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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Jul 16. 2022

둘이 안 먹는 과일..

"에구머니나~~"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생전 처음 맡아본 냄새에 코부터 부여잡았다.

"이게 무슨 냄새예요?" 아이들도 깜짝 놀라 물어왔다.

한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낯선 이 냄새는 뭔가 참기 곤란한 냄새였다.


집안으로 아이들과 대피하다시피 뛰어 들어갔다. 방금 이 냄새나는 무언가가 막 지나갔나 싶었다. 그만큼 강렬했는데 아는 냄새가 아니었다. 살짝 달콤한 향이 미묘하게 나는 게 오래 둬서 상한 과일 냄새 같기도 했다. 이웃집 두 곳 중 어느 집에서 쓰레기를 빨리 안 버렸나 싶어 원망스러울 정도였다.  

'대체 무슨 냄새가 이리 고약하지?'


그 궁금증은 며칠 뒤 바로 풀렸다.

모처럼 외식하러 나서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옆집 가족이 내렸다. 반갑게 인사하기가 무섭게 그 냄새가 함께 났다. 당황한 우리가 코부터 부여잡으며 이게 무슨 냄새냐 물으니 옆집 가족은 웃으며 이렇게 말해줬다.

"아.. 이게 바로 싱가포르에서 유명한, 지하철에 들고 타면 안 되는 그 두리안이에요."

"아!~~ 이 냄새가 바로 그거구나!"

강렬했던 첫 만남, 냄새의 정체는 '두리안'이었다.

(싱가포르 지하철 벌금 안내)

마주 보고 인상 쓸 수 없어서 웃으며 인사하고 돌아섰는데 이미 엘리베이터 안도 그 냄새로 가득해서 누가 오래 숨참나 내기하는 기분으로 버텨야 했다. 왜 대중교통에 들고 타면 안 되는지 확실하게 이해되는 순간이었다. 열려있는 공간인 복도는 그나마 나았던 거다. 갇힌 엘리베이터 안에서는 정말 힘들었다.


아이들은 숨 참으며 버티느라 얼굴이 뻘게졌다.

"냄새가 이렇게 독한데 왜 저걸 사갈까요?"

이해하기 어렵다는 아이들의 반응..

"심지어 이게 과일 냄새라구요?"

어이없어하며 묻는 질문에 웃음이 터져버렸다. 싱가포르에 사니 이런 신기한 경험도 한다 했었다.


그런데 그게 시작이었다. 옆집 가족이 좋아하나 보다 싶었는데 곧 콘도 전체에서 이 냄새가 나기 시작했다. 알고 보니 두리안 시즌이 돌아온 거였다. 일 년 중 6 ~ 8월에 두리안이 맛있는 시기라 지금 먹어야 한다고 했다. 


더 놀라웠던 건 길거리에 붙어 있는 광고였다. 두리안 시즌이 시작되었으니 좋아하는 두리안을 먹으러 말레이시아로 떠나자는 <두리안 투어> 광고였다. 보고도 믿기지 않았다. 말레이시아로 두리안을 먹으러 떠나는 당일치기 여행이라니.. 냄새가 정말 강렬하던데 대체 어떤 맛이길래 저 과일만을 위한 여행이 다 있나 싶었다.


이쯤 되자 호기심에 두리안 맛은 어떨까 궁금해졌다. 냄새야 고약하지만 맛있으니 저렇게들 사 먹고 여행도 가지 싶은 생각에 도전해보자 싶었다.

싱가포르에서 십 년 넘게 살고 있는 지인분은 내 호기심에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시도는 해볼 만 하나 못 먹을 거라고 했다. 본인도 여러 번 시도해 봤지만 지금도 못 먹는다고..

"그 정도예요?"


반면에 회사에서 로컬 직원분이 들고 와서 먹어봤다는 남편은 맛있었다고 했다. 냄새가 좀 강하지만 생각보다 입맛에 잘 맞았다고 했다. 또 다른 지인분도 너무 좋아해서 시즌이 돌아오길 손꼽아 기다린다고 했다. 이렇게 호불호가 입맛 따라 확연히 다른 과일이 있다니.. 게다가 두리안이 '과일의 왕'으로 불린다고 했다.


