그렇게 내 생애 첫 김치는 완성됐다. 요리에 늘 자신 없는 요리 똥손 입장에선 기적 같은 일이었다. 가족들은 아는 김치 맛은 아니지만 시원한 맛이 난다며 잘 먹어줬다. 신맛 나는 김치가 아니라 갓 담은 햇김치 맛이 오랜만이라며 고맙게도 신나게 먹어줬다. 무와 배를 갈아 넣어 덜 매운맛이라 아이들은 오히려 잘 먹어줬다.

잘 먹는 아이들을 보니 이래서 김치를 담는구나 싶었다.


결코 당연한 일이 아닌데.. 당연한 듯 부모님이 보내주신 김치만 받아먹다가..

이렇게 먼 타국에서 김치를 만들어 먹을 줄 몰랐다.

한국인은 매일 먹는 김치니 당연하게 눈감고도 뚝딱 만들지 않냐는 시선이 좋은 자극제가 되어 주었다.  

시작이 반이라고.. 겁내지 말고 도전해 볼 일이다.

뭐든 도전하고 시작해봐야 느는 법인 거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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