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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Sep 08. 2022

비행기에서 만난 부자, 그녀

따뜻한 마음이 전해주는 위로

9A..

창가 쪽 자리를 찾아 앉았다. 여유롭게 홀로 탄 비행기..

결혼하고 엄마가 된 지 십수 년이 흐르는 동안 처음으로 혼자 탄 비행기였다. 오랜만에 한국을 가면서 반갑고 기뻐야 할 텐데 걱정으로 가득 찬 마음은 한없이 무거웠고 복잡했다. 아이들 없이 혼자니 챙길 짐도 신경 쓸 일도 없이 여유로운데 뭔가 빠진 거 같고 허전해서 마냥 편하지 않았다. 아이들 방학도 아니고 긴 연휴도 아닌데 급하게 비행기표를 구해 떠나는 길이었다.


얼마 전부터 스치기만 해도 아픈 부위가 있었다. 한번도 그런 적이 없었는데 잘못 자서 그런 건가.. 무언가 벌레에 쏘여서 그런 건가.. 며칠 지나면 나아지지 않을까 지켜봤는데 통증은 갈수록 더 해지고 있었다. 이유를 알 수 없으니 괜히 더 불안했고 잔뜩 긴장해서 신경 쓰고 있어서인지 작은 통증에도 예민해져서 더 크게 느껴지는 거 같았다. 자주 다니는 클리닉에 가봐야 하나, 아니 그보바로 전문의를 찾아가야 하나 불안했다. 그만큼 통증은 심해지고 있었다.


싱가포르에서 살면서 아프면 기본적인 진료는 집 근처에 있는 클리닉을 갔다. 처음 이곳에 와서 참 당황스러웠던 게 사실 병원이었다. 감기 증상에도 클리닉.. 피부에 뭐가 나도 클리닉.. 다리를 다쳐도 일단 클리닉 갔다가 엑스레이 찍을 수 있는 병원을 따로 예약하고 가서 찍은 후, 결과는 다시 클리닉에 와서 들어야 했다. 아이들 감기로 집 근처 클리닉을 가면 대기가 길어 2시간 넘게 기다려서 의사 선생님 5분 만나고 콧물 나면 콧물약, 기침 나면 기침약만 받아 나오는데 SGD $65이었다. (당시 환율을 고려해보면 54.000원 정도였다.) 비용도 비용이지만 증상에 해당하는 약만 주는 상황이 낯설었다. 간단한 증상은 그런대로 괜찮지만 좀 더 복잡한 증상들은 짧은 영어로 제대로 정확하게 표현할 수 있을지, 또 의사 선생님 말씀은 잘 알아들을 수 있을지 늘 긴장했었다.


증상이 더 심하거나 다른 검사가 필요한 경우,  더 전문적인 치료가 필요한 경우에는 '스페셜리스트'라 불리는 전문의를 찾아 더 큰 병원으로 찾아가야 했다. 급해서 바로 찾아가면 대기도 길고 진료비도 더 많이 내야 했다.


전문의를 찾아가 검사한 후 증상이 어떤지 설명해줘도 전문적인 의학용어를 잘 이해할 수 있을지 걱정이 됐다. 한번은 원래 편도 한쪽이 큰 편인데 심한 감기로 편도가 많이 부어오르자 클리닉에서 전문의 진료를 권해서 찾아가 진료 받았었다. 원래 편도 한쪽이 크다고 설명하자 정확하게 얼마나 컸는지 이즈를 묻는 질문에 제대로 대답을 못했고 정밀 검사를 권유 받았었다. 한국에서도 감기가 심할 때면 편도가 많이 부어 경험해 본 일이라 많이 놀라진 않았지만 정확한 기록이 있지 않으니 어째야 하나 당황했었다. 다행히 며칠 약먹고 푹쉬어 잘 회복됐었다. 아는 증상에도 당황스러웠는데 모르는 통증은 설명해도 이해할 수 있을까 겁이 났다. 주위분들도 큰 병일수록 한국으로 가는 게 낫다고들 했다. 혹시 정말 큰 병일지 몰라 불안해하니 남편은 어서 한국에 가서 검사받아 보라고 했다. 아이들이 다 학기 중이라 갈 상황이 아니었지만 다음 방학까지 기다리려면 몇 달이나 기다려야 하니 그럴 상황도 아니었다.


고민하다 급히 비행기표를 끊고 한국행을 결정했다. 남편이 급하게 휴가를 내고 아이들 챙기겠다고 해줘서 가능한 일이었다. 병원 갈 일이 생겨 혼자 잠시 다녀오겠다고 했더니 첫째는 대문 앞에 놓인 가족의 신발 개수가 줄어드는 꿈을 꿨다며 울음을 터트렸다. 아이들까지 괜히 불안하게 만들었나 싶어 마음이 더 무거웠다. 급하게 병원 가봐야 해서 들어간다고 하면 분명 부모님들은 많이 놀라실 거 같아 조용히 다녀와야겠다 싶었다. 친정 언니네 집에서 며칠 지내며 병원가자 싶었다.


