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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소시 May 13. 2022

위태로운 동거 중입니다.

"~~ 악!!!~~~ 엄마 ~~~~"

학교를 다녀와 막 샤워하러 들어간 둘째가 비명을 질러댔다.

"왜? 왜? 괜찮아???"

놀라서 얼른 욕실 문 앞으로 달려갔다.

둘째가 다급하게 외치는 소리가 들려왔다.

"움직이지 마!!! 아 ~~ 안돼~안돼!" 

"이쪽으로 오지 마! 내가 얼른 나갈게.. 제발~~ 움직이지 마!"

속사포처럼 쏟아지는 말에 다급함이 느껴졌다.

"또 만났구나 ~"

뭔지 알 것 같아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싱가포르에 살면서 늘 우리 집으로 찾아오는 단골 친구를 만난 모양이다.

"뭘 놀라게 그리 소리를 지르니.."

내 타박에 허겁지겁 욕실을 나오던 아이는 놀래서 숨까지 헐떡이며..

"아 진짜~~ 샴푸 짜려는데 샴푸통 뒤에서 갑자기 나타나잖아요. 아이고 놀래라 ~~"

"네가 잘 있는 애 놀라게 한 거지.. 걔는 얼마나 놀랬겠냐."

울고 싶은 마음일 아이의 표정이 재밌어서 괜히 짓궂게 놀리곤 하하하~~ 배를 잡고 웃고 말았다.


얼마나 놀랬을까..

당해본 사람은 그 짧은 순간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운지 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사는 동안 하도 많이 경험하니 이젠 이리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싱가포에 온 이후로 이사를 몇 번을 해도.. 초대하지 않아도 매번 잘도 찾아오는.. 어쩌면 함께 살고 있다고 봐야 하는 도마뱀 이야기다.


싱가포르에서 집 구할 때 집으로 들어오는 도마뱀을 피하기 위해 저층을 피하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완전 잘못된 정보다..

우리 집은 32 이고.. 이 정도 높이면 도마뱀 만날 일 없겠지 했지만 매일매일 위태로운 동거 중이다..




이들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처음 집은 6층이었는데 층고가 아주 높은 집이었다. 도마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였는데, 아이들 양치시키고 "이제 자자 ~~"하며 욕실을 나서려는데 첫째가 비명을 질러댔다.

수건을 꺼내려고 욕실장 문을 열려는데..

설명하기도 어려운 색깔의 도마뱀이 떡하니 붙어 있었던 거다.

아이의 놀란 비명 소리에 도마뱀도 놀랬는지 더 높이 정말 믿기지 않는 속도로 올라가 버렸다.

" ~~  여보!! ~~ "

"으악~~~ 아빠~~~" 

동시에 집이 떠나가라 외쳤다.


처음 만난 이 생명체는 투명해 속이 다 들여다 보였고 형광색도 섞인 오묘한 색에, 게다가 너무 빨리 움직이니  으악 ~ 비명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와서 보더니 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서 어쩌지 못하겠다고 했다. 그 와중에 절대 죽이면 안 된다고 치는 아이들 때문에 어째야 하나 싶었다.

'아.. 손도 안 닿고.. 어쩌지?'

잠은 다 잤다 싶었다.

눈에 안 보이게 쫓아내야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제발 나가줘라 ~~" 주문을 외우다가..

영어로 말해야 알지 않을까요 하는 아이들 말에 같이 " Move~ Move ~~" 를 외쳤다.

알아들은 건지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거실 쪽 벽으로 나와 재빨리 에어컨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난 몰라 ~~ 저 에어컨 이젠 못 틀어 ~~"

진심 절망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충격과 공포 그 자체였다.




한 번은 자려는데 침대 정 중앙 천장에 하니 붙어 움직이질 않았다.

자다가 저 도마뱀이 내 얼굴로 떨어지면 어쩌나 싶고.. 좀 움직이지 하고 눈싸움을 열심히 해봐도 꼼짝을 안 했다. 저 높이면 닿을 수 없다는 걸 쟤도 너무 잘 알고 있나 보다 싶었다. 결국 내가 먼저 기를 들었고 침대에서 자길 포기했다.


그 뒤로도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우리 가족인양.. 어딘가에서 무심히 쑥 ~ 하고 나타나는 도마뱀을 볼 때마다 아이들도 나도 목청이 터져라 비명부터 나왔다. 이러다 득음할 판이었다. 자꾸 봐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비주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김새보다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래키고 재빨리 움직이는 몸짓에 더 놀랐다는 게 맞는 말이다.


