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고 싶은 마음일 아이의 표정이 재밌어서 괜히 짓궂게 놀리곤 하하하~~ 배를 잡고 웃고 말았다.
얼마나 놀랬을까..
당해본 사람은 그 짧은 순간 얼마나 무섭고 당황스러운지 안다.
그런데 싱가포르에 사는 동안 하도 많이 경험하니 이젠 이리 웃으며 넘길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싱가포르에 온 이후로 이사를 몇번을 해도.. 초대하지 않아도 매번 잘도 찾아오는.. 어쩌면 함께 살고 있다고 봐야 하는 도마뱀 이야기다.
싱가포르에서 집 구할 때 집으로 들어오는 도마뱀을 피하기 위해 저층을 피하란 이야기를 들어본 적 있다.
완전 잘못된정보다..
우리 집은 32 층이고.. 이 정도 높이면 도마뱀 만날 일 없겠지 했지만 매일매일 위태로운 동거 중이다..
이 아이들과의 첫 만남을 잊지 못한다.
처음 집은 6층이었는데 층고가 아주 높은 집이었다.도마뱀에 대한 정보가 전혀 없을 때였는데, 아이들 양치시키고 "이제 자자 ~~"하며 욕실을 나서려는데 첫째가 비명을 질러댔다.
수건을 꺼내려고 욕실장 문을 열려는데..
설명하기도 어려운 색깔의 도마뱀이 떡하니 붙어 있었던 거다.
아이의 놀란 비명 소리에 도마뱀도 놀랬는지 더 높이 정말 믿기지 않는 속도로 올라가 버렸다.
"악 ~~ 여보!! ~~ "
"으악~~~ 아빠~~~"
동시에 집이 떠나가라 외쳤다.
처음 만난 이 생명체는 투명해 속이 다 들여다 보였고 형광색도 섞인 오묘한 색에, 게다가 너무 빨리 움직이니 으악 ~ 비명이 절로 나왔다.
남편이 와서 보더니너무 높이 올라가 있어서 어쩌지 못하겠다고 했다.그 와중에 절대 죽이면 안 된다고 외치는 아이들 때문에 어째야 하나 싶었다.
'아.. 손도 안 닿고.. 어쩌지?'
잠은 다 잤다 싶었다.
눈에 안 보이게 쫓아내야 안심하고 잘 수 있을 거 같았다.
"제발 나가줘라 ~~" 주문을 외우다가..
영어로 말해야 알지않을까요 하는 아이들 말에 같이 " Move~ Move ~~"를 외쳤다.
알아들은 건지 조금씩 움직이더니.. 이내 거실 쪽 벽으로 나와 재빨리 에어컨 밑으로 쏙 들어가 버렸다.
"난 몰라 ~~ 저 에어컨 이젠 못 틀어 ~~"
진심 절망했었다.
그렇게 우리의 첫 만남은 충격과 공포그 자체였다.
또 한 번은 자려는데 침대 정 중앙 천장에 떡하니 붙어 움직이질 않았다.
자다가 저 도마뱀이 내 얼굴로 떨어지면 어쩌나 싶고.. 좀 움직이지 하고 눈싸움을 열심히 해봐도 꼼짝을 안 했다. 저 높이면 닿을 수 없다는 걸 쟤도 너무 잘 알고 있나 보다 싶었다. 결국 내가 먼저 백기를 들었고 침대에서 자길 포기했다.
그 뒤로도 아주 자연스럽게 마치 우리 가족인양.. 어딘가에서 무심히 쑥 ~ 하고 나타나는 도마뱀을 볼 때마다 아이들도 나도 목청이 터져라 비명부터 나왔다. 이러다 득음할 판이었다.자꾸 봐도 도저히 적응이 안 되는 비주얼이었다. 아니 정확히는 생김새보다 갑자기 나타나 깜짝 놀래키고 재빨리 움직이는 몸짓에 더 놀랐다는 게 맞는 말이다.
게다가 온통 흰색 벽이라 눈에 쏙 들어온 검은 점.. 높은 천장 모서리에 보이던 검은 점 모양의 작은 덩어리가 이 친구들의 똥임을 알고 나서는 정말 어째야 하나 싶었다.
그러던어느 날이었다.