그런데 어쩜 이런지.. 계획한 대로 뜻대로 잘 풀리지 않는 세상살이.. 언니에게만 급하게 결정된 한국행을 알리고 출발할 즈음에 마침 조카들이 차례로 독감에 걸려 많이 아프다고 했다. 행여 와서 옮으면 안 되니 조심하자는데 언니네로 못 가게 되니 갈 곳은 시댁뿐이었다. 친정은 병원에서 많이 멀고, 솔직히 혼자 호텔로 갈까도 고민해 봤지만 휴가 가는 것도 아니고 불안함 안고 병원 가는 길이니 거짓말하고 마음 졸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시부모님께 한국행을 알렸다. 많이 놀래시며 행여 어디가 많이 아픈 걸까 엄청 걱정하시는 모습에 가기도 전부터 죄송했다. 미리 걱정 끼치는 게 싫어 조용히 다녀오려고 한 건데 여러 가지로 마음이 무거웠다.




그렇게 비행기에 홀로 앉아 가면서 결혼 후 처음 가져보는 짧은 휴가를 이런 이유로 갖게 되다니.. 자꾸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뭔가 자꾸 서러웠다. 돌아오는 비행기에서 웃으며 아이들 만나러 갈 수 있을까 싶고, 정말 어디가 심각하게 아픈 거면 어쩌나 무서웠다. 지켜야 할 아이가 셋인데.. 그래서 아프면 안 되는데..


자꾸만 흐르는 눈물에 진정해보려 애쓰고 있는데 옆자리에 앉은 분이 휴지를 건네줬다. 조용히 휴지를 건네주고 눈으로 웃어주던 그녀 T. 조금 진정되자 괜찮냐고 물어보며 조용히 웃어주던 그녀와 고맙다며 인사를 나눴다.

T : "혹시 가족 중 누군가의 부고를 받고 급히 고향 가는 길인가요?"

'아.. 그런 경우라면 얼마나 마음이 무너질까..' 문득 먼 곳에 살고 있는 우리니 있을 수 있는 일일 거 같아 마음이 아렸다.

나 : "아니에요. 아이들 생각을 하다 보고 싶어서 울었어요."

지켜줘야 할 세 아이들 생각 끝에 눈물이 난 거라 그렇게 대답했다.


T : "아이가 몇 명인가요?"

나 : "저 아이 부자예요. 세 명이예요."

T :  "당신이 부자면 전 재벌이네요. 전 네 명이거든요."

"하하하~~ "

서로 마주보고 대단하다 그랬다. 싱가포르인들도 아이를 많이 낳지 않는다 들었는데.. 그녀도 한국  출산율이 낮던데 하며 놀라워했다. 그렇게 아이 부자란 공통점으로 그녀와 아이들 이야기를 나누게 되었다. 나처럼 혼자 탄 그녀는 한국에서 환승해서 미국으로 출장 가는 길이라고 했다. 넷이나 되는 아이들은 어쩌고 왔냐고 했더니 자긴 헬퍼가 두 명이라고 했다. 막내가 어려서 막내 전담 헬퍼가 있어야 한다고.. 진짜 부자인가 보다 싶었다. 헬퍼를 두 명이나 두다니..


그런 그녀가 싱가포르 어느 동네에 사냐고 물어 사는 동네를 말했더니 오히려 내게..

T : "와~ 당신은 진짜 부자군요!" 했다.

센트럴에 가까운 곳에 살면 다 부자라며 자긴 외곽 지역에 산다고 했다. 이런이런~ 난 외국인이거든요. 그녀와 이런 이야기를 나누다 보니 언제 울었나 싶게 멀쩡해져 있었다.


T는 싱가포르에서 몇년 살았냐며 살아보니 뭐가 좋냐는 질문을 해왔다.

나 : "글쎄요.. 무엇보다 자연이 아름다워요. 초록 초록한 푸르름과 추위를 못 견디는 내게 싱가포르 날씨는 따뜻하게 느껴져서 너무 좋아요. 음식도 맛있는 게 많고요."

변덕스러운 날씨가 정말 좋은 거냐고 웃던 그녀는 그럼 반대로 힘든 건 뭐냐고 물어왔다.

나 : "물가가 너무 비싸죠. 렌트비며 학비며.. 아이들 학교도 로컬학교 들어가려면 어려운 시험을 쳐서 합격해야 기회를 주고.. 어렵게 들어가도 공부가 너무 어려워요."

T : "아이들이 로컬 학교 다니나요? 그럼 잘 알겠네요. 우리 애들도 아침에 깨워서 학교 보내기부터 너무 어려워요. 헬퍼가 그래서 두 명이라니까요."