게다가 온통 흰색 벽이라 눈에 쏙 들어온 검은 점.. 높은 천장 모서리에 보이던 검은 점 모양의 작은 덩어리가 이 친구들의 똥임을 알고 나서는 정말 어째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이었다.

부엌 바깥쪽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 투입구 쪽으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날아 올라오는 걸 보게 됐다. ~ 정말 공룡시대도 아니고.. 내 평생 그렇게 큰 바퀴벌레가 6층까지 힘차게 날아 올라오는 걸 보게 되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았다. 크기도 너무 컸고 정말 빠른 스피드로 날아오르는데 으악 ~ 비명을 지르고 부엌문을 닫고 안으로 도망쳤다. 그리곤 여러 날 그 문을 열지 못했다. 그날 그리 커다란 바퀴벌레를 보고 나니, 적어도 이 도마뱀들은 해충 잡아먹는 친구지 싶고 훨씬 낫지 않나 싶은 마음이 처음 들었다.


자꾸 집 안에서 까꿍 ~ 하고 나타나는 이 친구들은 Geckos(게코)라는 이름의 도마뱀이다.

해충보단 나아하고 마음먹었는데도 언제부턴가는 밤에 도마뱀이 "나 여기 있어~"하고 신호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도마뱀이 내는 소리가 맞았다.

아 ~~ 소리까지 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어디 있는지 모르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깜짝깜짝 놀래서 싫지만.. 대놓고 나 여기 있소 ~ 도 힘들었다.

"그거 짝짓기 하려고 짝 찾는 소리예요."

지인분의 설명에 더 충격을 받았다. 가끔 들어오는 게 아니고 우리 집에서 번식까지 한다고?

아이구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인분들께 물어봤다.

"도마뱀 퇴치할 방법이 있나요?"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해 주셨다.

일반적인 살충제를 뿌리는 방법 외에 도마뱀이 싫어하는 초음파를 이용해 도마뱀이 싫어서 나가게 하는 방법, 현관문 밑의 틈이나 벽틈 등을 막아서 아예 못 들어오게 하는 방법, 냄새를 싫어하니 양파나 마늘 같은 종류를 자주 나타나는 길목에 두는 방법, 그리고 끈끈이트랩 등이었다. 도마뱀이 잘 출몰하는 곳에 끈끈이트랩을 깔아 두면 지나가던 도마뱀이 거기 붙는다고..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제발 죽이지 말자고 노래를 했다. 저 도마뱀이 벌레 잡아먹고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 되는 친구라고.. 매번 놀라긴 하지만 그냥 있나 보다 할 거라고..


"그래 그러자..  친구들과 같이 산다 생각하자." 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막는다고 안 찾아올 친구가 아님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으니.. 


그나저나 이 친구들이 32층까지 어떻게 타고 올라오나 힘도 세다 싶다.

거의 매일 밤 창문에 붙어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도마뱀들..

(32층도 문제없는 도마뱀들. by 서소시)

아이들은 매일 찾아오는지.. 어쩌면 우리 집 안밖에서 사는지 애매한 도마뱀 친구들과 대화도 한다.

"너 또 왔니?"

"어머.. 너 꼬리 자르고 도망쳤구나. 아팠겠다. "

"뭘 먹었길래 배가 이리 빵빵해진 거야?"

" 어.. 너 꼬리 좀 길어졌네. "

" 와 ~ 너 똥이 보여. 뱃속에.."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 보면 이리 다정할 수 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창문 안 벽에서 나타나면 여지없이 소리를 지른다.

"아 ~~ 어서 가.. 다른 데로 가" 하고..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매일 우리와 위태로운 동거 중인 도마뱀들..


언젠가 싱가포르에 오래 신 지인분이 말씀해 주시길..

아는 분이 싱가포르를 떠나 한국으로 이사 갔는데 이삿짐에도 도마뱀이 따라갔다고 하셨다. 밥통 같이  따뜻한 가전제품을 좋아해서 그 바닥에 붙어 갔다고..


정말 나중에 한국 가는 길도 함께 려나..

애정 하며 이뻐해 주진 못하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를 놀라게 해 주려고 준비 중일 도마뱀들..

그냥 그렇게 오늘도 우린 위태로운 동거 중이다.





사진 출처 : Photo by Nick Tsinonis@nick365 on Unsplash









< Daum에 실린 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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