부엌 바깥쪽 베란다에 있는 쓰레기 투입구 쪽으로 바퀴벌레 한 마리가 날아 올라오는 걸 보게 됐다. 아~ 정말 공룡시대도 아니고.. 내 평생 그렇게 큰 바퀴벌레가 6층까지 힘차게 날아 올라오는 걸 보게 되다니.. 보고도 믿을 수 없았다. 크기도 너무 컸고 정말 빠른 스피드로 날아오르는데 으악 ~ 비명을 지르고 부엌문을 닫고 안으로 도망쳤다. 그리곤 여러 날 그 문을 열지 못했다. 그날 그리 커다란 바퀴벌레를 보고 나니, 적어도 이 도마뱀들은 해충 잡아먹는 친구지 싶고 훨씬낫지 않나 싶은 마음이 처음 들었다.
자꾸 집 안에서 까꿍 ~ 하고 나타나는 이 친구들은 Geckos(게코)라는이름의 도마뱀이었다.
해충보단 나아하고 마음먹었는데도 언제부턴가는 밤에 도마뱀이 "나 여기 있어~"하고 신호하는 것처럼 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처음엔 몰랐는데 도마뱀이 내는 소리가 맞았다.
아 ~~ 소리까지 내며 자신의 존재를 과시하니 더 미칠 노릇이었다. 어디 있는지 모르다 갑자기 나타나는 것도 깜짝깜짝 놀래서 싫지만.. 대놓고 나 여기 있소 ~ 도 힘들었다.
"그거 짝짓기 하려고 짝 찾는 소리예요."
지인분의 설명에 더 충격을 받았다. 가끔 들어오는 게 아니고 우리 집에서 번식까지 한다고?
아이구나..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지인분들께 물어봤다.
"도마뱀 퇴치할 방법이 있나요?"
몇 가지 방법을 추천해 주셨다.
일반적인 살충제를 뿌리는 방법 외에 도마뱀이 싫어하는 초음파를 이용해 도마뱀이 싫어서 나가게 하는 방법, 현관문 밑의 틈이나 벽틈 등을 막아서 아예 못 들어오게 하는 방법, 냄새를 싫어하니 양파나 마늘 같은 종류를 자주 나타나는 길목에 두는 방법, 그리고 끈끈이트랩 등이었다. 도마뱀이 잘 출몰하는 곳에 끈끈이트랩을 깔아 두면 지나가던 도마뱀이 거기 붙는다고..
아이들은 그 와중에도 제발 죽이지 말자고 노래를 했다. 저 도마뱀이 벌레 잡아먹고 오히려 우리에게 도움 되는 친구라고.. 매번 놀라긴 하지만 그냥 있나 보다 할 거라고..
"그래 그러자.. 저 친구들과 같이 산다 생각하자."하고 마음을 내려놓았다. 막는다고 안 찾아올 친구가 아님을 여러 번의 경험으로 알게 되었으니..
그나저나 이 친구들이 32층까지 어떻게 타고 올라오나 힘도 세다 싶다.
거의 매일 밤 창문에 붙어 존재감을 확인시켜주는 도마뱀들..
(32층도 문제없는 도마뱀들. by 서소시)
아이들은 매일 찾아오는지.. 어쩌면 우리 집 안밖에서 사는지 애매한 도마뱀 친구들과 대화도 한다.
"너 또 왔니?"
"어머.. 너 꼬리 자르고 도망쳤구나. 아팠겠다. "
"뭘 먹었길래 배가 이리 빵빵해진 거야?"
" 어.. 너 꼬리 좀 길어졌네. "
" 와 ~ 너 똥이 보여. 뱃속에.."
창문 하나 사이에 두고 보면 이리 다정할 수 없다. 그런데 이 친구들이 창문 안 벽에서 나타나면 여지없이 소리를 지른다.
"아 ~~ 어서 가.. 다른 데로 가" 하고..
눈에 보이던 보이지 않던.. 매일 우리와 위태로운 동거 중인 도마뱀들..
언젠가 싱가포르에 오래 사신 지인분이 말씀해 주시길..
아는 분이 싱가포르를 떠나 한국으로 이사 갔는데 이삿짐에도 도마뱀이 따라갔다고 하셨다. 밥통 같이 따뜻한 가전제품을 좋아해서 그 바닥에 붙어 갔다고..
정말 나중에 한국 가는 길도 함께 가려나..
애정 하며 이뻐해 주진 못하지만.. 어디선가 누군가를 놀라게 해 주려고 준비 중일 도마뱀들..
그냥 그렇게 오늘도 우린 위태로운 동거 중이다.
사진 출처 : Photo by Nick Tsinonis@nick365 on Unsplash