과장되게 두 명을 강조하던 그녀 덕분에 웃음이 터졌다. 해도 안 뜨는 시간에 집을 나서야 하니 잠에서 못 깨서 교복입고 부모나 헬퍼 품에 안겨 있는 아이들 많이 봤기에 왜 그리 강조하는지 너무 잘 이해가 돼서 웃음이 났다. 그녀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눌 수 있어 감사했다. 혼자 계속 걱정하며 마음 졸였을 텐데..

왜 그렇게 슬프게 울었냐고 물어보고 싶었을 텐데 그녀는 유쾌했고 계속 다른 생각 못하게 말을 걸어줬다. 한국인 남편은 어떠냐.. 정말 K 드라마 속 남자들 같이 친절하냐.. 자기가 일하며 만나본 한국 남자들은 젠틀했는데 같이 살아도 그런 거냐 궁금해했다. 싱가포르 남편은 어떠냐 되묻는 내게 그녀는..

T : "당신이 집에서 보는 그 남자와 아마 비슷할 거예요." 했다.

 <집에서 보는 남자= 남편>은 전 세계가 다 똑같을 거라고.. 그렇게 함께 웃었다. 조금 전까지 펑펑 눈물 흘리던 난 그녀 덕분에 숨넘어가게 웃고 있었다. 애써 유쾌하게 대화해주는 그녀가 많이 고마웠다. 처음 본 사람이 사연 있어 보이게 울고 있는데 왜 우냐고 묻지 않고 자연스럽게 웃을 수 있게 도와주려는 마음이 느껴져서 진심으로 고맙고 또 고마웠다.


헤어지면서도 우린 지켜야 할 아이들이 많은 아이 부자들이니 지치지 말고 또 하루를 열심히 달려보자고.. 건강하자고.. 그렇게 인사를 나눴다. 




급하게 달려간 병원에서 검사를 받고 정말 다행스럽게도 당장 어떤 병은 아니지만 추적관찰을 하며 지켜보잔 설명을 들었다. 얼마나 다행스럽던지..

걱정하며 날아온 길이라 친구들에게 한국에 왔다고 알리지도 못했다. 아프다고 와 놓고 시댁에 있으면서 친구 만난다고 신나서 다닐 수도 없었다. 그럼에도 검사 결과 괜찮다 소릴 들으니 처음 가져보는 휴가인데 그리운 지인들 만나러 가고 싶었다. 나만을 위한 시간을 갖고 싶다가도 두고 온 아이들 걱정도 되고, 아파 왔음에도 마음 편히 쉴 수 없는 이상한 휴가였다.


그런 내 사정을 듣고 마음 아파해준 J가 기차타고 얼굴 보러 달려와주었다. 똑같이 아이가 셋이라 싱가포르에서 함께 의지하며 잘 지내다가 얼마 전 다시 한국으로 들어온 친구였다. 당일치기로 무리해서 새벽기차를 타고 달려와준 J 덕분에 따뜻한 위로를 받았고 즐거운 시간을 보낼 수 있었다. 마음이 고마워서 눈물이 났다.

첫아이 임신했을 때 따뜻한 밥 챙겨주던 고마운 H 언니와 같이 첫아이 낳고 서로에게 힘이 되어주던 고마운 S 언니도 오랜만에 만나 맛있는 한끼를 챙겨주셨다. 머나남의 나라에서 세 아이 키우며 고생많았다고 토닥여주는 언니들의 마음이 큰 위로가 되어 주었다.


다 말하지 않아도 어떤 마음인지 헤아려주던 J.. 그리고 H 언니와 S 언니..

'따뜻한 마음이 전해주는 위로'란 감동은 잔잔하나 깊이 있고 따뜻해서 세상 어떤 서러운 추위도 녹아내리게 하는 거 같았다. 의지할 곳 없이 먼 타지에서 홀로 세 아이 챙기느라 고군분투하다가 갑자기 어디가 아픈가 놀라고 서러웠던 마음이.. 처음 가져보는 휴가 아닌 휴가에 마음 편히 며칠 푹 쉬고 싶었으나 갈 곳 없어 결국 시댁으로 가야 했던 처지가.. 보고 싶고 만나고 싶은 지인들에게 연락도 못하고 그저 홀로 안부를 물으며 떠나야 하는 짧은 일정에.. 괜히 서럽고 또 서러웠던 시간이었다. 씩씩하게 제법 잘 버티고 살았다 싶었는데 아픈가 싶으니 무너져내리고 말았나 보다. 그런 서러움들을 가만가만 위로해주던 고마운 지인들이 있어 눈물나게 감사했다. 그리고 처음 보는 낯선 이의 울음을 웃음으로 바꿔준 비행기에서 만난 아이 부자, T.. 그녀의 배려로 걱정은 덜고 웃을 수 있었다.


괜찮다니 감사하며 다시 힘내서 잘 지내봐야지.. 누군가에게 나 역시 따뜻한 진심 전할 수 있는 유쾌한 사람이고 싶다. 우연히 만난 그녀처럼..

  







< Daum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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