궁금증에 여기 살 때 경험해 봐야지 하고 남편과 두리안을 사러 나섰다. 집 근처 두리안을 쌓아놓고 파는 과일가게에 가서 보니 도깨비방망이처럼 뾰족뾰족한 모양의 두리안이 가득 쌓여 있었다. 이미 잘라놓고 랩을 씌워 포장해 놓은 것도 있었다.

(과일 가게에 쌓여있는 두리안 by 서소시)

무게를 달아 가격을 결정하는데 뾰족뾰족한 껍질 무게까지 다 포함이니, 열대 과일 가격이 저렴한 싱가포르에서 두리안은 아주 비싼 과일에 속했다. 그런데도 사러 온 사람이 많았다. 종류별로 가격 차이가 나긴 하는데 파는 아저씨에 의하면 말레이시아에서 오는 두리안은 무상킹 (Musang King)이 비싸지만 제일 맛있다며 권했다. 모양만 봐선 어떤 게 좋은 건지 전혀 모르겠어서 골라 달라고 부탁을 했다. 아저씨는 칼로 툭툭 두리안을 쳐서 칼집을 내더니 속을 열어 보여줬다. 노랑게 익은 속이 보이고 역시나 코를 잡게 하는 냄새가 올라왔다. 이렇게 신기한 과일이 있다니..

(노랗게 익은 게 맛있는 두리안 by 서소시)

그렇게 가져온 두리안 맛을 보자며 아이들을 불러 모았다. 이 과일이 얼마나 신기하게 생겼는지 찍어온 사진도 보여줬다. 그런데 아이들은 도저히 시도해 볼 자신이 없다며 도망쳤다. 아이들 반응이 재밌어서 일부러 더 들이밀었다. 비명을 지르며 도망친 아이들은 방문을 꽁꽁 닫고선 "최대한 빨리 먹어주세요~"라고 외쳤다.


반응이 재밌어서 깔깔깔 웃다가 드디어 두리안 맛을 봤다. 뭔가 물렁하고 부드러운데 아는 맛도 느껴졌다. 신기하게 밤과 고구마 맛이 묘하게 났다. 강렬한 냄새 대비 맛은 괜찮았다. 너무 맛있지 않냐며 좋아하는 남편만큼은 아니지만 못 먹을 정도는 아니구나 싶었다.


그런데 남편은 먹을수록 맛있다며 두리안 맛에 흠뻑 빠져 버렸다. 강렬한 냄새마저 오히려 너무 맛있는 냄새가 난다며 두리안 가게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고 반가워했다. 두리안 철이 되면 맛있을 때 먹어야 한다며 퇴근길에 자주 사들고 왔다. 시원해야 더 맛있다며 냉장고에 넣어뒀는데.. 이런이런~~ 냉장고를 열 때마다 두리안 냄새가 존재감을 뿜어내며 퍼졌고 무방비 상태로 그 상황을 모르고 냉장고를 연 아이들은 또다시 비명을 질러댔다. 물맛에서도 두리안 냄새가 난다며 울상이었다.


다들 입맛이 다르니 어쩔 수 없지만 너무 다른 반응에 웃을 수도 울 수도 없는 상황이 자주 연출됐다.

안타깝게도 두리안은 냉동실에 넣어 아이스크림처럼 살짝 얼려 먹는 게 제일 맛있었다. 그러니 냉장고 앞에 선 아이들의 난감함은 끝나지 않았다.


그 뒤로도 쭉 너무 맛있다며 열심히 사다 나르는 남편과 그때마다 코를 부여잡고 도망치는 아이들의 실랑이가 계속됐다.

"한입만 먹어봐. 맛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어. 여기 살 때 먹어봐야지 한국에선 구하기 귀한 과일이야."

그렇게 설득하며 권해 봤는데 첫째는 예상했던 맛이 아니라며 생각보다 맛있다고 먹기 시작했다. 반면에 다른 두 아이는 여전히 절레절레 먹기를 거부했다.

"식구 중 둘이 안 먹는구나.. 둘이 안 먹어서 <두리안>이 확실하네."

크크크~ 둘째, 셋째의 맛보기 기권으로 그렇게 둘이 안 먹는 과일, 두리안으로 남게 됐다.  




부모님이 싱가포르에 처음 오셨을 때 이 신기한 과일을 맛 보여 드리고 싶어서 집 근처 과일 가게로 달려가 두리안을 샀었다. 과육만 빼서 포장해 주는 대로 들고 가면 냄새도 덜하고 들고 가기도 쉽지만, 신기한 이 과일의 모양도 보여드리고 싶어서 칼집 넣어서 쪼개만 달라고 하고 그대로 들고 가겠다 했다. 가게와 집까지 버스로 세 정거장 정도 거리였는데 버스를 탈 수 없으니 들고 걸어갔다. 신기해하실 거 같아 원래 모양대로 들고 가자 싶었는데 생각보다 무겁고 뾰족뾰족한 가시 때문에 자꾸 찔려서 들고 걷기 힘들었다. 과육만 포장해 주는 게 냄새 때문만은 아니구나 그날 알았다.


냄새 때문에 싫어하실까 싶으면서도 "이게 과일의 왕이래요~"하고 두리안을 보여 드렸다. 신기한 모양새에 냄새도 참 지독하다 하시면서도 두 분 다 너무 맛있게 드셨다. 밤을 엄청 좋아하시는 아버지는 역시나 두리안에서 밤맛이 난다며 너무 잘 드셨다.


뾰족뾰족한 껍질의 가시를 만져보던 막내는..

"엄마~~ 뉴턴이 동남아시아에서 태어난 사람이 아니라서 얼마나 다행이에요. '만유인력의 법칙'을 두리안 나무 아래에서 발견했다간 큰일 날 일일 거 같아요."

"엥? 그러게."

엉뚱한 한마디에 상상이 돼서 배를 잡고 웃었다. 도깨비방망이처럼 무겁고 뾰족한 두리안이 머리 위로 떨어진다 생각하니 아찔했다.


그러고 보니 문득 이 커다란 열매가 나무에 어떻게 매달려 있을지 그 모습이 궁금했다. 이래서 두리안 투어를 가는구나 싶었다. 두리안 생산지에 가서 싼 가격에 원 없이 두리안을 먹을 수 있어 가는 투어겠지만 매달려 자라는 모습도 볼 수 있을 테니 언제 우리도 두리안 투어 가볼까 하고 물었다. 역시나 "아니요~~"를 외치는 아이들..


듣기로 독특한 냄새는 열대 우림 지역에서 자라는 이 과일이 씨앗을 퍼트리려면, 동물들에게 강렬한 냄새로 존재를 알려야 해서란다. 이렇게 자극적이고 강렬한 냄새를 뿜어내는 게 살아남기 위한 전략이라고 했다. 그러고 보면 참 독특하고 기발한 냄새구나 싶다.

"두리안이 똑똑하네~~"


몇 해 계속 이 냄새를 맡으며 종종 먹다 보니 아이러니하게도 이제는 이 냄새가 어디선가 나기 시작하면 "우와~~ 두리안 냄새다!"하고 반가워졌다. 물론 여전히 식구 중 둘은 안 먹는 두리안이지만..

남편도, 첫째도 싱가포르를 떠나면 제일 그리울 음식 중 하나로 두리안을 꼽는다. 신기하게도 먹다 보니 좋아져서 못 먹을 수 있다 싶으니 서운하기까지 한 맛이 되었다.


남편의 두리안 사랑이 어느 정도가 되었는지는 얼마 전 남편 생일에 확실히 확인이 되었다. 직원분들이 생일 케이크를 선물로 보내 주셨는데.. 열자마자 아이들은 코를 틀어막고 도망을 쳤다.

<두리안 케이크>였던 거다. 이런이런~~

(두리안 케이크 by 서소시)

얇은 빵 사이사이에 두리안을 겹겹이 쌓아 만들어진 케이크는 두리안 맛이 입안 가득 부드러운 빵과 어우러져서 색다른 맛이었다. 두리안 사랑꾼 남편은 행복해하며 먹었지만 둘이 안 먹는 녀석들은 하필 두리안 케이크냐며 울상이었다.  


올해도 어김없이 두리안 시즌은 돌아왔다. 냉장고 문 앞에서 못 먹는 둘은 오늘도 난감해한다. 제발 사오자마자 바로 먹고 꽁꽁 싸서 버려달라고.. 방문을 닫고 외치는 그 소리를 들으면서, 둘이 안 먹어 참 안타깝다며 남편은 오늘도 맛나게 두리안을 먹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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